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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칠레 Oct 05. 2016

발파라이소(Valparaiso), 노스탈지아

1492년 서구인들 입장에서 아메리카 대륙 역사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1848년 미국 서부 개척이 시작되었습니다.
발파라이소는 남반구 작은 샌프란시스코입니다.
  

골드러시

멕시코로부터 미국 영토로 갓 편입된 캘리포니아 한 골짜기 개울에서 황금이 발견됩니다.
캘리포니아 황금 소식은, 뉴잉글랜드(미 동부)의 몇몇 신문에 기사화되면서, 과장된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갑니다. 길가에 채이는 돌을 집어보니 황금이며, 금캐는 광부들이 모이는 선술집 마루만 쓸어도 주머니 가득 금가루를 채운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나갑니다. 남들이 먼저다 주워가기 전에 한몫 챙겨야 합니다. 너도 나도 새로운 황금의 땅, 기회의 땅, 캘리포니아를 향합니다. ‘마마스앤파파스’가 활동하기 백 년도 훨씬 이전이지만, 모두같이 명곡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흥얼거리며 출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849년 Gold Rush를 통해 전 세계 각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모여든 이주민들은 '49ers'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약 100년 후, 샌프란시스코를 연고지로 한 아메리칸 풋볼팀이 생깁니다.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처음으로 미서부지역에 창립된 이 프로구단은 팀명을 'San Francisco 49ers'로 정합니다. 길지 않은 역사에서 49ers는 캘리포니아인들에게 뜻깊은 선조였습니다.
  
Gold Rush를 통해, 채 천명이 안되던 샌프란시스코 인구가 일 년 만에 2만5천명을 넘습니다. 적당한 이름이 없이 ‘Boca del Puerto de San Francisco (Mouth of San Francisco Port)’로 불리던 샌프란시스코만 입구에 자리한 해협은 Gold Rush의 영향으로 Golden Gate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다리로 알려진 Golden Gate Bridge가 훗날 건설됩니다. ‘걸어서 이 다리를 왕복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라는 연인들의 이야기도 생겨납니다. 하기사, 70미터 난간 아래는 태평양 푸른바다, 석양을 바라보며 수킬로미터를 함께 걷는데, 어느 커플이든 사랑이 싹트지 않을까요? 남자 끼린들 감정, 아니 우정이 안 생긴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요. 이런 연유로 샌프란시스코가 동성애자들이 그리 많은가라는 어이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황금에 대해서 인간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일관성을 보여줍니다. 골드러시가 시작되기 200년 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찾아왔던 청교도들이 꿈꾸었던 아메리칸드림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향한 열망이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은 황금을 쫓는 캘리포니아 드림입니다. 부푼 희망을 품고 서부로 향합니다. 남미 최남단을 돌아 올라가는 2만 킬로의 멀고도 험한 여정은, 황금을 얻기 위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당연한 고행으로 받아들입니다. 마젤란 해협에 자리한 칠레 최남단 항구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와 칠레 중부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발파라이소(Valparaiso)는 황금의 땅 캘리포니아를 향하는 배들의 중간 기착지로 번성을 누립니다. 엘도라도를 향해 나가던 무리 중 일부는 언제 도착할지 모를 캘리포니아를 포기합니다. 발파라이소에 주저앉습니다. 남반구 파라다이스 밸리, 발파라이소가 칠레 최대 도시로 성장합니다.


비냐델마르에 위치한 사구에서 바라본 발파라이소



1848 혁명과 슬픈 아일랜드

  
격변의 땅 유럽에서도 캘리포니아 드림을 찾아 나섭니다. 정말로 황금이 널렸는지는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에겐 그저 살기 위해서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던 시대였습니다.
유럽을 뒤흔든 혁명이 프랑스에서 연이어 시작됩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큰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1848년 혁명입니다. 빅또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었던 혁명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배부르고 등 따뜻한 곳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럽 시민의 생활은 더 잃을 것이 없는 바닥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굶주린 “장발장”이 빵을 훔쳤고, 영국에서는 “올리버 트위스트”가 거리 쓰레기통을 뒤졌습니다. 산업혁명에 따른 도시화로 농촌 소작농은 도시빈민으로 유입되었고, 10대 초반 어린 노동자들까지 밤늦도록 기계를 돌렸습니다.
  
