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에게
아빠는 오늘 오랜만에 회사에 나갔어. 우리나라에는 출산휴가라는 제도가 있는데 어제까지 아빠에게 주어진 기간의 절반을 썼다. 엄마가 잘 회복하고, 키티가 엄마 아빠 집으로 돌아올 즈음 남은 휴가를 보내고자 해. 갓난아기를 뉘어두고 집으로 돌아오던 밤, 빨간 신호등 아래서 느낀 미안함이 너를 향한 건지, 엄마와 장모님을 향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축하로 가득한 하루였다. 많은 동료 분들이 키티와 엄마의 안부를 물어주었고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넸어. 물론 친한 동료들과 아이를 키우는 선배들은 고생길이 열렸다고 놀리더라. 네가 태어나던 날 동료에게 보낸 키티 사진이 인트라넷에 올라와 있었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한참 댓글을 읽었다. 한 선배는 내게 진짜 남자가 돼서 돌아왔다고 하던데 곱씹을만한 말인 것 같아. 이제 나의 역할에는 아빠라는 게 생겼잖니.
아빠와 엄마는 회사원이야. 분야도 다르고 업무도 다르지만 결국 회사를 위해 일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란다. 키티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우리가 아홉 시에서 여섯 시까지 회사를 다니는 걸까, 엄마 아빠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있어. 당장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대로 우리가 버는 수익은 충분한 걸까, 네가 커가면서도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해.
앞으로 네가 자라면서 참고할만한 팁이다만 엄마는 커리어 욕심이 있는 사람이야. 같이 일해본적은 없지만 엄마 동료들에 따르면 일도 꽤 잘한다는 것 같더라. 나는 엄마에게 커리어가 중요하다는 말을 우리가 처음 만나던 대학생 때부터, 직장인도 아니면서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줄곧 들어왔단다. 그리고 학생 때나 지금이나 아빠는 네 엄마의 일하는 자아를 존중하고, 거기서 재미와 의미를 찾길 응원한다.
아무래도 아빠가 보고 듣고 만나는 세상이 엄마의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분명한 건 여자 사람에게 커리어란 쉽지 않은 주제다. 이제부터는 직장인과 엄마라는 역할 사이 딜레마가 슬슬 생기겠지? 선택의 순간이 오면 엄마와 아빠는 어떤 판단을 할까 가끔은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을 걱정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한참이나 힘들겠지만 그건 키티의 잘못이 아니며 엄마의 잘못도 아니란다. 결국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함께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되니까. 다 그러고 사는 거 아니겠니?
엄마는 일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육아 휴직을 쓰지 않았어. 너와 함께 보내는 약 3개윌 뒤 엄마도 오늘 아빠처럼 일을 할 거야. 3개월이라니, 그 누구든 작고 여린 너와 함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말할 거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일이니까, 또 언제나 그랬듯이 우린 우리만의 답을 찾을 거니까 여기까지 하자.
아빠는 걱정을 미리 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건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3. 08.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