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 인해 아파하고 비로 인해 위로받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냈나요? 바쁜 일상과 여기저기 벌어지는 상황들에 휩쓸리느라 잠시나마 당신을 잊고 지냈어요. 그 당시엔 기억하지 못할 만큼 바쁘기에 죄책감은 없었는데, 지금은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네요. 만약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빗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는 좀 더 늦어졌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오랜만에 빗소리가 좋아지네요. 하마터면 중요한 일을 계속해서 놓치고 살았을 테니까.
‘…비가 내릴 때는 습도가 다소 높고 기압은 낮아진다. 이로 인해 관절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진다. 환자들 사이에서 관절을 다친 이들이 비가 올 때마다 아프다고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처음 인터넷으로 이 내용을 봤을 때 많이 슬퍼했던 거, 혹시 기억하세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이 글을 처음 본 게 군대를 제대하고 난 뒤의 봄이었을 거예요.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 누구보다 밖을 그리워했던 2011년의 봄.
아직도 기억에 선해요. 병원에서 본 엑스레이 사진. 양쪽 발목 복숭아뼈가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보였죠. 선명하게 떨어진 모습은 마치 ‘넌 다시는 오래 뛰지 못할 거야’라는 꼬리표 같았어요. 수술해도 큰 차이가 없을 거라는 말에 깨달았죠. 평생 이 꼬리표를 붙이고 다니겠구나. 평생 오래 뛰지는 못하겠구나.
비가 오면 꼬리표는 유독 선명하게 드러났어요. 욱신거리는 통증은 거슬림을 넘어 화가 날 정도였어요. 지인들에겐 우스갯소리로 가끔 “아! 비가 오니 발목이 쑤시는데?!” 이렇게 얘기했지만 속은 조금씩 조금씩 시커멓게 변했죠.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얼른 비가 지나가라.”라고 기도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2011년부터, 아니 어쩌면 발목을 다치고 난 그 뒤부터 비가 싫었어요. 빗소리는 더더욱 싫었고요.
그런 비가 언제부터 좋아지기 시작했을까요? 모르겠어요. 비가 싫어 피해 다니던 아이가 나이를 먹자 비를 맞고 싶다고 원하듯이 비를 찾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우산도, 우비도 쓰지 않은 채 조용히 비를 맞았어요. 조금씩 젖어가는 옷들이 불쾌하게 느껴지려는 찰나, 기분 나쁜 기억들도 조금씩 비에 젖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더라고요. 불쾌한 무언가가 씻겨 내리는 느낌. 온전히 비를 맞자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었죠.
“무엇이든 한 가지씩 장점과 단점을 품고 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은 장점만 혹은 단점만 본다. 그래서 때로는 웃고 또 때로는 운다. 하지만 두 가지를 모두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 삶은 더 풍성해진다.”
이때부터였을 거예요. 비는 올 때마다 그리고 날 괴롭혔는데, 정작 그 비를 받아들이니 갖고 있던 불쾌함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 게. 그때부터 빗소리에 평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심란했던 마음도 다독이게 되었고요. 물론 발목에서 오는 통증 역시 나름 쓸모가 있다고 합리화하기 시작했죠.
예컨대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발목이 묵직한 걸 보고 단번에 알았거든요. ‘비가 오고 있구나.’ 기상청에겐 미안하지만, 비 소식에 한해선 거기 있는 슈퍼컴퓨터보단 제 발목이 더 믿음직스럽더라고요. 제 발목이 나름 예민한 녀석이라 촉이 좋거든요. 과학적으로 검증도 되었겠다, 이참에 기상청에는 발목이나 무릎 등 관절이 아픈 사람들을 대거 채용하면 어떨까 싶네요. (웃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빗소리가 당신에게도 들리겠죠. 당신의 시간 속 어느 지점에서도 비는 내릴 거예요. 내게 찾아온 비와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 비 역시 당신의 우울함과 슬픔을 씻겨 내리기엔 문제없겠죠. 오늘은 꽁꽁 닫힌 창문을 열고 잠시라도 비 냄새를 맡아보는 건 어때요? 컨디션 때문에 비를 맞을 순 없겠지만, 그 냄새를 맡으면 기억날 거예요. 언제였는지 모를, 그러나 비로 인해 정화되는 그 기분을.
빗소리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았어요. 오늘은 이 음악을 켜놓고 차 한잔 마시면서 비 냄새를 맡아보길 바랄게요. 그러면 제가 미처 전하지 못한 것들이 전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