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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mymeyou us Oct 06. 2022

자취는 처음이라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


  서울 자취방의 생활이 한 달이 지나서야 친구들을 초대할 여력이 나기 시작했다. 집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던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첫 자취방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었다. 그렇게 매주 주말마다 친구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부모와 독립해서 살게 되고 자기만의 공간이 생겼겠지만 나에겐 그런 용기가 생길 때까지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연수원 생활 4개월을 제외하고 내가 월세와 관리비 식비 등등을 관리하며 살아내야 하는 첫 독립이다.


자취의 로망 친구들과 연말 파티 즐기기


  제법 그럴싸한 한상이다. 파스타 요리에 꽂힌 지난겨울 집안엔 늘 버터에 볶은 마늘향이 났었다. 뭔가에 홀린 마냥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요리를 했다. 정확히는 해댔다는 표현이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내가 지금 혼자서 가장 나를 위해 생산성 있게 빠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맛있는 식사 한 끼였으니 나는 요리에 더 열중했다. 과거의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곤 한다. 내가 기억하건대, 저 시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때였다. 꼭 필요한 만남이 아니면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약속을 잡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과 독립이 겹치면서 더더욱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저나 날들은 상황 탓임을 알고 있음에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급습해왔던 고독한 나날들이었다. 집에 들어와서 차가운 기운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조명도 주황색 불빛으로, 가구도 원목이나 따뜻한 아이보리색 계열로 맞추었다. 겨울에 요리에 재미를 붙여서인지 첫 요리 입문은 주로 따뜻한 스프나 파스타 종류였다. 파스타는 마늘을 볶을 때, 편 마늘과 다진 마늘을 반반씩 섞어서 볶아주면 마늘의 풍미를 더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매운 파스타를 하기 위해 페퍼론치노를 잘게 부수는 것이 수고로우니 이미 잘게 부수어놓은 페퍼론치노 씨를 활용하기를 추천한다. 처음에 멋모르고 페퍼론치노를 다졌던 손으로 눈 주위를 만졌다가 큰 코다 친적이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이 글의 주제는 요리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아마도 나의 감정 섞인 푸념이 많이 섞일 것 같다. 그건 내가 외로움과 번잡한 마음을 요리에 꾹꾹 눌러 담아 해소했기 때문이다.


오징어+아삭할 정도로 볶은 콩나물+폰타나 크림소스


  저 요리를 해낸? 이유는 음식은 좋아하지만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나약한 나의 위를 위한 맞춤형 음식을 개발해내고 싶었다. 나의 나약한 위가 파스타면 1인분을 소화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진즉 파악했다. 파스타 면은 반으로 줄이고 대신 비슷한 식감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길쭉길쭉한 것이 비슷해서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콩나물을 같이 면처럼 볶아버렸다. 결과는 대성공. 콩나물 오징어 볶음 같은 것이 크림 파스타 같은 것이, 고소한 크림소스 맛과 아삭한 콩나물 그리고 쫄깃한 오징어까지 환상의 조합이었다. 이미 누군가는 해 먹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내 손으로 완성시킨 요리니까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 마냥 설레며 음식을 탐험했다. 이것이 마치 오징어 볶음인지 파스타인지 헷갈린 퓨전요리였지만 내 입맛에는 잘 맞았다.


아침에 주로 챙겨먹었던 차가운 요거트 요리들 ; 블루베리+카카오닙스+바나나+추가로 쑥가루,프로틴 등등


  위의 사진들은 주로 아침으로 챙겨 먹었던 밥통에 직접 발효시킨 그릭요거트에 각종 견과류들을 뿌린 간단한 차가운 요리(?)들이다. 만족감이 높은 아침식사를 하는 방법은 밤에 내일 먹을 아침밥상의 맛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잠이 들고, 아침에는 내가 상상한 그 맛을 직접 느끼며 만끽하며 먹는 것이다. 좋아하는 컵에 좋아하는 음식을 담아서 먹으면 그 20분의 식사를 위해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을 정도로 아침이 기다려진다. 더 맛있게 아침을 배고픈 상태로 먹기 위해 스트레칭을 해주기도 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즐거운 노래를 듣는 것은 덤!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어제 만들어 논 그릭요거트는 얼마나 꾸덕할까?? 내가 만든 요거트지만 정말 고소하고 양상추랑 같이 곁들여 먹으면 아삭함과 고소함이 섞여서 더 그 맛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거기에 달콤한 블루베리와 얼려놓은 바나나까지 같이 곁들이면 얼었던 바나나와 블루베리 덕분에 요거트도 마치 아이스크림 같은 식감이 되어 꾸덕함을 배로 느낄 수 있다. 아침을 먹는 내내 즐거웠다. 내 자력으로 나의 혓바닥을 만족시켜준 쾌감은 자축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밥상에 아메리카노가 함께 올라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을 먹으며 언제든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으로 입안을 헹궈주는 것이 마치 미식가가 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한때 얼죽아였지만 지금은 뜨아, 아아 가리지 않는다) 아마 술을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모든 음식에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페어링 하기 위해 돈을 깨나 썼을 것이다.


