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팅힐>
글 장현석, 그림 이지호
내레이터가 등장해 나긋하게 말한다. 그리고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못된 계모는 벌받았고 마음씨 고운 신데렐라는 상을 받았다. 여기까지 우리가 아는 엔딩이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신데렐라는 남몰래 고민에 빠질지 모른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왕실 생활과 쫓아가기 힘든 왕족의 취향 때문에. 어울리는 한 쌍일까 싶은 회의가 깊어만 간다. 왕자님, 이렇게 다른데 우린 과연 행복한 걸까요.
대상을 두고 외부 정보로부터 선이해를 만드는 것은 본능이다. 나와 한참 다르다면 촉은 더욱 예민해진다.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신분은 때로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 배경이 신경 쓰이는 나머지 왠지 다를 것만 같은 그의 생각과 의도를 부지런히 지레짐작한다. 재벌이니까 떡볶이는 안 먹겠지? 같이 다니기엔 내 유명세가 부담스럽겠지? 친절한 추측과 섬세한 배려가 난무할수록 상대와 거리는 좁혀지기 힘들다. 다름보다 다름을 대하는 태도 탓에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는 난제로 남는다.
할리우드 톱스타와 런던 구석 동네 서점 주인의 로맨스. 황당한 판타지는 남자의 무던함으로 현실이 되었다. 윌리엄은 자신과 다른 화려한 세계에서 왔을 여자를 가장 담백하게 대한다. 안나가 누구인지 안나에게 조심스레 묻던 남자에겐 쓸데없는 배려도 억측도 없었다. 덕분에 억세게 운 좋은 할리우드 스타 역시 서점 주인에게 다가갈 용기를 낸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구태의연한 엔딩 뒤로도 해피한 이야기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