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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태 Jan 09. 2020

소심해지는 지인 가게

누구를 위한 배려인가

책방 근처에 아는 형님이 중국집을 냈다. 책방으로 가는 길에 지나쳐야 하는 건물 2층이다. 몇 달 전 개업 소식을 듣고 축하 겸 술 한잔하러 간 후 못 갔다. 아니 안 갔다.  


점심을 해결할 곳을 떠올릴 때 형님네 중국집을 애써 외면한다. 책방으로 향하는 길에 점심을 해결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고 있다. 중국집 불이 켜진 것을 매번 확인하면서도. 


맛이 없는 게 아니다. 형님은 중식으로만 잔뼈가 굵은 요리사다. 여의도에서 제일 큰 중국집 주방장을 하다가 자기 가게를 차렸다.  음식 솜씨야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고 새로 인테리어 한 가게이기에 내부 분위기도 좋은데 선뜻 발걸음이 가지 않는다. 


형님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부담을 느꼈다. 형님네 중국집을 들어서는 순간 주방에 있을 형과 아는 체를 한다. 주문을 하면 분명 서비스가 나올 테다. 왔는데 밥만 먹고 가기에도 좀 애매한 사이기에 담배라도 한대 피우며 담소를 나눌 것이다. 무엇보다 제 값을 받을지 미지수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런 과정이 형님에게 부담을 줄 듯해 안 갔다.  


며칠 전 나름 큰 마음(?)을 먹고 형님네 중국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자주 오겠다고 한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들어가서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조용히 밥을 먹고 계산하면서 인사를 할까, 라는 생각도 하며 형님네 중국집으로 향했다. 


출입문을 열자마자 형님과 눈이 마주쳤다. 형님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켰다. 요리 양이 생각보다 적다. '서비스가 있겠구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시키지 않은 메뉴가 나왔다.  조금 이른 저녁 시간대 왔기 때문에 아직 손님이 많지 않다. 형님한테 담배 한 대 피자고 말할까 고민이 됐다. 손님으로 왔기에 홀에서 형님과 대화를 나누기 어색한데 밖에서 담배를 같이 피우며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주방 안에서 뭔가 바쁜 소리가 난다. 


조용히 일어나 주방 쪽을 살짝 흘겨보며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데 후회된다. 그냥 주방 안에 있는 형님한테 "바쁘지 않으면 담배 한 대 같이 펴요"라고 말 한마디 던지면 되는 것을. 


불이 붙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담배로 끄고 식당으로 들어가려고 발을 옮기는데 형님이 나온다. 


"왜 혼자 나가. 같이 좀 피지."

"아, 그냥..."


다시 자연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짧게나마 이런저런 얘기를 형님과 나눴다. 요새 손님이 생각만큼 늘어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서빙하는 분을 한 명으로 줄였다고. 입소문이 조금씩 나는 거 같은데 아직 갈길이 먼 거 같다고. 하루 종일 가게에만 있으니 답답하다고. 너라도 자주 와서 얼굴 좀 보자고. 


딱 시킨 음식 값만 내고 형님네 중국집을 나왔다. 뭔가 미뤘던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다. 머릿속으로만 지레짐작하며 형님네 중국집에 가는 것을 망설였는데, 맞닥뜨리니 별거 아니었다. 다음엔 생각 좀 안 하고 그냥 가야겠다. 중식이 먹고 싶은데 형님네 중국집 근처다, 그럼 그냥 들어가야겠다. 누구를 위해 그리 배려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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