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가나와의 경기 전반 21분째, 나는 TV 앞이 아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월드컵을 보지도 않으면서 월드컵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하나도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기적으로 여겨지는 아르헨티나와 사우디 전을 생중계로 보고야 말았는데, 사실 그것은 월드컵을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내가 우연히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월드컵을 즐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선수들의 선전, 특히 골키퍼의 슈퍼세이브에 환호를 해버렸다.
나도 2002년 즈음에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TV 앞에 가족들과 함께 앉아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던 것도 같은데, 그 이후로는 크게 월드컵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긴다고 썩 기쁘지 않고, 진다고 퍽 아쉽지도 않다. 손흥민 선수를 마음속 아들처럼 여기고 있는 엄마는 나에게 애국심이 없냐고 물었는데, 난 월드컵의 시청과 응원 여부가 애국심을 반영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스포츠일 뿐이고, 국가 간의 경기는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므로.
카타르 월드컵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개최되기 위해 500만 달러에 가까운 뇌물이 오갔고, FIFA 회장은 사퇴한다. 개최지를 재선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강력하게 월드컵 개최를 밀어붙이고 있는 카타르와 재선정 시 생겨나는 각종 형평성과 재정적 문제로 번복은 없었다. 스포츠 정신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처사다.
또한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은 6700명이 넘는 노동자의 죽음 위에 지어졌다. 50도가 넘는 사막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착취당했다. 건설 현장에 곧잘 방문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 있었는지 기사 만으로는 제대로 상상하기가 어렵다. 6700명이라는 숫자가 아득할 뿐이다. TV 속 경기장을 볼 때마다 이 숫자를 머릿속에서 지우기가 어렵다.
세계가 주목하는 즐거운 축제에 나만 떨떠름한지는 잘 모르겠다. 죄는 카타르에게 있지, 축구 자체에 있지는 않다고 하면 그것도 맞는 말 같다. 주변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월드컵을 보는데, 나 하나 안 본다고 뭐가 달라질지도 잘 모르겠다. 치킨 주문이 너무 밀려 배달 앱 서버가 터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경기 다음 날이면 SNS에는 온통 월드컵 경기로 인한 밈으로 도배가 된다. SNS 밈은 실제로 웃기기도 해서, 월드컵 안 보는 나도 피식 웃게 되긴 한다. 다들 즐거워 보인다. 월드컵을 보는 사람들이 더 재밌다.
가나와의 경기는 이제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2:0으로 지고 있다. 아무래도 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