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직장을 다니면서 네 번의 부서이동만에 내가 원하던 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같이 일하는 선배들은 본인의 분야에서 정말 일을 잘하는 분들이었고
그만큼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넘쳤다.
나도 저 정도의 연차가 되었을 때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늘 그랬듯 모든 것이 나에게 주어지진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A, B 팀 업무는 제대로 배울 시간도 없이 6개월만에 자리를 옮겨야했고,
C팀 업무만 두 번째로 맡게 됐을 때
그러면 안 되지만 나는 너무 속상해서 점심도 먹지 않고 울었다.
내 전공에 맞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지만
조금 더, 내가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줄 수는 없는 건지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심지어 이러한 팀 분배는 아주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된 거였고, 모든 팀에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이런 팀 분배를 한 상사들에게 반항심을 가득 키우며 회식 자리에서 한 마디도, 고기 한 점도,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다음 날
이전 팀인 A 팀장님이 저녁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는 내 옆에 다가왔다.
“네가 원하는 파트로 가지 못해서 속상해? 근데 여기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너만 속상한 거 아니니까 마음 풀어.”
이 말을 한 팀장님은 나를 싫어해서 꾸중한 게 절대 아니고 나를 위해 해준 말이었다.
내가 속상해하니 위로해주고 싶어서 건넨 말이었다는 걸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내 내 마음은 이랬다.
‘지금 누구 약 올리는 건가.’
그 후로도 여러 번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 팀장님은 참 좋은 사람인데… 화법은 참 그렇지 못하다.
위로를 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받는 사람은 놀림을 받는 것 같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본인 마음이 받는 사람에게 왜곡되지 않게 전달될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직장에서 상처받는 말을 쉽게 듣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들으며 웃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은 악의가 전혀 없다. 나 혼자 감정을 삭여야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직장생활에도 이런 ‘답정너’가 있으면 어떨까.
이런 상황에서는 좀 더 이렇게 말해줬으면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을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회사생활도 다양하지만 그런 말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써보기로 결심했다.
직장생활 답정너!
이렇게 말해주면 후배는, 선배는, 직장 동료는, 상사는, 부하 직원은 더 좋을 것 같아요!
이제 인간이 다 선하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그러기엔 회사에 나쁜 사람이 너무 많다)
괜한 말로 서로를 상처 주는 일은 없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