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현석 May 29. 2023

#25 질탕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Horace Silver 호레이스 실버

<Song for My Father>


질탕-하다 「형용사」 신이 나서 정도가 지나치도록 흥겹다.



음악을 들을 때 펑키(Funky)하다는 말을 쓴다. 재즈뿐 아니라 디스코나 록에서도 익숙한 표현인데 이를 두고 한 인터넷 사전은 ‘파격적이고 강렬한 멋이 느껴지는 데가 있다’고 적었다. 틀리진 않은 것 같다만 어딘가 부족하다. 펑키라는 단어는 강렬함을 넘어 정돈되지 않고 살짝 퇴폐적인 기운을 담고 있다. 여기엔 물론 본능을 자극하는 그루브와 악흥이 포함된다.


사진의 남자는 호레이스 실버의 실제 아버지다.


펑키한 재즈 플레이어의 대표주자는 호레이스 실버다. 탄력적인 리듬과 대중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하드밥 전성기를 구가한 재즈 피아니스트인 그가 64년 발매한 앨범 <Song for My Father>는 흥겨우면서도 이국적인 풍의 트랙들을 자랑한다. 동명의 보사노바 트랙 <Song for My Father>에서 또랑또랑 울리는 피아노와 청량한 카멜 존스의 트럼펫은 카리브 해변 위로 부서지는 파도처럼 보드랍게 어울린다. 3번 트랙 <Calcutta Cutie>에서 하드밥의 근본을 지키는 통통 튀는 피아노 솔로는 시큼한 인도 정취를 품고 있으며, 8번 트랙 <Que Pasa?>는 들썩이게 하는 빠른 드럼 리듬 위로 퀴퀴한 라틴 멜로디를 얹는다.


명품 발라드를 빼놓을 수 없다. 호레이스 실버가 작곡한 6번 트랙 <Lonely Woman>은 해 질 녘 서서히 땅거미 지듯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피아노 연주가 매혹적이다. 또한 과하게 감상적이거나 슬픔을 내세우지 않아 편안하다. 색소포니스트 조 헨더슨의 분답한 연주가 돋보이는 5번 트랙 <Kicker> 다음에 배치한 탓에 벨벳처럼 감기는 고급스러운 촉감이 배가된다.



<Song for My Father>는 두 팀의 호레이스 실버 퀸텟들 작품이 한 데 모인 특이한 앨범이다. 당연히 트랙별로 연주자도 제작 연도도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주인공 호레이스 실버가 중심이 되어 또렷한 음악적 지향과 수준 높은 작곡으로 탄생한 명반이라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아트 블래키와 함께 꾸린 밴드 ‘재즈 메신저’부터 본인의 이름을 내건 퀸텟까지 탄탄하고 흥 가득한 재즈를 남겼다. '펑키하다'라는 형용사가 있다면 가장 어울리는 아티스트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