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모호하고, 뜨거운 열망과 절망
국민학교 때부터 큰 편에 속했어요. 한 살 터울의 형은 고등학교 때부터 크기 시작하더라고요. 중학교 때까지는 저보다 작았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중2 때 1년에 10센티가 크더라고요. 밥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니, 허기가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어요. 그게 다 키가 크려고 그랬던 거였더라고요.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뒤척일 때가 많았죠. 고1이 되니까 성장이 딱 멈춰요. 1,2센티 자라고 말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상승 곡선이 있으면, 하강 곡선도 있기 마련인데요. 연착륙이라도 했어야죠. 대나무처럼 정신없이 크다가, 단면이 절단된 것처럼 황당해요. 형이 저보다 커지는 건 괜찮아요. 형이니까요. 태민이 때문에 돌아버리겠더라고요. 태민이는 중1 때 같은 반이었어요. 저보다 작았죠. 성적은 비슷했어요. 태민이는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사셨는데, 도우미 아주머니도 있는 2층 집에 살더라고요. 제가 기가 좀 많이 죽었죠. 우리 반에서 가장 맛있는 도시락 반찬을 싸오는 아이이기도 했어요. 반찬통을 열면, 모든 아이들이 달려들어요. 삽시간에 반찬이 동이 나면, 물에 맨밥을 말아서 먹더군요. 다른 애들 반찬은 못 먹겠다는 건가? 이 아이의 우아하고, 독특한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리고, 멋져 보였어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태민이는 이과, 저는 문과였어요. 저는 어려워진 공부에 헤매고 있는데, 이 아이는 모의고사 수학을 내리 만점을 맞더군요. 전년도 학력고사 수학이 역대급으로 어려워서, 모의고사 난이도가 상당했는데도 단 한 문제도 안 틀리는 거예요. 피가 거꾸로 솟죠. 중학교 때는 저에게 수학을 물어봤던 아이였어요. 왜죠? 아버지가 과학고등학교 과학 교사였나 그랬을 거예요. 유전자가 다르다는 건가요? 아버지가 각 잡고 비밀과외를 해주신 걸까요? 원래부터 타고난 아이였는데, 제가 몰라본 걸까요? 극복할 수 없는 실력차에, 참담할 수밖에요. 더 절망적인 건 키였어요. 분명 작고, 귀여운 아이였는데 이놈이 고등학교 때부터 하루가 다르게 크더라고요. 180을 훌쩍 넘어 버리는 거예요. 저의 질투는 가늠이 안 될 정도였어요. 내려다보던 아이를, 올려다봐야 해요. 내 몸이, 나를 가두고 죽으라고 몰아붙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배부른 고민이죠. 먹고살기도 빠듯한 시대였는데, 그깟 키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다니요? 이성적인 소리는 하나도 안 들려요. 없는 돈으로 키 크는 운동 기구까지 사요. 그때 한 달 용돈으로 천 원 정도 받았을 거예요. 그 돈을 모으고, 모아서 키 크는 기적의 기구를 사요. 잡지에 조그맣게 난 광고를 믿고 주문을 했어요. 인터넷 쇼핑이 있던 시대가 아니니, 은행 가서, 광고에 나온 계좌에 입금까지 해가며 어렵게 어렵게 기적의 기구를 장만해요. 줄을 양팔 간격으로 쫙쫙 벌리는 기구였어요. 척추가 바르게 펴지면 숨은 키가 자란다. 뭐, 그런 원리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한 소리 들었지만, 맞아 죽어도 사야 했어요. 키만큼은 태민이보다 커야 한다. 이것만이라도 이기고 싶다. 매일 이를 악물고 척추 펴는 운동을 해요. 효과가 단번에 나는 게 아니니, 분노의 키 크기 운동도 오래가지는 못하더라고요. 결국 멈추는 성장판을 받아들여요.
분명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성장판이 닫혀서 죽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 친구 중 한 명이 같이 죽자고 했다면, 냉큼 그러자고 했을 거예요. 몇 달 정도였지만, 살아서 뭐 하나? 그런 생각을 매일 했어요. 내 몸이 상식적이지 않아서, 모든 자신감이 증발하더라고요. 하루아침에, 몸의 모든 기능이 멈춘 것만 같았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나는 열등한 생명체다. 그런 공포심이 저를 궁지로 몰고 가더라고요. 그때도 제가 어리석다는 건 알았어요. 안다는 것과 받아들인다는 것. 둘의 거리는 하늘과 땅처럼 멀더라고요. 배운 게 있다면, 그런 감정도 평생 가지는 않더라는 것 정도? 고통도 반복되다 보면,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더라고요. 어리석은 인간은 이렇게 시차 적응을 못해요. 그때 컸으면, 영원히 커야 하고, 그때 우월했으면, 영원히 우월해야 해요. 지금도 어리석지만, 피가 예전만큼 뜨겁지 않으니, 나를 끝까지 괴롭히는 것들은 없어요. 늙어감의 장점이죠. 마지막 날이 가까워짐을 알아요.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불길로 옮겨지던 종아리를 기억해요. 시체의 종아리지만, 여전히 탄탄하더군요. 어제까지는 달리기도 했을 것 같은, 그런 종아리도 결국 불길 속에서 활활 타더라고요. 몸의 종말이 보인다는 게 좋아요. 그러니 울고불고 매달릴 대상이 적어도 몸은 아니란 것쯤은 알아요. 수명의 끝이 존재한다는 것, 그게 또 위로가 돼요. 영원히 사는 몸뚱이를 지녔다면, 몸에 대한 집착은 저를 파괴시켰을 거예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입니다. 부족함을 드러내는 글을 쓰고 싶어요. 완벽한 글은 세상에 없으니,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부족한 사람들에게만 읽히는 글이고 싶습니다. 서로의 결핍에 대해, 상처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