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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08. 2021

좋은 책을 선물 받았어요 - 외계인 게임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

훈자에서 오음작가(왼쪽)와 나

오음 작가는 파키스탄 훈자에서 만났어요. 제 이름만 듣고도 단번에 알아 보더라고요. 세상 사람들이 다 오음 작가 같았다면, 저는 돈방석에 앉았을 텐데요. 이 친구는 그 먼 곳까지 가서 글을 쓰고 있었어요. 저보다는 조금 더 비싸고, 깨끗한 방에서 참치캔을 층층이 쌓아 놓고 창작열을 불태우더라고요. 속으로는 비웃었죠. 뭘 그렇게 티를 내면서 쓰냐?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쓴다고 유난이야. 글도 읽지 않고 깎아내리가 바빴죠. 저 같은 태도는 누구에게든 있을 거예요. 내가 너보다 못할 리 없어. 불안함을, 상대방을 깎아내리면서 지키려는 거죠. 오음 작가의 글이 궁금하지도 않았어요. 대단한 글이나, 감동적인 글일 리 없다고 결론을 냈으니까요. 허허. 그런데 이 친구가 무려 5천만 원의 상금을 타요.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탄 거예요. 이젠 위치가 바뀌었어요. 그나마 세상에 알려진 사람은 나였는데, 그 하찮은 우위가 단번에 역전된 거죠. 흥, 세상이 1등이라고, 나에게도 1등이란 법 있어? 오음 작가가 쓴 '외계인 게임'이 너무 대단할까 봐, 차마 못 읽겠더라고요. 내가 무시했던 사람이 갑자기 거물이 되면, 얼마나 비참한지 아세요? 


제가 한국에 온 걸 어찌 알고, 책을 보내왔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읽어야죠. 눈에 쌍심지를 켜고, 꼰대 심사위원의 자세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 갔어요. 이 친구가 이렇게 좋은 문장을 썼던 친구였나? 인물들이 왜 이리 생동감이 넘치지? 젠장, 어쩐지 불길하더니요. 제법인데? 이렇게 읽어 나가다가요. 나보다 낫네. 결국엔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어요. 괜히 대상을 받은 게 아니더라고요. 이 작품의 강점은, 작가가 실제로 머물렀던 파키스탄 훈자가 배경이라는 거예요. 중국과 국경을 맞댄,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훈자. 가장 아름답고, 친절하며, 신비롭고, 고립된 천국이 그곳에 있어요. 굳이 호들갑 떨며 묘사하지 않아도, 훈자의 냄새가, 바람이, 추위가 잔잔하게 스며 나와요. 정통 문학상도 얼마든지 수상했겠더라고요. 문장이나, 이야기 구성에서 착실하게 내공을 쌓은 티가 나더라고요. 소설 속 인물들은 오음 작가의 분신들이에요. 40대 최 작가가 나오는데, 처음엔 저인 줄 알았어요. 읽어 나가다 보니, 최 작가 역시 오음 작가의 분신이더군요.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오음 작가거나, 오음 작가의 가까운 친구들이에요(추측이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등장해요.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소외감을 안고 살아요. 사람들은 재밌다는데, 나는 입꼬리도 올라가지 않을 때가 있으시죠? 어울리는 것 자체가 유난히 부담스러운 사람, 세상이 강요하는 가치관에 반감이 심한 사람은 꼭 읽어 보세요. 여러분의 분신이 이 책에 있어요. 흡입력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예요. 


강조하지만 문장이 참 좋아요. 꽤나 여러 번 고쳐 쓴 티가 나더군요. 소설 지망생에게는 좋은 참고서로도 추천해요. 재밌으면서, 좋은 책이 흔치 않아요. 오음 작가의 '외계인 게임'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생각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훈자에 있을 때도 훨씬 겸손할 걸 그랬어요. 잘난 척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죠. 내면에, 나는 잘 났어. 기고만장 우월감을 숨겨놓고, 피식피식 새어나가는 걸 방치했어요.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다 알아봤을 거예요. 뼛속 깊이 겸손한 사람들은 저에게 비법 좀 가르쳐 주세요. 조금이라도 과시하지 못하면, 나대지 못하면 세상 살기가 싫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우월감일까요? 열등감일까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싸움으로, 저는 가까이 지내는 글친구도 없어요. 무관심이 곧 이기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셀프 고립의 세상에 숨어 지내요. 젊고, 좋은 작가들의 글을 읽고 싶지 않아요. 분발해야 하니까요. 긴장하고, 반성해야 하니까요. 자기만족에 천천히 도태되며 살고 싶어요. 이런 좋은 책을 읽었으니, 어쩔 수 없이 분발해야죠. 세상을 두려워하며, 머리를 쥐어뜯어봐야죠. 다음 책은 더 고통스러울 거예요. 왜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내 삶을 저주하고, 감사하며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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