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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결과 분석] 말라위 농촌지역 소득증대 사업

by 라이프파인

저는 지난 4년간 르완다에서 협동조합을 통해 소농가의 소득 증대와 자립을 지원하는 농촌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국가나 기관에서는 이와 유사한 목표를 가진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성과를 달성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마침 굿네이버스가 말라위에서 진행한 농촌지역 소득증대사업의 종료평가보고서가 있어 이를 검토 및 분석하고, 성과측정에 있어 부족하지만 제 의견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DT-maize-04_0.jpg 사진출처: Agricultural Productivity Program for Southern Africa (APPSA), Malawi



사업 지역인 말라위 카숭구 지역은 빈곤율이 67%에 달하며, 주민들은 주로 옥수수 농사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성 감소와 불합리한 유통 구조, 시장 접근성 부족이라는 구조적 어려움 때문에, 농민들은 수확물을 중개 상인에게 헐값에 판매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옥수수 생산량 부족과 현금 유동성 부족으로 영농 투입물 구매도 제때 이루어지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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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와 굿네이버스는 이러한 구조적 난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말라위 정부의 국가 농업 정책 및 KOICA의 중기 전략과도 일치하는 적절한 방향이었습니다. 이 사업은 1단계(2018~2020)와 2단계(2021~2023)를 거치며 모델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1단계 사업의 사업평가 결과보고서를 찾을 수 없어, 코이카와 굿네이버스 공식채널에서 소개한 1단계 사업 과정 및 결과 영상을 참고하였습니다.)




말라위 농가 소득 증대 사업: 1단계와 2단계 비교 및 평가


[1단계] <말라위 보전 농업을 통한 지속가능한 소득증대사업> 결과보고서 분석

· 1단계 사업은 농업 ODA 사업의 기반을 구축하고 화학비료로 황폐화된 토양을 개선하기 위해 무경운, 멀칭, 윤작을 핵심으로 하는 보전농업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장기적인 토양 건강성 회복과 노동력 감축 및 투입물 비용 절감에 기여합니다.

· 기존 협동조합 3곳을 조직화 및 지원하고, 사회적 기업 '페어웨이(Fairway)'를 설립하여 농산물의 안정적인 유통 판로를 구축했습니다. 페어웨이는 협동조합이 재배한 옥수수를 수매하며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유통 판로를 제공했습니다.

· 보전농업 참여 농가는 사업 목표(450명)를 122% 초과 달성한 총 551명이 추가 소득을 창출했습니다. 토양 유기물 함량 등 화학적 특성도 비참여 농지보다 우수하다는 결과도 확인되었습니다. 농민들은 페어웨이와의 거래 시 운송 수단 제공, 구매 즉시 대금 100% 지급, 신뢰할 수 있는 계량 저울 사용 등의 이점 때문에 높은 만족도를 보였습니다.

· 하지만 페어웨이는 공정 거래 방식의 옥수수 사업을 위해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단계 종료 시점인 2020년 기준 영업 이익률이 -6%를 기록하며 사업 유지에 추가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2단계] <말라위 중부지역 지속가능농업 및 가치사슬 개선을 통한 소득증대사업> 결과보고서 분석

· 2단계 사업은 1단계에서 구축된 기반 위에서 운영 전략을 도입하고 시스템을 정교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 1단계 사업에 참여하여 3회 이상 대출 상환에 성공한 우수 농가를 졸업군으로 분리하고 추가 경작지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는데, 이는 농가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며 이들이 조합 전체의 생산성과 신뢰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본 사업을 통해 농업생산성이 향상되고 농가 소득이 증가하면서 주택 개량, 아동 취학 증가, 가축 구매, 농지 임대 또는 구매 등 영농 규모를 확대하는 추가적인 소득원 확보가 가능해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페어웨이는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곡물을 수매하며 농민들의 안전망이자 가격 완충 장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할은 기업 자체의 재무적 리스크를 키웠습니다.

· 2단계 사업 기간 내내 사회적 기업의 영업 이익률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는데, 특히 2022년에는 -29%, 2023년에는 -7%를 기록했습니다. 주요 원인은 곡물 가격 변동성과 같은 외부 요인에 대한 취약성, 특히 2022년 사료용 대두콩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이었습니다.

