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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22. 2021

몸의 냄새가 계급표는 아닐까? 체취 계급론

가난의 냄새와 부자의 냄새가 따로 있을까요?

아는 동생이 쿠팡 택배를 하다가 그만뒀는데, 이유가 냄새였어요. 수상한 냄새가 나는 집에 배달을 갈 때마다, 스트레스가 되더라는 거예요.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공황장애 비슷한 게 오더랍니다. 본인도 딱히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닌데도, 그 집에서 나는 냄새가 상당이 불편하더래요. 그게 혹시 가난의 냄새는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형이 냄새에 민감했는데, 저도 크니까 알겠더라고요. 찌개를 오래 끓이면 냄새가 옷에 다 배잖아요. 더워서 잠깐 벗으려고 하면 숨어 있던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이  뿜어져 나오죠. 잘 사는 집이라고 찌개를 안 먹는 건 아닐 텐데요. 청국장은 부자들도 좋아하지 않나요? 그 친구들에게선 니베아 냄새와 피존 냄새가 폴폴 나더라고요.


어릴 때 외갓집이 삼양동 산동네였는데,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방에서는 나프탈렌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섞여서, 잠시라도 있기 싫더군요. 똥간(화장실 아니고, 똥간이죠)에선 묵은 똥내가 지긋지긋했어요. 방바닥 장판은 손으로도 들렸는데, 습한 물기로 축축했고, 벌레도 기어 다녔어요. 대학교 다닐 때 청담동 친구네 집에서 잔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내 냄새 때문에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 놔야 했대요. 앞에선 억지로 웃는 척했지만, 얼마나 창피했겠어요? 그 냄새도 가난의 냄새였을 거라 짐작해요. 피죤에 돈을 쓰는 건, 어머니에겐 말도 안 되는 사치였어요. 무궁화 빨랫비누 냄새와 나프탈렌 냄새가 몸에서 덕지덕지 풍겼을 거예요. 세탁기가 생기고 나서는 하이타이나 슈퍼타이 냄새가 났을 테고요. 옷을 매일 갈아입다뇨? 그때는 속옷도 며칠에 한 번씩 갈아입었어요. 매일 속옷을 갈아입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으니까요. 음식 냄새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살았어요. 좁은 집에서 음식 냄새가 어디로 가겠어요? 겨울이면 창문까지 꼭꼭 닫아 놓으니, 냄새는 훨씬 진하게 옷 속에 스며들 수밖에 없죠. 혈기 왕성할 때니, 발 냄새도 장난 아니었을 거예요. 신발 두 켤레로 바꿔가며 신는 것도, 그때는 상상도 못 했어요. 좋은 샤워젤이나, 보디로션 같은 게 있겠어요? 데이트 비누나 알뜨랑 비누로 머리 감고, 몸도 씻고 하는 거죠.  


치실을 대학교 졸업하고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그 전엔 구취가 얼마나 심했을까를 생각하면 암담해요. 이 사이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찌꺼기들이 숨어 있는 줄 누가 알았겠어요? 뉴욕 가는 비행기에서, 제 옆에 중국 사람이 탔는데요. 평생 치실 한 번 쓰지 않은 초강력 구취가 어마어마하더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구가 더 놀랍더라고요. 그냥 넘길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거든요. 치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을 거예요. 삶이 바쁘면, 치실은 귀찮고, 사치스러운 물건일 뿐이니까요.


가난의 냄새가 어떤 건지는 정확히 몰라요. 제가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니까요. 막연히 추측할 뿐이죠. 냄새가 이유가 되어, 사람을 왕따 시키는 걸 여러 번 목격했어요.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이게 무슨 냄새냐고, 책으로 부채질을 하며 유난 떨던 이탈리아 여자애가 떠올라요. 냄새의 주인공은, 전혀 눈치를 못 채더군요. 서양 친구들이 왜 데오도란트에 목을 매겠어요? 다른 건 깜빡해도, 데오도란트는 깜빡하면 안 돼요. 데오도란트를 깜빡했다고, 약속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캐나다 친구도 기억나네요. 내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참 무섭죠. 나는 모르니까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몸에 붙어 있는 냄새라, 공기  냄새려니 하고 살았을 테니까요. 땀 좀 흘렸다고, 아예 엘리베이터를 안 타는 일본 친구가 있었어요. 그렇게 철저하게 조심해야, 내가 가진 비밀스러운 악취를 숨길 수 있는 건지도 모르죠. 아무도 눈앞에서 이야기하지 않아요. 잠깐 인상을 쓰고는, 천천히 멀리할 뿐이죠.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냄새 때문이라면, 그 충격은 쉽게 떨쳐내기 힘들 거예요. 나는 괜찮겠거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채식을 하는 프랑스 친구는, 전혀 체취가 없더군요. 데오도란트도 안 쓰는데, 서양인 특유의 체취가 안 나는 거예요. 어쩌면 먹는 게, 몸의 냄새를 좌우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저에게도  희망이 있어요. 여전히 가난하지만, 깨끗한 음식으로 냄새 관리 좀 해보죠, 뭐. 건강한 몸에선, 분명 건강한 냄새가 날 거예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많이 아팠던 적도 있고, 숨고만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저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시간도, 결국 꼭 필요한 시간일 거예요. 내 몸 안의 세균들도 이러 저런 일들을 해내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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