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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23. 2021

다시 태어나도 미운 오리 새끼가 되렵니다

사랑받기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아버지는 축구공, 농구공, 야구 글러브를 사다 나르셨어요. 여유 있는 집도 아닌데, 이런 게 다 뭘까요? 친한 친구분이 미아리 대지극장 옆에서 스포츠 용품점을 하셨거든요. 꼭 장남을 위한 건 아니었겠지만, 장남의 소유가 됐죠. 형이 노력상이라는, 매우 모호하고, 딱히 대단하지 않은 상을 타 왔는데 난리가 났어요. 그 귀한 바나나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 봤다니까요. 누런 시멘트 봉지에 담긴, 노랗고, 밝은 바나나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상이라는 게 이렇게나 대단한 거였구나. 저 상 꽤 많이 탔어요. 학교 대표로 산수 경시대회도 나갔었죠. 형은 한 번도 못한 반장을 4학년 때부터는 매년 했어요. 바나나 구경도 못했어요. 내 상은 상이 아닌가? 이 불공평함의 이유는 뭘까? 생각이 많은 둘째는 고민할 수밖에요. 아버지가 야구를 보시는데, 제가 허락도 없이 TV 채널을 돌려요. 뺨을 시원하게 처맞았죠. 4번 타자가 점수를 내느냐 마느냐 하는데, 싸기지 없이 채널을 돌리다뇨? 서러워서 눈물이야 줄줄 흘렸지만, 반성도 하게 되더라고요. 평소에 손찌검 하는 분이 아니었으니까요. 형은 아버지에게 뺨을 맞아 봤을까? 제 기억에는 없어요. 


사촌 누나가 지금도 미인이지만, 어릴 때 공주처럼 예뻤어요. 하루는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집이 환해지는 거예요. 형이랑, 나랑 서로 옆에서 자겠다고 싸우고 했던 기억이 나요. 누나가 제 발가락을 보면서 막 웃는 거예요. 보통은 발가락이 붙어 있는데, 저는 모두 떨어져 있다는 거예요. 누나 덕분에 제 발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 돼요. 누나가 웃는데, 너무 서운한 거예요. 나에겐 공주처럼 예쁜 사람인데, 누나에게 나는 외계인인가 보다. 웃음이 나쁜 의미가 아닌 건 알지만, 위축이 되더라고요. 발가락을 붙이는 수술도 있을까? 없을 것 같지만, 있기를 바라면서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죠. 자격지심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라, 형과 늘 비교가 되니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형은 어디를 가나 사랑받고, 저는 늘 격리가 돼요. 저만 외떨어져서 뭔가를 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공상을 즐기고, 왜 나는 형처럼 인기가 없을까? 고민하게 되는 거죠. 부정하고 싶지만, 외모도 큰 이유일 거예요. 어릴 때 별명이 떡판이었어요. 가로로 길쭉한 얼굴에 눈은 몰리고, 눈썹은 저만치 떨어진 균형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죠. 게다가 팔자 주름까지 깊게 파인 아이는, 저 말고 본 적이 없어요. 저라고 이렇게 제 얼굴을 분석하고 싶겠어요? 어린애 별명이 왜 떡판에 넙죽이냐고요? 그런 별명을 지어 줬으면, 귀엽다, 재밌다. 챙겨주기라도 하든가요. 눈치만 느는 거죠. 나라는 존재가 섞일 수 있을까? 사람이 많으면, 숨고 싶어지더라고요. 매일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친구들이 형에게만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저는 매달려야 겨우 어울릴 수 있었거든요. 


지금도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해맑더라고요. 자존감도 높아서,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들어도 잘만 털어내요. 대놓고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어도, 웃고 말더라고요. 저도 자유롭고 싶어요. 연연하지 않는 사람일 수만 있다면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 쉽지 않더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자기편으로 안 데리고 가겠다고, 서로 싸우는 걸 본 적 있나요? 발야구 좀 못 한다고, 어떻게 눈앞에서 싸우냐고요? 어느 팀에도 속하지 못하고, 깍두기로 발야구를 한적도 있어요. 깍두기가 뭐냐면, 유령인 거예요. 점수를 내도, 점수가 안 올라가요. 수비를 하지만, 그냥 서있기만 해요. 하도 울고불고하니까 막대기처럼 세워 놓는 거죠. 이런 굴욕을 당하면서까지 어울리고 싶어 했어요. 그게 일곱 살, 여덟 살 때 일이에요. 열 살 때쯤부터는 제 몫은 했어요. 


누구나 비슷한, 혹은 다른 방식으로 괴로운 기억은 다들 있을 거예요. 사랑만 받고, 상처 하나 없는 아이가 얼마나 되겠어요? 뜬금없지만, 전 다시 태어나도 지질한 어린 시절을 택하려고요. 물론 누구에게나 예쁘다, 잘생겼다. 왕자 대접받으면서 크면 재미야 있겠죠. 그런데 결국엔 노력이더라고요. 사랑받으려면 노력이란 걸 해야 해요. 마음에도 없는 노력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헛발질만 해요. 아파본 적 없고, 열등한 적 없는 사람들이 공감력이 떨어지더라고요. 상처 주는 말도 잘하고, 대신 상처를 잘 안 받기도 하고요. 관계라는 게 공감의 즐거움도 무시 못하죠. 일방적으로 사랑만 받았던 사람 중에는, 주고받는 감정의 재미가 덜할 때가 많아요. 감정을 편식해서, 균형감이 떨어지게 커버린 경우죠. 책을 많이 읽고, 영화라도 많이 보면서 그런 결핍을 보충하면 좋은데, 노력 자체를 안 하는 사람도 많아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노력을 해줬으니까요. 지구가 자기를 중심으로 알아서 돌아가 줬으니까요. 지질한 과거를 이야기할 때마다, 움찔 괴롭기도 하고, 구차하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누더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골고루 씹어서, 골고루 사고의 구석구석을 살찌웠다고 생각해요. 이런 제가 좋아요. 어떤 두려움이 있지만, 그 두려움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도 좋고요.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게 쉬워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요? 몸부림이라도 쳐서, 그 마음을 얻는 게 어때서요? 결핍의 기억들로 떡 벌어지는 푸짐한 어린 시절이 됐어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보이는 이 세상이, 만져지는 이 세상이 전부는 아닐 거예요. 생각이 글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자잘한 진동을 느껴요. 이 느낌 역시, 보이는 것도, 만져지는 것도 아니죠. 막연하지만, 실체 이상의 그 무엇을 기대합니다. 재밌잖아요. 무언가 좀 더 있는 세상을 기대한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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