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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홀릭 Mar 16. 2017

다문화 가족 3대,  시베리아 열차에 오르다

프롤로그-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전

글쓴이 주: 이 글은 2014년 6월 프랑스 시부모님, 남편 그리고 5개월 된 아들과 프랑스로 돌아가는 여정을 담은 가족 이야기입니다.  지금 제 가족은 파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5개월 된 아기 테오를 안고 9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기차를 타고 횡단할 수 있을까? 베이징을 떠나기 직전부터 시베리아 횡단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 난 이 물음을 놓지 못했다. 나에게는 전혀 가보지 않은 생경인 길인 데다 아기 테오도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여행을 가겠다고 하자 우리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은 철없는 부모들의 치기 어린 여행이라는 반응이었다. 비행기로 1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돌아서 긴 여행을 떠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다. 나 역시 이들의 반응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몽골의 초원을 가르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빠른 항로를 두고 돌아가는 기차 여행은 일종의 시간 여행이다. 오늘날 비행기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단축하는 여행이 일상화된 시점에서 기차여행은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느린 여행이다. 빠른 경로가 아닌 우회의 길은 마치 내 삶과 같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에 다다르기 위해 늘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의 길을 선택했다. 비록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 길에서 나는 삶이 주는 의외의 기회를 얻었고 그렇게 내 삶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일종의 도피이기도 했다. 정면으로 맞대응할  자신이 없으니 손쉽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문학을 동경했지만 일찌감치 창작의 재주가 없다고 판단해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입사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기자직에 도전할 만큼 용기와 능력이 없었다. 그 후 우연히 방송국 구성작가로 일하면서 글 쓰는 일에 대한  나의 목마름을 채우며 살았다. 그러다 다시 한번 변화를 시도하며 영화 공부를 시작했고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도 않았고 외국에서의 삶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내가 2003년 34살의 나이에 무모할 만큼의 용기를 갖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늘 한국을 그리워하며 프랑스를 떠나고 싶어 했으면서도 프랑스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 와중에 내  인생의  반려자인 스테판을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은 나를 예상치 못했던 길로  인도했다. 스테판이 베이징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유럽으로 향했던 내 삶을 다시 아시아, 그러나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향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우연처럼 베이징에서 3년 반을 보낸 후 난 다시 유럽 땅을 향해 내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이주 여행에 나서야 했다. 이 긴 여정에서  엄마를 잃었고 45살이라는 나이에  엄마로 살게 해 준 테오를 얻었다. 나는 내 인생의 엄청난 지각 변동을 겪으며 한국과 프랑스라는 시공간의 폭력적인 차이에서 오는 멀미에 늘 힘겨워했다.

그래서 이번 시베리아 횡단 여행은 이 같은 변화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준비 여행이기도 했다. 2003년 프랑스로 떠나는 길은 혼자였다면 2014년 프랑스로 향하는 길에는  내 남편과 내 아기 그리고 시부모님이 함께 했다.

삶은  늘 이렇게 우연을 가장하며 새로운 길로 인도했고... 나는 그 길 위에서 시베리아 철도 여행을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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