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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16. 2022

책돌뱅이 중간 보고서

글쟁이로서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 

부산의 한 우편 취급국에서 열심히 책 발송중

-물류 창고에 있는 책을 다 태울까 해!


책을 불쏘시개로 쓰겠다고? 이 꼴 보려고 피를 말려가며 썼나? 참담한데, 참담 이전에 황당하고 몽롱했다. 책이 너무너무 안 팔리면, 재고가 창고에서 꼼짝도 안 하면 물류회사에 돈을 내야 한다. 차라리 태우면, 물류비가 굳는다. 그러든가 말든가. 태우면, 태우는 거지. 다들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 작가가 뭐라고 자본주의 지옥을 무사통과하려고 하는가? 자고로 글쟁이는 쿨해야 하는 법. 정말 피를 말려가며 썼나? 거짓말이 아주 입에 뱄다니까. 피가 뻑뻑해지거나, 혈관에서 말라비틀어졌다는 의사 소견은 아직까지 없다. 먹고살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 중에 상위 30% 정도의 억울함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는 억울하지 않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뿐. 


가만, 이 책을 다 팔면 그 돈이 다 얼마야? 


정가로 악착같이 다 팔면, 2천만 원이다. 출판사 대표에게 태우지 말고, 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천오백여 권을 엘리베이터로, 엘리베이터에서 방으로 옮기는 작업은 혀에 백태가 낄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게 도대체 다 뭔가. 책의 부피감과 무게감에 압도되셨고, 나 역시 추상적인 글의 세상에서, 글의 무게를 구체적으로 느끼는 과정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욕심의 무게는 오바이트 전까지 음식을 쑤셔 넣고 체중계로 올라가면 되느니. 깨달음이 책을 방구석으로 옮기는 동안 저절로 찾아왔다.   


팔리지 않은 책을 거뜬히 팔아 치우는 작가가 지구에 몇이나 될까? 그 재주로 웅진 코웨이에서 정수기를 팔거나, 암웨이에서 치약을 팔았겠지. 괜히 Yes24가 있고, 교보문고가 있는 게 아니다. 강연이 있는 날이면 수줍게 트렁크에서 책을 내놓고 팔거나, 댓글이나 메시지로 주문이 오면 택배로 쏘는 게 전부였다. 하루에 백 권을 판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서예가 순원 선생님의 도움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즉시 파줍니다. 


순원 선생님의 파격적인 제안으로 강연장은 술렁댔고, 전쟁통의 구호물자처럼 책은 삽시간에 팔려 나갔다. 투르키에(터키 아니고 투르키에다)에서 개인전까지 여신 대서예가님은 값비싼 재능을 기꺼이 기부해주셨다. 이런 날이 열다섯 번만 더 온다면 애물단지 책을 싹 털 수 있다. 희망을 본 글쟁이는, 호흡이 가빠지고, 도박이나, 섹스보다 못할 것 없는 심리적 흥분상태로 며칠을 앓았다. 백 권이란 숫자에 목을 매기 시작했는데, 한 번 일어난 일이, 열다섯 번 더 못 일어날까? 무근본 확신에 단단히 미쳐가고 있었다. 일단 강연장에 책 백 권을 택배로 쏘고, 여행 강의가 끝나자마자 책상에 앉아 방실방실 웃음을 팔았다. 우리가 그냥 남인가? 조금 전까지 함께 웃고, 장단 맞춰가며 여행 이야기를 나눈 사이 아니던가? 강의 참석자들의 동정심을 파고드는 판매 전략은 20권 정도가 고작이었다. 책이 나를 보고 비웃는 건 분명 아닐 텐데, 가득 쌓인 책을 노려보면 모욕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저것들을 불쏘시개로 태워 버려야 했어. 


책을 집으로 다시 보내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왜 이리 눈치가 빠르신지. 책을 아무도 안 사주는 불쌍한 내 새끼. 한숨을 내쉬실 게 뻔했다. 그래서 그 무거운 책을 어떻게든 팔아 보겠다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으로 간 이유는, 부산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대도시니까 책 사줄 독자도 있겠지. 논리적 분석도 한몫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박민우가 부산에 왔어요. 책 좀 사주세요. 이런 글을 올리고 스타벅스에서 죽치고 있어 봤다. 마침 'EBS 세계 테마 기행 태국 삼시 세끼'편이 인기리에 방영된 직후라, 기대가 컸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TV프로 9위인 프로그램에 월화수목 매일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정도면 거의 연예인이다. 박민우 좀 보겠다고 스타벅스가 도떼기가 되면 어쩌지? 그런 민폐를 걱정했는데,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다음날, 다음다음날도 0명이었다. 평일이라고 해도 8월이고, 부산이다. 피서를 온 사람들만 해도 수십만 명일 텐데, 박민우를 보러 오는 사람이 0명이라니. 연예인병이 갈 곳을 못 찾고, 영도 앞바다의 수심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죽기야 하겠냐마는, 죽어도 싸다. 자존심이 나의 약한 부분을 물고 늘어지며, 당장 뒈지라고 약을 올렸다.  


주제 파악을 혹독하게 배운 3일이었다. 많은 걸 바란 건가? 많은 걸 바랐다. 자갈치 시장에 경호원도 없이 BTS가 등장하면, 자갈치 아지매 몇 명이나 BTS를 알아볼까? 5천 정도는 가볍게 당기는 CF 스타인 줄 착각했음을 고해한다. 꿈에서라도 박민우를 보고픈 사람이, 임영웅 팬클럽 천 분의 일 정도는 되겠지. 임영웅이 떴다면, 영도대교 스타벅스에 천 명 정도는 몰릴 테니, 그 천 명 중 한 명은 가능하지 않을까? 턱없이 오만했다. 자기 객관화가 이리도 안 되는 인간이 무슨 글을 쓴다고. 쯧쯧쯧.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스타벅스에 박민우를 보러 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니! 징징 우는 소리를 했더니,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다. 값싼 동정이어도 현금이 들어오면 나는 즐겁던데. 상식적인 작가들은 치욕을 느꼈을 것이다. 한 번에 스물다섯 권을 주문한 큰손 독자 덕에 갑자기 통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했다. 부산의 우체국에서 열심히 책을 부쳤다. 경기도 광주 집으로 돌아갈 땐, 트렁크에 고작 9권뿐이었다. 


이 글의 목적은 하나다. 박민우가 너무 불쌍해. 책 한 권이라도 사줘야겠어. 동정심을 자극해서 한 권이라도 더 파는 것이다. 완판하고 나면 집 벽지를 바꾸거나, 부모님 모시고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겠다. 


-당신은 작가인가요? 장사치인가요? 


이런 질문엔, 이렇게 답하겠다. 


-장사를 하는 모든 분들은 신이십니다. 신을 닮고 싶습니다. 


장사의 신이 되지 못해 글 쓰며 산다. 감히 장사하시는 분들과 비교됨을 이 자리를 빌려 사죄드린다. 글을 쓴다고 다 가난한 것도 아니니, 내 무능이 원죄다. 프로 장사꾼은 혓바닥이 짧다. 아주 질 낮은 영업의 민낯을 이렇게 또 들키고 만다. 원래 사는 건 만만하지 않아야 한다. 심란한데, 사는 재미인 것도 같아서 다소 혼란스럽다. 트렁크에 책 가득, 이걸 질질 끌고 합천에서 진주로, 진주에서 지리산으로, 지리산에서 다시 부산으로 믿기지 않는 떠돌이 짓을 했다. 이 지난한 여행을 얼마나 더 해야 백 권이라도 팔까? 끊었던 담배가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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