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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준 May 28. 2018

#4 포기의 결과가 아닌 존엄한 선택

질병을 제거하는 것만이 치료가 아니다.

#4 포기의 결과가 아닌 존엄한 선택



“호스피스? 사람 죽게 내버려 두는 곳이잖아, 거기?”
 
사람이 살다 보면 자랑하고 싶은 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자랑거리가 생기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하게 된다. 입이 근질거리는 것도 있지만 ‘자랑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낄 만큼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내 입에서 “전 호스피스 봉사를 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모습이 꽤나 얄미웠든지 아니면 호스피스에 대한 생각이 원래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봉사를 한다고 말했을 때 친구 중 한 명이 위와 같이 말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혈압이 오르면서 목젖 바로 밑에까지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 친구는 이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겠지. 
 
“아니, 그건 진짜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야, 거기 치료도 안 하잖아.”
“그건 그렇지. 애초에 치료가 목적이 아닌 곳인걸. 거기는 - ”
“죽어가는 사람에게 치료를 하지 않으면 죽게 놔두는 거지.”
 
그래. 이 녀석은 원래 모 아니면 도였고 왼쪽 아니면 오른쪽이었지. 예전부터 알고 있던 걸 새삼 새롭게 느꼈다. 모와 도 사이에 개, 걸, 윷은 어디다가 팔아치웠는지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있는 가운데가 보이긴 하는지 모르겠다.
황당한 건 친구가 말한 것처럼 호스피스를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이들이 가는 곳”, “죽으러 가는 곳”, “우울한 이들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국내 호스피스 이용률이 10%대에 머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이런 인식이 얼마나 깊게 박혀있던지 국립암센터에서는 ‘호스피스 홍보를 위한 단편영화’를 제작하기까지 했다. 궁금해서 한번 감상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권해도 괜찮을 정도로 짜임새가 있었다. 아쉬운 건 홍보가 시원찮았는지 호스피스 관계자들도 그 영화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간신히 홍보영화를 구했다.


영상 출처 : 국립암센터 (문제가 있을 시 동영상은 삭제하겠습니다.)
 


“야, 포털사이트에서 호스피스를 검색해봐.”
“귀찮게 그걸 왜 검색해.”
“네가 다른 데 가서 그런 말하면 창피 당할까 봐 하는 말이야. 얼른!”
 
포털사이트에서 [ 호스피스 ]를 검색하면 자연스럽게 ‘완화의료’란 단어가 연관되어 나온다. 굳이 비유하자면 실과 바늘과도 같은 급이랄까? 호스피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완화의료’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대개는 이 개념을 몰라 친구처럼 호스피스를 잘못 이해한다. 옛말에 이르길,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다만 모르고도 가만히 있으면 죄라 그랬다. 우리 모두 죄짓고는 못 산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 이참에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잡기로 하자. 


우선 호스피스는 엄연히 '의료 서비스' 중 하나다. 그리고 모든 의료 서비스는 '병을 고치려는 노력과 행동'이 동반된다. 그런데 왜 호스피스는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두는 곳"이라고 소문났을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애초에 호스피스는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골치 아픈 정의나 연혁은 다 집어치우고 핵심만 말하자면, 환자가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 없이 편안하게 눈 감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라는 게 호스피스의 핵심이다. 여기서 환자의 전제 조건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전제조건 때문에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두는 곳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애초에 모든 사람이 치료를 받는다고 살 수는 없다. 50% 확률로 누군가 산다면, 반대로 50% 확률로 누군가는 죽는다. 동전을 던진다고 매번 앞면만 나올 수 없는 걸 납득하면서 왜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무조건 앞면만 나온다고 확신할까. 그 근거 없는 확신에 배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만약 카지노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배팅하는 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호구'라고 여길 것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게 없다면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쓴들 결국 뒷면이 나올 것이다. 다만 어떻게든 앞면이 나오게 만들고자 수술을 받고 약을 찾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결코 죽지 않으려는 이들. 죽어도 '지금은 아니야!'라며 미루려는 이들. 그런 이들에게 호스피스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계속해서 다음을 찾지 말고, 지금에 충실한 상태에서 소중한 것에 시간을 쏟으라."라는 의료 서비스를.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호스피스 내 의료진과 봉사자들이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태도와 행동은 그러한 의료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끔 해준다. 항암치료를 받을 땐 한 번도 웃지 않았던 분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웃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평생 사과 한 번 없던 양반이 사과할 수 있었던 것도, 부끄러워서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던 이가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게 한 것도 엄밀히 말해 호스피스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덕분이다. 거부하고 외면하고 미루었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고쳐주는 의료 서비스는 몸은 치료하지 않지만 새카맸던 마음을 고쳐준다. 

몸만 고친다고 치료가 아니다.
마음을 고치는 것 역시 치료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망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고외롭고 쓸쓸하게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죽기 싫다고이런 소망은 기다린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라는 감정이 병실 안을 감돌고 우리가 그토록 소망했던 걸 이룰 수 있다.
호스피스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돕는다. 사람들이 소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들,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통증 완화’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죽을 수 있도록, 가장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기억하자. 
 
 
생애 마지막 순간 
사람답게 살던 당신이 
사람답게 죽고 싶다면
해답은 호스피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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