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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야맘 Feb 21. 2022

돌잔치 후 몸살이 나버렸다

이래서 돌끝맘,돌끝맘 하는구나... 소규모 돌잔치면 쉬울 줄 알았지

돌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 보면

돌준맘(돌잔치를 준비하는 엄마), 돌끝맘(돌잔치를 끝낸 엄마)이라는 줄임말을 자주 볼 수 있다.

돌잔치가 별거 있나 싶었는데 

막상 치르고 보니 이래서 돌끝맘, 돌끝맘 하는구나 싶었던 게

돌잔치 끝나고 나서 꼬박 이틀을 앓았다. 


코로나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아 돌잔치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백일 때도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집에서 치렀고

딸아이가 양가 통틀어 첫 손주라 부모님은 물론, 형제자매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았던 터라

돌잔치만큼은 직계가족들만이라도 모여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직계가족만 모이는 소규모 돌잔치로 하기로 정했을 때만 해도 

"소규모" 돌잔치이니 일반적인 돌잔치보다는 준비가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규모만 작았지 준비해야 할 가짓수는 엇비슷했다.

그리고 오히려 돌잔치 전문 뷔페가 아니라 일반 식당에 예약을 하다 보니

돌상, 성장 동영상, 사진 스냅 등을 각각 알아보고 준비해야 했다.




돌잔치 당일 아무리 가족끼리 식사자리여도 사진 스냅 작가를 예약했던 터라

(별다른 성장앨범 없이 백일, 돌마다 스냅을 찍어 주고 있다.) 

친정엄마에게 아기를 잠깐 맡기고 미용실을 다녀왔다. 

1년 내내 화장기 없이 질끈 묶은 머리, 후줄근한 수유내복만 입고 집콕 육아를 하다가 

1년 만에 화장을 하고 머리도 받고 결혼반지도 손가락에 꼈다. 

모처럼 좀 꾸미고 나니 이래서 돌잔치를 엄마 잔치라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용실을 다녀와서 아기 옷을 갈아입히고 

아기드레스, 한복, 떡뻥, 장난감 등을 바리바리 챙겨서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하기 전에 미리 스냅 작가와 만나 사진을 찍는데 

아뿔싸!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기의 기분이 안 좋았는지 웃지를 않고 점점 울상이 되더니 급기야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평소엔 아빠가 안아주면 좋아하는 편인데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 아빠 거부까지 와버렸다.


남는 건 사진뿐이란 생각에 식당도 

일부러 더 비싸더라도 인테리어가 고급진 곳으로 바꾼 거였는데 

아기가 울어버리니 진땀이 났다. 

오전에 미용실을 가지 말고 아기 낮잠을 좀 더 푹 재웠어야 했던 걸까?

낯선 스냅 작가가 무서웠던 걸까? 

여자 스냅 작가로 알아볼 걸 그랬나? (아기가 낯선 남자를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예쁜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었다.


돌상에서도 아기 기분이 영 풀리지 않아 돌잔치 내내 10킬로 넘는 아기를 혼자 안고 있었다.

몇 시간 내내 혼자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도 

돌잔치 당시에는 팔이 아픈 줄도 몰랐다. 

아기를 달래고 달래 가며 돌잡이를 하고 성장 동영상을 다 같이 봤다.

아기 컨디션을 살피느라 가족들에게 별다른 말도 못 하고 바로 식사로 진행됐는데

친정엄마와 남편이 번갈아 아기를 봐주느라 식사를 하긴 했지만 음식 맛이 괜찮은지도 사실 잘 못 느꼈다.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돌잔치를 치르고 집에 돌아오니

내내 컨디션이 엉망이었던 아기는 방긋 웃기 시작했다. 하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아기는 집에 도착해서 잠깐 놀다가 푹 잠에 들었다.

낯선 공간에서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고, 

드레스를 입혔다가 한복을 입혔다가 했으니 아기도 진이 빠진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양팔이 근육통으로 엉망이었다. 날갯죽지랑 겨드랑이까지 근육이 제대로 뭉친 느낌이었다.

돌잔치 후 제대로 병이 나버린 것이다.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팔근육은 전날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영 기운이 돌아오질 않았다.


왜 그럴까?

지난 1년간 아기를 키우며 많이 했던 말 중에 하나가 "아직 돌 전이라 이건 먹이면 안 돼요."였다.

또 양가 어머니들로부터 많이 듣기도 했던 말이 아기가 크고 돌이 지나면 육아가 수월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하고,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돌"이라는 기점을 육아의 큰 바로미터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돌이 지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없었다.(당연한 얘기다.)

아기는 여전히 이유식을 잘 안 먹고 모유만 찾고 

체감상 돌 전이나 돌 후나 뭐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돌이 지나면 육아가 좀 더 쉬워질 줄 알았던 모양이다. 


며칠 후 양팔의 근육통이 완전히 없어지고 나서야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스스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몇 번을 되뇌었던 것 같다.




돌을 치르고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요즘에서야 약간의 여유를 느낀다.

매일 아침 전기포트에 아기가 마실물을 데우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밤 빨대컵과 전기포트를 설거지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아기가 잠들고 나면 남편이랑 거실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둘 다 뻐근한 어깨, 허리를 좀 펴보겠다고 뻣뻣한 몸을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상냥하게 말하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도 상냥하게 말하게 된다.

이런 나날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또 어느 순간 힘든 날이 찾아오겠지만

이렇게 나도 엄마가 되어가는 거겠지.라고 되뇌다 보면 또 조금은 나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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