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
글 장현석, 그림 이지호
그때가 진짜 좋았는데. 돌아보며 얘기하기에는 은밀한 쾌감이 있다. 언제고 힘들지 않았겠냐마는 지금 보니 꽤 괜찮은 날들이다. 누구에게나 시절은 한겨울 무심한 눈처럼 쌓이고 그중 잊을 수 없는 날엔 추억이 이름 붙는다. 오늘과 다른, 혹은 다르길 바라는 추억의 명장면들은 오밀조밀 이어져 아련한 조각보가 되어있다.
그 시절 로맨스는 무구함으로 시작되었고 그만큼의 무지가 빚은 오해로 끝났다. 원래 다 그렇다는 말 따위에 위로받으며 허둥지둥 살아갔고 또 누구를 만났겠지. 그리고 한참이 흐른 어느 날 연인을 앞에 두고 이전만큼 멍청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다. 오늘의 연애에 지쳐 스스로를 돌아보면 가장 어설프고 희미하던 첫사랑이 기다렸다는 듯 화려한 옷을 입고 드러난다. 첫사랑의 추억은 오래전 순수가 보내온 얄궂은 소포 상자에 담겨있다.
한 여자가 남자를 찾아와 건축을 의뢰한다. 그녀를 위한 집을 이야기하며 건축가는 마음 한구석 처박아둔 첫사랑의 감정을 함께 떠올린다. 거칠게 잘린 과거의 단면을 이으며 둘은 고마움과 미안함, 원망, 질투 등을 모두 붙인 아련함으로 집을, 기억을 쌓아 올린다. 완공된 집의 창밖에 세찬 바람이 분다. 바람 불면 다시 타오를 줄 알았던 시절인데, 지나치듯 건넨 짧은 인사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