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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Jul 09. 2023

#31 주밀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Sarah Vaughan 사라 본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



주밀-하다 「형용사」 허술한 구석이 없고 세밀하다.



전국 5대 짬뽕 맛집, 한국 가요계 4대 보컬, 대한민국 5대 명산. 


누가 어떻게 정하는지 알 길 없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흔히들 재즈에 3대 여성 보컬이 있다 말한다.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그리고 사라 본이다. 다이나 워싱턴과 니나 시몬이 들으면 놀라 눈 커질 일이지만 종종 셋이 함께 언급된다. 실력으로 순위를 매겼을 리는 없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여성 재즈 싱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사라 본이 누구인가. 영화 ‘접속’의 OST <A Lover’s Concerto> 목소리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다들 끄덕일 테다. 언뜻 들었을 때 남성인가 싶은 탁성과 쭉쭉 내려가는 목소리, 가늠하기 힘든 풍부한 성량과 강박적인 디테일이 모여 사라 본이 된다. 그녀가 내뱉는 소리 끝자락은 공간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채우는 매캐한 연기를 닮았다. 이 정도까지 해야 되나 싶을 만큼, 깊고 외진 구석까지 부지런히 더듬는 섬세함이 있다.



1954년 앨범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은 악기에 비견되는 사라 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빅 밴드 시대가 저물고 시작된 비밥 시대에 활동하던 그녀는 빅 밴드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보컬이 아닌, 목소리 그 자체가 하나의 악기인 보컬이었다. 6번 트랙 <Embraceable You>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자유로운 표현력을 더해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악기가 된다. 부드럽고 곧게 뻗을 땐 관악기 같은데 살짝 세게 눌러 비브라토를 표현할 땐 영락없는 현악기다. 프렛 없는 악기를 연주하듯 피치가 떨어질 땐 아련함마저 함께 구부러지는 듯하다. 



1번 트랙 <Lullaby of Birdland>는 그녀의 별명 Sassy와 잘 어울린다. 새침한(Sassy) 그녀는 고음을 올릴 땐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오르지만 저 아래로 떨어질 땐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내려간다. 안 그래도 따라 부르기 어려운 노래에 고난도 스캣까지 더해 사라 본 표 <Lullaby of Birdland>가 완성된다. 2번 트랙 <April in Paris> 도입부에서 “April in Paris, chestnuts in blossom...” 이라며 덤덤하게 내뱉을 때 미리 각오하는 게 좋다. 곧이어 쓰나미처럼 커다란 애수가 밀려와 덮칠 것이니까. 풍부하고 안정감 있는 바이브레이션은 마지막 하나의 디테일까지 탁월하다. 



빌리 홀리데이에게 색소포니스트 레스터 영이 훌륭한 파트너였던 것처럼, 사라 본에게는 트럼펫 연주자 클리포드 브라운이 있었다. 특히 <Lullaby of Birdland>에서 공명하듯 대답하고 함께 연주하는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은 딸을 응원하는 아버지처럼 희망적이다. 뛰어난 합이었지만 클리포드 브라운의 요절로 인해 둘이 함께한 세월은 길지 않다. 그래서일까 사라 본에게 회답하는 명품 트럼펫 솔로를 담은 <April in Paris>이 특별하다. 제목이 괜히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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