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억나는 사랑받은 이야기들
테니스 레슨 마지막 회차를 마쳤다. 레슨을 받는 동안 ‘백핸드’ 기술을 배우는데 이상하게 자세와 폼이 익숙하고 편했는데, 알고 보니 검도 자세와 테니스에서 ‘백핸드’ 자세를 취할 때 채를 잡는 기술이 비슷했던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적으로 친했던 관장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유독 나를 예뻐하셨던 감사한 관장님이다.
생각 나는 사람이 또 있다. 문득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인형이 뽑히질 않아 시무룩해 하자, 인형 기계를 열어서 인형을 꺼내서 선물로 주던 인상이 좋은 문방구 아저씨. 심지어는 더 친해져서 오토바이도 나중엔 태워주셨던 그 기억도 난다. 바람이 참 시원했는데! 아, 한 번은 자주 타던 마을버스에서 버스기사님이 내가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장하다(?)며 간식을 사 먹으라며 되려 요금을 내는 박스에 500원을 짤그랑 떨궈주셨다. 어린 마음에 감사하다며 그 500원을 들고 하루 종일 뭘 사 먹을까 고민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전혀 다른 타인으로부터 받았던 사랑들이 생각나면서 아 나도 조건 없이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거기서 또다시 난제인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의 인생 행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셋째 아들, 그중에 유난히 공부 욕심이 많았던 청년... 그는 가난했다. 그렇지만 꿈이 컸다. 뭔지 모르게 ‘큰사람’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형편에 농사를 짓지 않고 대학을 가겠다고 단식투쟁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기를 쓰고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만 노력했다. 자신을 돌보는 일이 더 높은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 가 본 그곳엔 생각만큼 대단한 희망이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현실의 벽에 부딪혔겠지. 그래서 자기가 겪었던 설움을 아마도 자식들은 겪지 않길 바랐던 것이겠지. 그래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하고 더 높이 올라가기를 꿈꿔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라는 생각도 미쳤다. 어린 시절 나는 검도, 피아노. 바이올린, 과학 영재 실험 학원까지 안 다녀본 학원이 없다. 많은 것은 경험했다. 부족한 자기의 인생 경험보다는 큰 세계를 경험하길 바랐던 거겠지. 그래서 오늘날의 내가 됐다. 그러한 경험들이 이런 나를 만들었고, 누군가에게 나의 어린 시절 이런저런 경험도 있었더라고 말하면 ‘그런 것도 해보셨구나...’하는 말을 들을 정도의 다양하고도 풍부한 경험들을 해본 사람. 나는 그런 경험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더 다양한 선택들을 하기 위해 나는 그런 멋진 경험들을 한 것이니까 그게 그의 사랑 표현 방법이었다면, 나는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이 맞다. 나의 경험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내가 행복에 가까워지는 이 순간도 그가 원한 나의 행복일 테니 나는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죄책감 없이 누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행복이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도 그지만, 이제 나는 나를 위해 그 양분들을 맘껏 흡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