1848년은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해이기도 합니다. 아일랜드인들에게 남은 유일한 식량은 감자였는데, 감자 마름병이 발생한 것입니다. 800만 인구 중 200만이 굶주려 죽었습니다. 4명중 한 명은 굶어 죽고 있는데, 벨파스트 항구 야적장에는 식민 지배국 영국이 수탈해 가는 밀과 옥수수가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이백만명이 해외로 떠나면서 800만인구는 400만으로 줍니다.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인구감소입니다. 1848년 혁명은 다시 한번 프랑스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혁명이 전 유럽으로 번지면서 오스트리아, 독일, 네델란드, 이탈리아등 주변 모든 나라의 정치, 사회 체제의 일대 변화가 일어납니다. 격변의 시기, 보통 시민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피폐했을까요...
  
이런 고난의 세월 속 유럽 서민들에게 한줄기 빛이 비치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들려온 황금소식 이었습니다. 우선은 미국 동부로 건너왔습니다. 미동부로부터 캘리포니아로 가는 방법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선, 육로를 이용해 대륙횡단을 합니다. 시간적 공간적 이동거리가 가장 짧지만, 언제 어디서 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인디안에 대한 공포속에서, 허름한 마차에 의지해 물 한 방울 없는 모하비 사막을 건너고, 끝으로 험준한 로키산맥 넘어야 합니다.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여정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남극에서 매섭게 불어오는 차갑디 차가운 바람과 거대한 파도를 헤쳐가는 길이 있습니다. 시공간적 거리는 몇배나 멀지만, 캘리포니아에 살아 도달할 가능성은 훨씬 높습니다. 남미대륙 최남단 혼곳을 경유하는 바닷길입니다. 몇 달이 걸리는 긴 항정속에서 먹거리 걱정과 전염병의 위험이 가득했지만, 희망 그 두 글자를 가슴속에 품은 유럽 하층민들의 행로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우유는커녕 물한방울 얻기 힘든 선상에서 그저 마른 오트밀을 씹어삼키며 여정을 이어갑니다.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읽고 바다에 버려집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채 중간 기착지 리우 데 자네이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등에서 하선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조금 더 인내하고 항해를 계속한 일부는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에서 새로운 터전을 일굽니다.
  
수많은 역경을 넘어 남은자들이 마지막 고비에서 만나는 곳이 바로 발파라이소입니다. 제노아항을 떠난지, 벨파스트항을 떠난지 석달이 다가갑니다. 엘도라도를 끝까지 확인하고 싶지만, 심신이 녹아내린 그 순간 꿈에그린 샌프란시스코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이땅이 파라다이스라고 자위 합니다



항구에서는 수많은 이별과 만남 속 끊임없는 피눈물이 쏟아져 흘러내립니다.
그저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수만리 바닷길, 이제 보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많은 인연들이 홀실날실로 겹겹이 이어져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고향땅, 그곳에 두고온 가족, 연인, 친구와 어릴 적 뛰놀던 뒷동산을 그리며, 수없이 많은밤 별을 벗삼아 부둣가 한켠 선술집에서 밤을 지셉니다.
  
 스팅이 애절한 곡조로 ‘Valparaiso’를 부릅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 ‘목포의 눈물’ 똑같은 노스탈지아를 노래합니다.
 스팅이 노래한 가사보다 몇배 더 애달픈, 그 끝없는 사연을
 오늘 발파라이소 골목어귀 한곳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듣는이 없어도 구슬픈 노랫가락 최선을 다하는 발파라이소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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