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죽. 아 한국인이 바라보는 영국과 일본의 커피 문화 차이
이게 뭐람.
아기가 태어난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마음 편히 카페에서 앉아 커피 한 잔 시키질 못했다.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땐 모유 수유를 한다는 이유로, 300일이 된 지금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카페를 못 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찾은 대안은 맛있는 커피를 사 집에서 마시는 것이었다. 다행히 일본은 스타벅스 이외에도 도토루(Doutor), 딘 앤 델루카(Dean&Deluca) 등 다양한 프랜차이점 카페가 있었고, 칼디(KALDI)라는 식료품 가게에서는 신선한 원두를 쉽게 살 수 있었다.
특히 칼디에서 파는 드립백 커피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바로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져 종종 애용하곤 했다. 그렇기에 영국에 처음 왔을 때 마트에서 판매하는 커피백(Coffe Bag)을 보고 당연히 드립백 형식의 커피라고 착각해 버렸다.
영국은 마트도 계급이 나눠져 있다고 말한다. 똑같은 식자재를 파는 마트임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친환경 등 여러 요소에 의해 저렴한 마트부터 비싼 마트까지 세분화되어 있다. 그중 막스 앤 스펜서(Mark&Spencer)는 비교적 다른 마트에 비해 가격이 있는 편이지만 그만큼 PB제품을 믿고 살 수 있어 좋았다.
2주 동안 5번도 넘게 막스 앤 스펜서로 장 보러 다니면서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이 커피백을 삼으로써 처음으로 도전에 실패해 버렸다.
겉보기는 그럴듯하게 이탈리안 스타일인 이 커피. 100% 아라비카 원두에 초콜릿과 견과류 향이 난다는 이 커피는 샀을 때에는 버로우 마켓(영국의 재래시장)에서 산 도넛과 무척 잘 어울 듯 싶었다.
그러나 막상 꺼내보니 이게 뭐란 말인가. 임신했을 때 마시던 루이보스 티백과 똑같이 생긴 것이 내가 알던 드립백과는 전혀 달랐다. 향은 커피 향이 분명한데, 티백이라니. 다시 한번 포장지를 살펴보니 이름도 티백이 아닌, 커피백(Coffe Bag)이었다.
차의 나라 영국 답게 커피조차도 이렇게 차 마시듯 마신단 말인가. 진정으로 내가 영국에 왔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맛있으면 이러한 커피백일지라도 용납(?)할 수 있었겠지만, 임신했을 때 마셨던 민들레커피나 곡물커피와 같이 커피 흉내만 내는 어떠한 차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것들은 몸에 좋기라도 하지, 이건 진짜 커피콩으로 만든 거라 그냥 카페인이 들어간 맛없는 커피였을 뿐이었다.
대체 이런 걸 왜 만들었을까.
너무 궁금했던 나는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마시고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2012년쯤 영국인이 쓴 질문이 올라와 있었다. 질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저희 집에는 커피를 내리는 기계가 없는데, 왜 커피는 이렇게 귀찮게 해서 마셔야 하나요? 커피도 차처럼 뜨거운 물만 부어 마실 순 없나요?
아마 그 당시에는 인스턴트커피가 영국에 일반적이지 않았기에 이런 질문이 올라온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심지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십 수개나 넘었는데 그중 베스트 답변이 차를 우릴 수 있는 플라스틱 백에 커피를 넣고 우리면 무척 편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이 답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커피백이었다.
맥심 모카 골드의 커피믹스에 익숙한 한국인은 커피를 편리하게 마시는 방법이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것인데, 영국인에게는 차를 우리듯 커피를 우리는 것이 편리한 방법이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익숙한 방법으로 커피를 손쉽게 마실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그로 인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커피백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 추측은 내가 일본의 카페에서는 237ml의 숏 사이즈 커피를 파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된 충격과 비슷하였다.
일본의 스타벅스는 신기하게 355ml의 톨 사이즈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이즈 더 작은 숏 사이즈부터 시작한다. 오히려 가장 큰 벤티 사이즈는 팔지 않는달까. 스타벅스뿐만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프랜차이즈점 카페부터 개인 카페까지. 두 세 모금이면 사라질 듯한 적은 용량의 커피를 판매하곤 하는데, 나는 한동안 그것이 일본인들이 워낙 소식하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이유에서 숏 사이즈의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커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다.
특히 따뜻한 커피의 경우에는 식으면 맛이 없으니 식기 전 얼른 마시기 위해 적은 용량의 커피를 주문한다는 사실을 알고선 어찌나 놀랍던지. 한 겨울에도 벤티 사이즈에 얼음 한가득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를 주문하고 그걸 하루 종일 수액을 마시듯 쪽쪽 마시는 나로서는 저절로 감탄이 나올 수준의 커피 사랑이었다.
어떻게 커피를 그렇게 생각할 수가.
어떻게 커피를 이렇게 마실 수가.
커피백은 맛없었지만 덕분에 사소한 한국인과 영국인의 차이에 대해 새롭게 깨달아가는 런던 생활 2주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