·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페어웨이는 위기관리 대응책을 수립하고 리스크 분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정 작물 의존도를 줄이고 마진율 기준을 설정하여 판매를 개시했으며, 사업 조합과의 거래에만 의존하지 않고 WFP, 국내외 NGO(열매나눔인터내셔널, 기아대책기구 등) 및 현지 기관과 협력하여 거래처를 다각화했습니다. 이는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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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말라위 중부지역 지속가능농업 및 조합가치사슬 개선을 통한 소득증대사업에 대한 종료평가 결과 종합 평가 등급 'A(매우 성공적)'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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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인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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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의 성공 이면에는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과제들과 향후 사업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비작동 요인들이 존재했습니다.


1. 재무적 불균형과 사회적기업의 취약성

조합의 매출 규모는 연도별로 안정적인 상승세를 유지했으며, 누적 목표 달성률이 최종 203%를 기록하며 높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 페어웨이의 영업 이익률은 -7%를 기록하여 재무적 취약성은 지속되었습니다. 페어웨이가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 가격 변동에도 불구하고 곡물을 수매하는 '안전망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2022년 대두 가격 하락 사태에서 손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는 건강한 동반 성장이 아닌, 한쪽의 희생에 기반한 불안정한 상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 페어웨이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리스크 분산을 위해 특정 작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연 17% 마진'이라는 자체 판매 기준을 수립하는 등 위기관리 대응책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굿네이버스 글로벌 임팩트로부터 추가 투자(10억 원 규모)를 유치하는 등 안정화를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2. 자립 운영 역량 부족 및 인프라 유지보수 문제

• 사업 종료 후에도 대다수 조합이 곡물 판매금 분배, 계좌 관리, 정산 등의 행정 업무 처리를 사업 수행 기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기적인 자립 가능성 확보가 여전히 큰 과제임을 시사합니다.

• 관개 인프라(디젤, 태양열 시스템)가 고장 났거나 유지보수 비용 및 기술 접근성 문제로 인해 원활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관찰되었습니다.


3. 성과의 불균형 및 정보 비대칭 문제

• 결과 평가보고서는 조합원의 평균 소득이 $258에서 $450으로 증가했다고 명시하지만, 이 소득의 분포(distribution)에 대한 데이터가 부재합니다. 소득 증가 가구 수 초과 달성 및 조합원 평균 소득 증가는 긍정적이나, 이는 소수의 우수 농가(졸업군)가 성과를 견인했을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 3회 이상 영농 투입물 대출 상환에 성공한 우수 농가를 분류하여 졸업군으로 지정하였으며, 참여 농가를 졸업군과 참여군으로 분리 운영하고, 졸업군에게 1에이커의 경작지를 추가 제공하는 차등 보상 시스템은 농가들의 생산 의욕과 투명성 확보에 효과적이었으며, 성과의 주요 작동 요인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실제로 졸업군과 조합위원회 임원 그룹(IGG)은 다른 그룹보다 높은 단위면적당 생산성과 예상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룹 분리는 잠재적인 갈등 유발의 위험이 있으며, 더 중요하게는 정보 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졸업군-참여군 간 또는 운영위원회-일반 조합원 간 정보 격차가 확인되었으며 이는 일부 일반 조합원들이 페어웨이에 대한 신뢰도 저하를 경험하는 원인이 되고, 협력 의지를 감소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4. 식량 안보와의 상충 관계 및 작물 다각화 과제

• 농촌개발 사업을 크게 두가지로 구분하자면, 식량 안보 또는 소득 증대로 볼 수 있습니다. 해당 사업은 소득 증대에 초점이 맞춰있어 농민들의 수확량 증가와 소득 향상이 주 목적입니다. 다만 보전농업/지속가능농법이 장기적으로 토양 비옥도 개선에 기여하지만, 말라위의 심각한 식량 안보 위기 상황에서는 당장의 생산량 확보가 더 시급하므로 전면 도입이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이 있습니다.

• 수확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가구 내 식량 소비와 작물 판매가 상충 관계에 있어 식량 안보 개선 효과가 소득 증대 효과만큼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 사업이 주로 옥수수 중심의 유통 개선에 머물러 있어 '지원' 성격이 강하며, 농가의 소득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수적입니다. 땅콩, 건조 칠리 등 고부가가치 환금 작물의 도입을 전략적으로 검토가 필요합니다.



