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그리고 현재와 미래
얼마전, 세계사 흐름으로 개도국을 이해하고자 제3세계 형성과 변화를 다룬 콘텐츠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과정도 한번 다뤄보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작성합니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이야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인의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원조를 받던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우뚝 섰기 때문입니다.
이 극적인 반전은 그저 운이 좋았거나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원조를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했던 우리만의 전략과 관리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직후(1945~1960년대 초)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으며, 초기 원조는 미국의 주도하에 식량, 의류 등 긴급 구호와 인도적 지원에 집중되었습니다. 당시 원조 규모는 국가 총자본의 약 50%, 정부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며 한국 경제의 붕괴를 막는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초기에는 공여국(주로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강하게 반영되었으나, 한국은 기획처, 한미합동경제위원회(CEB) 등을 통해 원조를 국가 재건 계획에 통합하려는 노력을 시작하며 주인의식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무상원조에 의존하기보다 양허성 차관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경부고속도로, 포스코(POSCO)와 같은 국가 기간 산업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경제기획원(EPB)이라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모든 원조를 ‘5개년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국가의 큰 그림 아래 철저히 통합 관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한국이 공여국이 되었을 때, 인프라 중심의 유상원조 모델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은 원조를 받던 1960년대부터 개발도상국 공무원 연수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공여국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7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설립하여 유상원조(차관)를,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하여 무상원조를 제도화하며 공여국으로서의 틀을 갖추었습니다. 1995년 세계은행(WB)의 차관 대상국에서 제외되었고, 1997년 외환위기라는 시련도 있었지만, 2000년, 드디어 ODA 수혜국을 공식 졸업했습니다.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며, 한국은 선진 공여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는 독특한 ‘가교’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ODA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외교부(KOICA) 중심의 무상원조와 기획재정부(EDCF) 중심의 유상원조가 병존하는 독특한 ‘투 트랙(Two-Track)’ 모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숙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섰습니다.
현재 한국 ODA가 풀어야 할 복합적인 과제들은 한 단계 더 성숙한 공여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과 같습니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쟁점은 한국 ODA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1. 제도적 분절성
유상원조(기재부)와 무상원조(외교부)가 분리 운영되고, 40개가 넘는 기관이 ODA 사업을 운영되는 구조는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한 비효율의 주범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이원적 체제가 가진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필요한 금융 전문성을, 외교부는 외교 정책과 연계된 섬세한 현장 사업의 전문성을 각기 발전시켜왔다는 긍정론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무조건적인 통합보다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조정과 협력(Synergy)’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는 각 기관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국가 차원의 일관된 전략 아래 원조 효과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입니다.
2. 국익 vs. 인도주의
국익을 추구하는 원조를 인도주의적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2025년 현재 글로벌 공급망 재편, 경제 안보, 기후변화와 같은 복합 위기 속에서 ODA는 더 이상 순수한 이타주의의 영역에만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공여국들이 ODA를 자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연계하고, 핵심 자원 확보나 기술 표준 경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은 이미 보편적인 흐름입니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ODA를 국익과 글로벌 가치 기여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시민사회가 우려하듯 ‘빈곤 감소’라는 ODA의 근본적인 목표를 훼손하지 않도록, 국익의 외연을 ‘지속가능한 공동 번영’으로까지 넓히는 지혜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3. '한국형 발전 모델'의 적용성
한국의 압축 성장 경험은 많은 개발도상국에 영감을 주지만,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이식하려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국제개발 현장은 파트너 국가의 ‘주인의식(Ownership)’과 현지 상황에 맞는 맞춤형 해법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특정 모델을 일방적으로 전수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주도적인 개척 정신, 전략적 기획 역량, 인재 양성의 중요성' 등 보편적인 성공 원리를 파트너국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이 단순한 지식 공유자를 넘어, 파트너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마치며,
결국 한국 ODA의 다음 장은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은 지혜로 이 복잡한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느냐에 따라 쓰일 것입니다. 잿더미에서 희망을 일군 우리의 이야기가,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틔우는 이야기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