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하는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그만 좀 이야기해라. 외우겠다. 아주.
남편은 아주 몹쓸 버릇이 있다. 그것은 바로 틈만 나면 군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연애 때는 그 이야기가 무척 재밌었다.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살면서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군대에 대해 듣게 된 것은 7살 위 오빠가 군 입대를 하고 난 다음부터였다. 한창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을 때라 오빠가 입대를 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크게 관심 없었다. 그나마 오랜만에 휴가 나온 오빠가 빨간 귀를 부여잡고 부모님을 처음 뵙자마자 하는 말 덕분에 오빠가 강원도 최전방에 배치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동상 걸렸으니 약 좀 사갈게요.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오빠는 더 이상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군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강원도의 겨울은 정말 춥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군대에 대해 말을 아끼는 건 우리 집안 남자들의 내력이었다. 유달리 풀과 나무에 해박한 아버지가 신기했던 나는 이런 걸 어떻게 다 아냐고 여쭤보니,
아, 토목학과라서 군대에서 맨날 야영했거든.
하고 이야기해 주시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아버지의 군대 이야기였다.
6.25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셨다. 군대 생활은 어땠냐고 물어보면 항상 답변은 똑같았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
그렇게 할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6.25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없었다. 그나마 오빠는 군 입대를 앞두고 할아버지께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한 일장연설을 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할머니가 내게 해주신 이야기 덕분에 6.25 시절의 군 생활은 이러했구나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결혼식 때문에 네 할아버지가 하루 휴가 받고 나왔는데, 그때 그 부대에 폭격이 있어서 할아버지 빼놓고 다 죽었어.
할머니는 자신 덕분에 할아버지가 구사일생으로 산 거라면서 그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셨다. 두 분 다 돌아가신 지금, 할아버지의 군 생활은 삶과 죽음이 오가는 진정한, 긴박한 전쟁의 현장이었다는 것만 짐작해 볼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 남자들은 수상할 정도로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질 않았다. 물어보면 ‘굳이?’, ’ 그걸 왜?‘ 하는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내게 군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편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훈련병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말년 병장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무척 재밌었다.
물론 결혼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제발 그만 이야기해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지만.
강원도 최전방, 야영, 심지어 6.25 참전까지. 알고 있는 건 단편적인 사실밖에 없더라도 힘듦을 짐작하게 하는 전직 군인들은 막상 조용한데, 군 병원의 행정병으로 있었던 남편은 지지배배 참새처럼 계속 군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더라.
그러나 타산지석이라 하였던가. 최근 내게도 이런 낯부끄러운 일이 생겨났다. 아이가 태어난 후 런던에서 혼자 독박육아를 하고 있던 나는 어머님께 통화하면서 징징거리며 우는 소리를 냈다. 어머님, 아기가 툭하면 똥 싸고 쉬야하고. 하루에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어머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던가.
어휴, 그래도 천기저귀 아닌 게 천만다행이지 않니.
천기저귀?
어머님께 남편 어렸을 때 분유 사서 먹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육아와 크게 다름이 없을 거라 지레 짐작했었다. 그러니 분유가 있다면 육아의 필수품인 일회용 기저귀도 당연히 있을 거라 예상할 수밖에. 그런데 웬 천기저귀란 말인가.
알고 보았더니 부모님 세대에는 결혼식 함을 감싸던 무명천을 잘라 아기 천기저귀로 사용했다고 한다. 해서 아기가 있는 집에는 항상 흰 무명천의 천기저귀가 온 집 안을 넘실 넘실 나부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조선시대 이야기도 아니고 부모님 세대에 천기저귀가 일반적이었단 이야기를 들으니, 30년이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세월 동안 일회용 기저귀가 발전한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중에 엄마에게도 여쭤보니 똥기저귀 빠는 게 정말 힘들었다느니, 장마 때는 기저귀 말리는 게 일이었다느니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그 옛날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시는데, 단편적인 이야기만 들어도 엄마의 자유시간이 쌀 한 톨만큼도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일회용 기저귀로 갈아주는 것만 해도 곤욕인데, 우리 부모님들은 이걸 또 빨고 널고를 반복하셨다니.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과는 다른 의미로 부모 이기는 자식은 없나 보다. 천기저귀 쓰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은 나는 육아의 난이도가 그나마 옛날보단 낫다는 것을 깨닫곤 힘들다 징징 거리던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남편을 지긋이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