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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고슴도치 Jul 18. 2020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요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쉴 새 없이 꺼내는 이들과의 대화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나의 말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말하는 이의 이야기를 귀로만 듣고 머릿속으로는 내가 이어서 할 말, 하고 싶은 말만을 끊임없이 떠올리진 않는지, (오만하게도) 충고나 조언을 하고 싶어서, 내가 아는 것을 티 내기 위해서 듣는 내내 입이 근질근질하지는 않는지 등등. 이러한 마음으로 듣고 있으나 듣지 못하고 있으며, 말하고 있으나 나 이외엔 누구도 원하지 않는 대화가 오가는 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 봄부터 지금까지 15주간 그림 검사 수업을 들었다. 그림 검사는 심리 검사이자 예술치료를 동반하는데, 나도 모르게 생각으로 무장해온 마음을 좀 편안히 누이기 위해서 늘 배워보고 싶었던 분야였다. 다양한 심리 검사 기법을 배우며, 집단 상담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 가지 그림검사 기법을 배울 때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해주는 그 시간은 참 흥미로웠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10명이면 10개의 각자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이 신기했고, 한 사람의 그림을 보고도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재밌었다. 무엇보다도 그림으로 표현하다 보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가림막 없이 솔직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이를 통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그림 검사 수업을 통해 생각지도 않게 대화 다운 대화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요?’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이 매번 하던 이 질문이 나는 참 좋았다. 선생님이 이 질문을 하면 다같이 한마디씩 말을 나누어준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나의 마음이 상대방이 건네는 한마디에 감동하거나 한결 편해지거나, 혹은 들었을 때 부담스럽거나 오히려 불편하고 화나는 지점이 있는 피드백들을 동시에 경험했다. 듣기만 하는, 말하기만 하는 일방적인 대화가 아닌 연결감을 주는 대화를 위해서는 나와 상대방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대화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좋은 대화가 될 수도, 독이 되는 대화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는 나와의 대화에서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나 또한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고, 소중한 이들에게 필요할 때 공감과 위로와 격려로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말이다. 이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의 마음에도 다가갈 수 있다고 매번 느낀다. 매 수업 시간마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말이 무엇일까 하며 깊은 질문을 던지다 보니 나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마음속 깊이 든든한 버팀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상대방에게 지금 필요한 말은 무엇일지, 필요하지 않은 말이 무엇인지도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대화도 공부가 필요하다. 따뜻한 포옹과 선선한 바람과 같은 말을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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