더 나은 평가를 위한 제안사항


1. 소득 배분 관련 평가

'평균 소득 증가율'과 함께 '소득 불평등 지수(지니계수 등) 변화' 또는 '소득 하위 20% 농가의 소득 변화'를 핵심 성과지표(KPI)로 추가하여 성과의 포용성을 측정합니다.

지니계수(Gini Coefficient):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며,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 이 지표는 소득이 얼마나 공평하게 분배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

질적 평가에 따라 FGI(Focus Group Interview) 진행 시, "수익 분배 방식에 만족하는가?", "공동 작업 시 갈등은 없었는가?", "기여도가 낮은 조합원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등 거버넌스와 관련된 심층 질문을 통해 조합의 실제 운영 상태를 파악합니다.


2. 작물 다각화 관련 평가

• '옥수수 외 고부가가치 작물 재배 면적 및 생산량'을 성과지표로 추가하여 다각화 노력을 정량적으로 평가합니다.

• 차기 사업에서는 특정 고부가가치 작물을 선정하여 '시범 재배 단지'를 운영하고, 종자 보급-기술 교육-판로 개척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일부 우수 조합(예: 졸업군)을 대상으로 시범 재배 단지를 조성하고,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점차 확산시키는 전략을 취한다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3. 사회적기업을 위한 제안

페어웨이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하며, 이들의 노력을 뒷받침할 지원이 필요합니다.

곡물 가격 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선도 계약(Forward Contracts)이나 시장 정보 분석 시스템 도입 등 전문적인 리스크 관리 기법에 대한 교육 및 컨설팅 지원이 필요합니다.

단순 유통을 넘어, 다양한 작물을 가공(제분, 착유, 건조 등)하여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소규모 가공 설비 지원 등을 검토해야 합니다.

단기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사회적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임팩트 투자자나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안정적인 운영 자금을 확보하고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4. 자생력 강화를 위한 노력

자체 회의 개최 횟수, 유지보수를 위한 자체 기금 적립액 등 조합의 자립도를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표를 개발해야 합니다. 행정·재무·기술 각 분야에서 조합의 독립적 수행 과업과 시점을 명확히 제시하는 로드맵 수립이 요구됩니다.




마치며,


이 사례를 분석하며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했었습니다. 농가는 흑자를 보는데, 그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은 왜 적자를 기록했을까? 이는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하는 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를 깊이 들여다본 결과, 이 사업의 적자는 실패의 지표가 아닌,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전략적 투자'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사업 초기, 아직 비즈니스에 익숙하지 않은 농민들의 신뢰를 얻고 이들이 지치지 않고 사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이 의도적으로 손실을 감수하며 농가에 더 많은 이익을 배분하는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두 가지 중요한 재무적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이 사업은 외부 도너의 안정적인 자금 지원이라는 안전망이 있었기에 계획된 적자를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둘째, 이는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건강한 적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창고나 차량과 같은 초기 투자 자산의 감가상각비처럼 실제 현금 유출이 없는 비용을 고려하면, 장부상 적자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업 운영에 필요한 현금은 충분히 확보되었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사업이 지향하는 진정한 자립은 단순히 재무제표의 흑자 전환에 있지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성공은 외부 지원 없이, 이익 분배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현지 주민들 스스로 해결하고 투명한 원칙을 세워나가는 그 과정 그 자체에 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이겨내는 경험이야말로 어떤 외부 지원보다 값진 역량 강화가 될 것입니다.



이번 말라위 ODA 사업을 평가하는 과정은, 르완다에서 진행했던 제 사업 역시 다시 한번 점검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이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이처럼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며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업 모델도 존재한다는 것을 공유하고,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노력을 깊이 이해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개발 프로젝트는 PDM 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넘어, 본 말라위 사업처럼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며 지역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보고서 분석을 통해 아프리카 농촌개발의 구조적 한계와 어려움을 체감하며, 향후에 농촌개발 프로젝트 사업 모델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발표가 많은 분들께 ODA와 국제개발의 복잡성과 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말라위 농촌지역 소득증대사업 종료평가 결과보고서 분석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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