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직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굿즈 평창 롱 패딩
"이거 나만 질렀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종종 접신을 합니다. 바로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인데요. 지름신을 영접하게 되면 언제나 지름 지름 앓습니다. 신병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름병은 불치병입니다. '쇼핑'이라는 미봉책이 있기는 합니다. 지름 지름 앓다가 지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지르고 싶어 지죠. 병입니다. 정 안 되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다이소라도 찾아들어가 1천 원짜리를 흩날리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나오는 게 직장인의 섭리. 잼 중의 잼은 탕진잼 아닙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이 쓰는 지름 투병기를 빙자한 쇼핑 제품 리뷰입니다.
이것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평창 롱패딩이다. 신성통상에서 제작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롱패딩이지만 뭔가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평창 롱패딩'이 더 입에 착착 감긴다. 처음에 이 평창 롱패딩이 덕다운도 아니고 구스다운인 데다가 10만 원 대 중반이라는 미친 가성비 덕에 구매 대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나는 쿨하게 지나쳤다. 왜냐하면 나는 평소 롱패딩은 모델 기럭지인 사람들이 입어야지만 그나마 인간다운 구색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코트를 입고 출근해도 직장인인지 알아볼까 말까 한데 누빔 솜이불 같은 롱패딩을 입고 수험생 포스로 출근하거나 퇴근 후 본의 아니게 거리를 강제로 패딩 밑단으로 청소하는 일만은 절대 사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결국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인이 우연한 기회에 평창 롱패딩을 구입했다. 연예인들이 TV에서 줄창 입고 나온 블랙이나 화이트 롱패딩은 실물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마침 블랙 패딩은 있었기에 지인이 사 온 그레이 내지는 차콜 컬러가 마음에 들더라. 일단 때가 타도 모를 것 같으니까. 빨기 귀찮으니까!
평창 올림픽의 공식 슬로건인 패션 커넥티드(Passion Connected, 하나의 열정)' 로고가 팔뚝과 등에 박혀 있다. 개인적으로 입으면 강제로 그 브랜드 입간판이 되어버리는 패딩이나 외투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제품은 '평창' '파워 평창' '내가 평창이다' 이런 느낌의 문구가 들어있지 않아서 훨씬 세련된 느낌이었다.
패딩 디자인과 가격은 롯데백화점 라이선스팀에서 총괄했다는데, 처음에 고민했던 문구가 평창올림픽 공식 슬로건인 '패션 커넥티드(Passion Connected, 하나의 열정)'와 ‘팀코리아’였다고 한다. 그중에서 팀코리아의 경우 외국인이 구매를 꺼릴 수 있고, 평창로고는 내년 겨울에는 입지 못할 것을 고려해 패션 커넥티트가 낙점됐다고. 뒤에 수호랑이랑 반다비가 호랑이와 곰 만하게 박혀 있거나 팀코리아라고 떡하니 쓰여 있었으면 아마 지인도 사지 않았겠지. 역시 저렇게 촌스럽지 않은 문구로 마무리한 게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고두고 입을 수도 있고. 평창 올림픽 로고는 옷 안쪽에 박혀 있다.
일단 엄청 가볍고 뜨시다. 마감도 생각보다 좋다. 정가인 14만 9000원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퀄리티. 그전에 구스다운 패딩을 살까 싶어 찾아봤는데 제대로 된 걸 사려면 최소 20만 원 중후반대는 되어야 했다. 그런데 15만 원 주면 1000원이 남아서 빼빼로나 허쉬 초콜릿 드링크를 사 먹을 수 있다니 좋잖아? 속주머니도 있다.
지퍼로도 잠글 수 있고, 단추도 있다. 패딩에 밸크로가 달려있는 디자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단추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일단 찍찍이는 입고 벗을 때 찍찍 소리가 나고 먼지가 잘 붙고 니트와 혼연일체 되어 옷을 망치는 경우가 많아서.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바람이 들어가는 걸 막아주는 소매 처리도 되어 있었다.
아이고 뜨셔라.
롱패딩들이 입으면 뚠뚠해지고 활동성이 떨어지는데 아랫단에 단추가 있어서 앉거나 걸을 때 좀 더 편안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었다. 하지만 추우니까 열지 말아야지.
단점... 뭘 단점으로 할까. 희소성...? 이 제품을 보편적으로 구하기 쉽다고 한다면 단점은 외피가 너무 얇아서 잘못하면 상처가 나서 털이 삐져나오기 쉽다는 점과 등 뒤의 로고가 조금 부실한 느낌으로 붙어 있다는 점 정도 되겠다. 여유만 되고 돈만 되면 세 컬러 다 드래곤볼처럼 모으고 싶다. 입다 지쳐 집에서 펼쳐서 구스다운 이불로 써도 손색없을 정도로 바람도 잘 막아주고 겨울 그게 무슨 계절인지 잊게 해 주고 칼바람도 막아준다. 하지만 직장 상사의 잔소리는 막아주지 못하지. 집에서 극세사 커버로 된 구스다운 이불 둘둘 말아서 입고 나온 기분이 들게 해준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도 그래 보인다. 그대로 모자 쓰고 발만 잘 집어넣으면 비박해도 될 것 같은 포스.
다만 패션은 포기하라. 원래 이 평창 롱패딩을 득템 하기 전에 입고 자는 침낭 같은 것들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그걸 보고 한참을 웃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관우처럼 나가서 술이 식기 전에 구입해온 제품이라 만족도는 낮아도 높아야 하고 안 그래도 높다. 이 파트에서 어렵게 평창 롱패딩을 구해온 지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이 좋고 따순 걸 나만 왜 몰랐어. 평창 롱패딩이 아니었으면 평생 모를 뻔했다. 왜 많이들 입는지 알겠다. 패션 포기해도 롱패딩(이불)은 포기 모태. 지인은 키가 180cm에 가까워서 무릎이 보이는 엣지있는 패션을 자랑했으나 땅꼬마의 현실은 참혹하다. 키가 170cm 정도 되는 지인에게도 입혀 보았는데 역시 적당한 길이감을 자랑했다. 패션을 포기하고 따뜻함을 얻고 싶다면 강려크하게 추천한다. 길에서 이렇게 굴러다니는 패딩러가 있으면 그중 하나는 나일 것이다. 평창 스니커즈도 가성비가 좋다는데 그건 또 어떨는지 기웃거려봐야겠다. 이제 이거 입고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하는 선수들 응원하러 가기만 하면 되나. 그전에 표가 없고 그전에 숙박할 곳이 없다. 이상 출근을 앞두고 정초부터 연휴에 카페에서 일하던 일개미의 잠시간 일탈이었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이 시대 직장인답게 언제나 지름 지름 앓고 있다. 오래 앓다가 한 순간에 훅 지르고 한동안 써본다. 10분 동안 사진 찍고 20분 동안 글 써서 3분 안에 소화되는 리뷰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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