수제비와 제육복음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수제비를 빚은 날은 유독 움직이고 싶었던 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도 모르게 음식에 나의 감정이 개입되어버린다,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며 더 반죽을 쫄깃하게 만들어 내고 발효를 시키는 1시간 동안 곁들여 먹을 제육볶음 양념을 해서 간이 잘 배이도록 두었다. 수제비는 쫄깃하고 제육볶음은 쫄깃 매콤해서 그 조합이 매우 알맞았다. 계란은 수란처럼 약간 반숙으로 익혀서 고소한 맛을 음미해야 한다. 수제비 반죽 한 번만 해놓으면 국물을 내는 건 시간문제이다. 멸치 팩으로 10분 정도 끓여주고 감칠맛을 더해주기 위해 멸치액젓도 한 스푼 넣어주면 좋다. 기호에 따라 애호박, 당근, 파, 청양고추 등등을 추가해주면 한 끼로 뚝딱이다. 매콤하게 먹고 싶은 날엔 오른쪽 사진처럼 김치 국물과 김치 몇 조각을 종종 썰어서 넣으면 끝! 역시나 이 밥상에도 커피는 빠질 수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저 요리의 맛이 생각난다는 것을 보니 저 날의 식사가 매우 만족스러웠나 보다.




  간단해 보이지만 토마토와 치즈의 조합은 늘 맛있다. 토마토에 살짝 소금 간을 하고 거기에 올리브 오일과 모짜렐라를 넣고 에어프라이기에 구웠다. 아, 맛있어. 토마토는 올리브 오일이랑 만났을 때 그 풍미가 두배가 된다. 미끌거리는 식감과 아삭한 식감이 만나서 그런가? 토마토가 익기 시작하면서 나온 달짝지근한 국물과 올리브 오일 특유의 향이 잘 어우러졌다. 지금 다시 보니 저기에 양파도 잘게 썰어서 같이 넣어서 구웠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 요리의 마무리는 역시나 파슬리 가루. 저 가루는 사실 딱히 맛은 잘 모르겠는데 저걸 뿌리는 순간 요리의 마침표를 찍은 느낌이랄까, 완성도가 높아진다. 한식으로 치면 참깨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되겠다. 없으면 허전한 그 한 꼬집. 한통을 언제 비우나 했는데, 겨울이 끝나갈 즈음 파슬리 한통을 전부 비워냈다.


  파슬리 한통을 전부 비워내는 겨울을 지내고, 봄과 여름까지 나는 첫 자취생활을 마무리했다. 예상치 못한 발령으로 첫 1년여의 자취생활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사계절을 지내면서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갔던 것 같다. 잠시 겨울잠을 자는 것만 같은 웅크린 시기와 어디든 뛰어갈 수 있을 만큼 활기찬 봄, 그리고 어딘가 자유로워진 여름들을 겪어내면서 나의 에너지를 채워나갔다. 나의 입맛이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마치 침대와 떨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 마냥 모든 일을 침대 위에서 해결하는 날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글도 침대 위에서 편하게 작성 중…)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집 근처에 산책할 곳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색을 즐기는 것도 좋아하는 나는 나를 잘 다스려 보기로 했다. 어떨 땐 혼란스럽기도 했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내가 나도 이해가 안 됐다. 여러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곤 한다. 그렇지만 한 번 마음을 열게 되면 내가 마음을 닫는 일은 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쉽게들 만나고 쉽게들 정리하는 사람들이 참 가벼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도 쉬운 일은 아니었더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남이 보는 쉬운 기준과 스스로 겪어내는 것들은 다르다는 것도.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모두들 같이 속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거라면 까짓 거 별 것 아니군 이라는 생각? 두려운 와중에 마음을 열게 되는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러한 일들에 너무 마음 쓰지 않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마음을 다해버려서 소진시켜버리고 나니 비워졌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혼자만의 1 여의 시간은 가족과의 관계도 다른 시각으로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본가에 부모님과 남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다. 예전엔 가벼운 갈등에도 마치 우리 가족에게만 일어난 비극마냥 과도하게 불행해했다. 요즘은 그런 가족 간의 투닥임이 어쩔  미화가 되어 들린다. 경상도에서 태어난 그들의 대화는 서울에서 자라온 나에겐 감당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지금은 굳이 내가 감당하려들지 않는다. 감당할 문제가 아닌, 그냥 다른 것임을 인정해 버리면 그만이다. 바꾸려  필요도 없다. 단지  정도의 단순한 마음가짐으로도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가 계속 유지되기를요리를 시작한 것은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것에   발이 되었으므로 의미 있게 기록해 보았다.


모두들 잘 먹고 잘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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