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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25. 2021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아들, 손!

못하는 건 못하는 거예요


-돌아가시고 후회하지 말고,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해. 그게 뭐가 어렵다고! 


천하의 효자 친구가 아버지에게도 애정 표현을 하랍니다.  이 친구가 오해하는 게 있는데, 전 어머니에게도 못해요. 그나마 카톡이 있으니, 하트 표시나 가끔 날리죠. IT기술에 크게 빚지며 산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폰이 없고, 카톡이 없었어 봐요. 한 달에 하루나 전화하고 말 거예요. 그런 자잘한 안부도 어머니 한정이에요. 아버지와 아들, 우리 사이에 사랑 어쩌고가 필요한가요? 안부는 어머니를 통해 확인해요. 아버지도 그게 편하실 걸요? 아버지가 더 불편해하실 거라고 확신해요. 가풍이 원래 그래요.  큰어머니 돌아가시고, 명절 때마다 큰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려요.  아버지가 진지하게, 이제 그만 전화하라시는 거예요. 사실 아버지 성화에, 안부 전화도 챙긴 거였거든요. 큰 아버지도 어색한 게 싫으셨던 거죠. 민우 전화 좀 그만 하라고 해라. 한 소리 들으신 게 분명해요. 단 1분간, 해외에 사는 조카 전화도 불편하신 거예요. 보셨죠? 우리 집이 이런 집안이에요. 아버지도 좀 특이하셨어요. 아이들을 엄청 예뻐하셔요. 지금도요. 아들만 빼고요. 어릴 때도, 사촌들만 그렇게 예뻐하셨어요. 조카 사랑이, 자식 사랑보다 최소 두 배는 됐어요. 저는 진짜 다리 밑에서 주워온 줄 알았다니까요? 내심 바라기도 했어요. 재벌 아버지가 잃어버린, 재벌 2세를 늘 꿈꿨으니까요. 신혼 때 부부싸움을 많이 한 불똥이 자식에게 튄 걸 수도 있죠. 저는 전혀 불만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부담이 없어요. 냉정한 아들이지만,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돼요.  


사랑 표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더라고요. 솔직히 좀 불편하기도 해요. 쉰이 내일모레인데, 콧소리로 부모님과 통화하는 여자 사람 친구가 있어요. 아빠가 그랬쪄? 아니이잉. 내일 머 먹으러 가꼬야? 아버지 나이도 최소 일흔 중반이실 텐데, 저 콧소리를 다 받아주시더라고요. 옆에서 듣고 있으면, 온몸에 힘이 팍 들어가요. 빨리 끊거나, 나가서 통화 좀 해줬으면. 고문이 따로 없더라고요. 그나마 딸이니까 가능한 거죠. 아들은 저러면 사회생활 못해요. 효도 누가 하지 말라나요? 애교는 숨어서 떨어도 되잖아요. 사랑 가득한 분위기를 모르고 커서 더 그런가 봐요. 부모님께 잘하는 거,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실천이 또 있을까요? 효자, 효녀들은 많아질수록 좋죠. 그런데 표현은, 타인까지 관람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이상하게 불편하더라고요. 친한 누나에게, 이런 속마음을 이야기했어요. 누나가 놀라면서,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 누나는 사랑 듬뿍 받으면서 자랐거든요. 아무래도 자라온 환경이 영향을 미치나 봐요. 덕분에 저는 하나밖에 없는 조카에게도 무덤덤해요. 나이도 헷갈려요. 올해 열두 살인가? 열세 살인가? 가물가물하네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뇨? 대들지 않으면, 짐승은 아닌 거지. 이 정도로 만족하려고요. 사사건건 부딪히는데, 저도 나름 많이 내려놨어요. 아버지에게 사랑받으려면, 반남 박 씨 족보를 심심할 때마다 펼쳐봐야 하고, 종친회나 기타 가문 모임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비춰야 해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필독해야 하고, 조선 시대 성씨 이야기 같은 건 아버지가 스크랩해 놓으신 게 있으니, 그걸 교양서처럼 읽어야 해요. 가문을 자랑스러워하는 게 어떻게 흠이 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뭐든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잖아요. 아버지는 누구누구의 몇 대손인지를 모르면, 근본 없는 사람이라고 무시하세요. 손에 꼽는 권문 세가나 왕족 아니면, 다 아버지 발아래예요. 아르헨티나 형 만나러 가는 날, 아버지는 무지막지한 두께의 족보를 트렁크에 넣으셨어요. 수하물이 무게가 초과돼서 비싼 추가 운임을 물게 생겼더라고요. 조카 그림책을 우선 뺐어요. 책이 무게가 많이 나가거든요. 당연히 족보도 뺐죠. 공항에서 일하는 이모 딸을 불러서, 맡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아버지가, 다시 족보를 트렁크에 꾹꾹 밀어 넣고 계시는 거예요. 그때는 솔직히 좀 감동했네요. 나에겐 없는 열정이라서요.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저 정도면 인정해 드려야죠. 


저는 아버지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경해요. 어려운 시절, 우리 형제 먹여주고, 키워주고, 학교도 보내 주셨어요. 키 150cm도 안 되는 몸으로, 물러서지 않고 가장의 노릇을 다 하셨어요. 감사하지만, 그걸 꼭 사랑합니다, 아버지. 이렇게 표현할 필요가 있나요? 친구놈 말이 맞아요. 그 쉬운 표현 한 마디 안 하고,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면 얼마나 후회하겠어요? 후회할 걸 알면서도 입이 안 떨어지는 건 왜일까요? 후회를 하겠다는 거겠죠?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 정도가 딱 좋네요. 고맙습니다로 가죠. 이번에 한국에 돌아가면, 아버지 고맙습니다. 큰 절 올리면서, 마음을 전하려고요. 아르헨티나에 사는 형도, 백 프로 한통속일 걸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좀 해.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미쳤냐며 어이없어할 거예요. 그래서 효녀, 효자분들 존경합니다. 저도 노력은 해볼게요. 그 시작은 '고맙습니다'입니다. 사랑합니다는 너무 나갔어요. 아버지 괜히 체하게 할 일 있나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좋은 술은 시간의 힘을 빌리잖아요. 글도 시간의 힘을 빌리면, 향기가 나지 않을까요? 그런 글이 되고 싶어요. 다시 읽으면, 다르게 읽히고, 숨은 향도 몽글몽글 솟아나는 글이요. 아, 그렇다고 이 글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 다시 읽지 마세요. 그 정도 글은 아니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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