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온 나라가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구석구석 거리를 채웠던 순간을 기억한다. 자동차들은 박자에 맞추어 경적을 울렸고, 신문 헤드라인은 온통 축구 이야기뿐이었고, 머리띠와 얼굴 가득 페이스페인팅을 한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이 작게 접힌 응원봉을 나누어 주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치킨 냄새가 가득했고, 맞은편 아파트 단지에서는 골 하나가 들어가거나 골 하나가 막힐 때마다 베란다를 활짝 열고 고래고래 대한민국을 외쳤고, 그럴 때마다 우리 집 사람들도 뒷베란다 창을 열고 마주 소리 질렀던 것 같다.
그게 그렇게 먼 과거였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는데, 회사에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이야기가 화두로 나왔을 때 누군가 농담조로 말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20년 전 뽕에 아직도 너무 취해 있는 것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다들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맞는 말인데,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래도 2002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 당시의 강렬했던 분위기를 쉽게 잊기 어려운 까닭일 것이다.
사실 나는 스포츠 경기에 크게 관심이 없다. 특히 구기 종목은 더 그렇다. 짧고 굵은 시간 안에 누군가를 이겨 먹어야 한다는 게 싫다. 어찌 되었든 모두가 피 터지고 박 터지게 훈련하고 경기에 나왔을 텐데. 한 순간의 실수로 모두에게 욕을 먹어야 하는 것도 싫다. 기쁜 얼굴도 많지만 극명하게 차이나는 아쉬운 마음과 굳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나오는 상황이 피곤하고, 그래서 경기 내내 마음을 바짝 졸여야 하는 것도 힘들다. 아무리 그게 그 사람의 직업일지라도 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일이다.
한편 함께 사는 동거인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주요 경기들을 모두 챙겨 보는 중이다. 그는 축구를 꽤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경력을 가진 선수이고, 몸 상태는 어떻고, 어떤 팀이 강력한지 옆에서 종알종알 이야기해 준다. 그가 설명해 주는 그런 내용들이 경기보다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경기장이 예쁘다고 한마디 던졌더니 경기장을 짓느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도, 그가 말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
경기가 시작된 텔레비전 앞에서 나는 김치를 담그거나 소설을 읽거나 만화를 보고, 집중하는 그를 좀 방해하고, 가끔 상황을 힐끔거리다 쫄리는 장면이 나오면 후다닥 방으로 들어간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상황을 살핀 뒤 조심조심 밖으로 나오면, 평소 다양한 표정을 잘 짓지 않는 그는 아주 웃기고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안타깝고 놀랍고 경악스럽고 대단하고 감탄하는 얼굴이다. 아무래도 나는 축구보다는 축구를 좋아하는 그가 더 재미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