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라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omas Dec 16. 2017

보라매 <2>

2편 - 질병의 발단, 입원 첫날밤.


질병의 발단


  나는 평소에도 면역력이 좋지 않았다. 30대가 되고 나선 모낭염, 족저근막염 등 염증 질환에 잘 걸렸었다. 이에 관해선 올해 초에 브런치에도 글을 남김 적이 있을 만큼 면역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 나는 이번 11월 말에 또다시 모낭염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는 여드름인 줄 알았는데 뒤늦게 피부과에서 그동안 피부에 종종 나던 게 모낭염임이 밝혀졌다.) 문제는 왼뺨에 난 모낭염을 손으로 짰다가 염증이 살짝 커진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연고를 바르면 일주일 안에 사라지곤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번엔 쉽게 염증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감기까지 걸렸다. 최근엔 열심히 하던 운동도 게을리하고 있었고 가상화폐 투자 때문에 알게 모르게 정신적 피로도 상당히 누적된 상태였다. 게다가 회사 업무로 인해 발생되는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진 모양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 나 자신을 정말 여러모로 방치했고 그 벌을 받는 것 같다. 12월에 접어들자 모낭증에서 시작한 염증은 눈에 띄게 커졌고 나는 결국 피부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항생제와 연고를 처방해 주면서 모낭염 증상인데 이 왼쪽의 염증 부위는 외과에 가서 째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항생제와 연고로 호전이 될까 했는데 이틀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나는 휴가를 내고 동네 외과 진료를 다시 받았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를 해보더니 아직 안에 염증만 있고 고름이 없어서 째도 빼낼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곤 일주일치 항생제 약을 지어주며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외과 의사의 처방대로 열심히 약을 먹고 연고를 발랐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염증이 종기 같은 형태로 변해가더니 화산처럼 커져 버렸다. 회사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일상생활도 불가할 정도로 통증도 심했다. 새벽에 자다가도 통증에 깨면 열과 함께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나는 또 휴가를 내고 참담한 심정으로 택시를 타고 보라매 병원 외과로 향했다. 이틀 사이에 급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된 갓이다. 이것을 째든 도려내든 오늘 안에 무조건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보라매 병원에 도착하고 진료 수납을 완료하고 외과로 향했다. 전날 밤, 보라매병원 홈페이지로 선택 진료를 예약했는데 진료 대기실에서 간호사분이 이내가 예약한 외과 교수님은 얼굴 쪽은 보지 않는다고 하여 나를 성형외과로 연결시켜주었다. 속으로 종기 치료를 성형외과에서 하나 생각했지만, 혹여나 수술하게 된다면 흉터까지 고려한 시술을 받을 수 있겠다 싶어 내심 안심했다. 그렇게 길고 긴 진료 수속과 대기 시간 끝에 나는 또다시 외과 의사와 마주 앉게 되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나를 보자마자 의사의 두 눈은 환부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지난주부터.."

내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환부를 장갑 낀 손으로 만져보더니 바로 진료실 옆 수술대로 나를 눕혔다. 그 자리에서 바로 종기에 가득 찬 고름을 빼내기 시작했다. 메스로 부분 부분을 째고 재차 고름을 짜냈다. 참으로 비명이 나올 고통이었다. 메디폼을 붙이더니 입원해서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직 고름이 다 나온 상태가 아니었고 염증 정도가 심해 균 검사와 피검사를 받아야 했다. 메디폼을 왼쪽 뺨에 붙인 채 채혈도 하고 입원 수속까지 마쳤다. 나는 회사에 입원 사실을 알렸다.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외과 병동으로 이동해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상에 누웠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욱신거리는 왼뺨의 통증이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깨닫게 했다. 벗어던진 청바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저 옷을 다시 입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할까. 이 종기가 얼굴에서 완전히 없어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입원 첫날밤.


  나는 7살 무렵, 오른 손목의 물혹 제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수술은 6시간 정도 걸린 대수술이었다. 문득 그때의 기억이 아주 아주 어렴풋이 난다. 수술실에서 전신 마취되면서 눈이 감기는 순간, 팔에 깁스를 하려는데 엄청 우는 나를 달래는 엄마의 모습. 그 이후로 서른 넘어 다시 병원 신세라니. 환자복을 입고 정맥 주사 바늘이 꼽힌 채 링거 거치대를 끌고 다니니 나는 진짜 아픈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 6시. 배가 고팠다. 생각해보니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때마침 저녁 식사가 침상으로 도착했다. 따듯한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 완전 일반 가정식이라 또 엄마 생각이 났다. 그런데 원래 입원하면 식사까지 제공해주나? 의문은 아주 잠시, 허겁지겁 눈앞의 음식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맛은 생각보다 괜찮은 퀄리티라 조금 놀랐다. 다만 깍두기가 좀 짰다. 내가 식단 조절이 필요한 질환까진 아니지만,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치고 이건 너무 짜다 싶었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양치도구, 세안제, 수건, 속옷, 핸드폰 충전기 등 아무것도 없이 급하게 입원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병원 1층 편의점에서 생필품은 거의 다 팔고 있었다. 문제는 아이폰 충전기였다. 내 아이폰은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기절한 상태였다. 병원 어르신들은 거의 안드로이드폰을 써서 그런가, 편의점에서도 아이폰 충전기를 팔지 않았다. 일단 급한 대로 병원 간호사분들, 카페, 안내데스크까지 아이폰 충전기를 구해보려고 했지만 모두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핸드폰이 꺼져 전화번호를 볼 수 없으니 당장 친구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문득 머릿속에 고갱이 집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중학교 때부터 머릿속에 각인된 고갱이네 집 번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거니 고갱이 어머니의 목소리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드리고 고갱에게 내 입원 사실을 알렸다. 시간이 좀 늦어서 지금은 못 가고 내일 퇴근하고 핸드폰 충전기를 사들고 병문안을 오겠다고 했다. 새삼 건강과 가족, 친구의 소중함을 느껴진다. 그런데 핸드폰 없이 그냥 누워있으려니 뺨도 너무 아프고 잠도 안 왔다. 결국 주치의 허락을 받고 링거 거치대를 끌고 병원 밖으로 나섰다. 나는 병원 근처 편의점 3군데를 뒤져 겨우 아이폰 충전기를 공수해올 있었다. 입원 첫날밤부터 쉽지 않은 하루였다.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유튜브 동영상을 뒤적거려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왼뺨의 통증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이따금씩 간호사들이 찾아와 체온과 혈압을 재고 갔다. 모든 게 낯설다. 이 통증도 이 간호사들도 아픈 사람들로 가득한 외과 병동도 간간이 들리는 고통스러운 신음도 내 오른손에 꼽힌 정맥 바늘을 통해 항생제가 들어갈 때의 차가운 느낌도 모두 낯설다. 식은땀이 나고 열이 났다. 혹시 내가 병원을 너무 늦게 와서 패혈증으로 전이되는 중이 아닐까. 어서 피검사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어두운 병실에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외롭고 두렵다.



(3화에 이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보라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