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태 May 07. 2024

'후련한 말'을 경계하며

나의 글쓰기

"악마야."


문장 전체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고, '악마'라는 단어는 20년 정도 지났는데도 확실히 기억한다. 대학생 때였다. 학교를 가는 마을버스 안이었다. 내 뒷 자석에 있던 또래 여자들 몇 명이 당시 뉴스에 나온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군인이 내무반에서 총을 난사해 다른 병사들이 사망했던 사건이다. 대화를 하던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총을 쏴 동료 병사를 죽인 그 가해자를 악마라고 규정했고, 다른 이들도 맞장구를 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앞 좌석에 앉아 의도치 않게 대화가 들렸던 나는 불편했다. 난 군대를 제대한 복학생이었다.


나 역시 같은 뉴스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갑자기 같은 내부반에서 생활하던 후임 아니면 선임 또는 동기가 쏜 총에 생명을 잃었을 누군가의 허망한 삶을 어떤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총을 쏜 병사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가해자를 악마라고 말하는 이들이 가볍게 느껴졌다. 당장 자신들이 느끼는 충격적인 감정을 배설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 같았다. 가해자가 우리랑 다른 사람이기에, 그가 인간이 아닌 악마이기에 저런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질렀을까. 가해자가 군대에서 어떤 환경을 버텨왔길래 결국엔 저런 무도한 짓을 결행했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던 계기였다.


정치권을 취재하다 보니 이분법에 익숙해진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리다고 규정하고 맞서야 그나마 '차선'의 성과를 거머쥔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절충안을 만들어내는 '최선'을 찾기는 어려운 정치 현실이다. 협치의 결과물은 지지부진하고 멀다. 정치적으로 차선의 성과라도 내기 위해서는 쉬운 길이 있다. 진영 논리다. 지지층의 환호 만큼은 확실히 확보할 수 있다. 진영 논리는 선명할수록 지지층의 갈채는 거세다. 선거철일수록 더하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강성 지지층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말이 쉽고 정치적으로 득일 가능성이 높다.


선명할수록 진실돼 보인다. 확신에 찬 자신감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결점 없는 절대적인 진실처럼 들린다. 듣는 이 역시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다. 단순 명료한 주장에 편안히 기대면 된다. 편안함에 균열을 내는 말을 '다른 목소리'라고 배려하면 골치 아프다.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한다. 하지만 다른 것을 틀리다고 규정하는 순간 나는 선이고 저들은 악이 되는 명쾌함까지 덤으로 따라온다.


아직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아 그나마 상식적인 사고를 있는 사람들은 헷갈린다. 양쪽 다 나름의 논리를 갖춘 같고, 어느 한쪽이 틀리다고 하기에는 각각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는데, 서로 틀렸다고 확신하듯 말하니, 오히려 내 생각에 의문을 갖는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하며.


진영논리에 기반한 선명한 주장이 환호를 받는 정치권에서 내 생각에 자신이 잃는 요즘, 중심을 잡게 해 준 '오래된 말'을 최근에 만났다. 이 말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썼다.


1989년 4월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축구팬 97명이 압사하고 760여 명 이상이 다쳤던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독립조사위원회를 이끌었던 필 스크레이턴 영국 퀸스벨파스트대(QUB)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적 진실은 없다. 다만 다수의 사람이 일치하지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이를 종합했을 때 드러나는 ‘종합적 진실’이라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 서열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