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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써머 Oct 12. 2020

두 번의 만남과 한 번의 이별

시작되지 못한 사랑을 위한 인사

사귀기도 전에 차여본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서로가 힘들어질 게 보이는 연애라면, 시작하기 전에 끝내는 게, 정말 더 나을까? 사실 나는 이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힘들어질 게 뻔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힘듦을 각오하고라도 나를 잡을 마음까지는 없었던 거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슬퍼지지만, 감정과 상관없이 그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슬퍼졌다. 


고작 두 번 만난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 게다가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은 채 일주일도 안 된다. 그런데 그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이, 몇 시간 남짓한 짧은 만남이 내 마음을 이렇게 헤집어놓았을 줄이야. 만남을 그만하자는 연락을 받았고, 진심을 다해 잡았지만 잡히지 않았다. 마음이 텅 빈 것 같다. 금사빠면 이런 아픔도 금세 잊고 또 금방 다른 사람에게 빠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시작은 빠르고 맺음은 어려운, 느린 마음을 안고 산다. 시작도 못한 이별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우리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던 며칠이었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도 우리는 다음번 만남을 기약했고, ‘다음에는’이라는 가정 하에 몇 가지 사사로운 약속을 나눴다. 첫 만남에서 그는 헤어지며 “또 봐요, 괜찮죠?”라고 물었다. “또 볼 수 있을까요?” 같은 정중한 물음이 아니었다. “또 봐요, 괜찮죠?” 라는 말에는 함께 시간과 감정을 공유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합의가 깃들어 있었다. 우리는 오늘 좋았네요,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죠? 하는 은근한 자신감과 공감 유도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이별을(사귄 적이 없니 이별 축에도 못 들겠지만) 통보했을 때 나는 잘 되어가고 있는 관계가 틀어진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함께 슬픔과 아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겨우 두 번 본 남자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나조차도 참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가 왜 그렇게 슬펐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에게 소개팅남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내가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잴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그저 좋아하기만 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늦은 나이에 떠난 워킹홀리데이 때문에 한국을 떠나 있던 사이 많은 것이 변한 느낌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 정년기’에 접어든 건지, 내 주변의 좋은 남자들, 내가 사랑할 수도 있었던 남자들은 이미 다 떠나간 것 같았다. 세상의 반이나 되는 남자들 중에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한 명은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연애나 결혼을 엄청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도, 혼자가 편하고 자유로운데도 그랬다. 쿨한 척을 할수록, 혹은 쿨해지려 할수록 나는 그 불안감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사람이었다. 


‘겨우 두 번’이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해줄지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고, 말투에 여유와 유머가 배어 있는 사람이었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취향이 다른데도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와 말투가, 과하지 않은 매너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내게 마지막을 고했던 순간을 반추해 보건대 솔직하고 소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물론 그 역시 단점이 많을 것이다. 내가 또 콩깍지를 뒤집어썼을 확률이 컸다. 소소한 단점들까지 챙기기에 우리가 나눈 몇 시간은 짧디 짧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상상의 나래를 펴며 연애가 시작될 때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가 나눈 감정은, 그가 다시 바빠지자 바로 차단될 수 있는, 그렇게 약한 것이었다는 게 마음 아팠다.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인데,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그것을 극복할 만큼, 나에게 양해를 구할 만큼 나에게 빠져들지 않았다.


당연히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두 번의 만남에 그렇게 큰 기대를 걸었던 내가 이상했다는 걸,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시작도 되지 못한 두 번의 만남은 나를 많이 울게 했고, 얼마간은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얼마나 이어질지 몰랐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더 똑똑하고 성숙해 보이는 내가 아닌, 그대로도 충분히 씩씩한 나를 보여줬고, 상대방 역시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거절당할까 하는 두려움의 벽을 쌓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먼저 연락했고, 퇴근 후 그가 사는 곳까지 초행길을 가기도 했다. 헤어짐을 고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내 마음을 주섬주섬 드러내며 그를 잡았다. 여자가 자존심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랐지만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특히 그의 말투와 목소리가 좋았음을, ‘진짜’ 마지막이었기에 솔직하게 말해줬다. 답은 없었다.


연애와 관계에 있어 솔직함이 최선의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내 마음을 적당히 감추고 드러내면서 그를 애태울 방법을 알지 못하고, 혼자 내린 그 결정을 뒤집을 만큼의 매력은 어떻게 보여주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표현할 뿐. 우리 인연의 시작점은 그에게 있었으므로. 사람의 마음은 안달하고 잡으려 할수록 더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나는 또한번의 경험으로 깨달았고, 그 깨달음의 고비마다 늘상 운다. 쏟아내는 눈물만큼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단단해지기를, 이제는 그것만을 바란다. 






내가 느낀 이 끌림의 감정이 나만의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작은 마음이지만 진심이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좋아하면 그러는 거야.


바보.

감정불구.

언젠가 나 때문에 울 거야. 울길 바래. 


_ <또 오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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