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 Bus 정류장은 도시 중심에서 두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별 고민 없이, 처음 보이는 호스텔에 배낭을 풀고 바로 시내 구경을 나간다. 도시 전체가 황토방 같은 흙빛이다. 시내라고 해봐야 경찰서와 교회가 위치한 아르마스 광장 주변과 바로 아래 두 골목정도. 휙 하고 한번 도는데 채 20분이 안 걸린 거 같다. 드문드문 보이는 식당과 구멍가게를 제외하고는, 조그만 여행사들이 한 집 건너 들어서 있다. 여행상품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흙먼지 낀 창문에는 색이 바랜 인근 여행지 사진이 빈틈없이 붙어있다.
우유니 사막에서 바로 넘어오는 길이 폭우로 끊겼다. 먼길 돌아오느라 몸도 마음도 탈진상태. 한낮 땡볕 아래 이곳저곳 비교하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긴다. 두 번째 들어간 여행사에서 당일 오후 달의 계곡 투어와 다음날 새벽 간헐천 (Geyser del Tatio) 투어를 예약하고 호스텔 방으로 돌아와 눕는다.
4시 10분 전, 여행사에서 지정해준 장소로 나간다. 한낮보다는 살짝 누그러진듯하지만, 여전히 직사광선은 살갗을 태울 듯 뜨겁다. 미니버스가 도착하고 주변에 서성거리던 여행자들이 한 사람씩 가이드와 예약 이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오른다. 빈자리 없이 꽉 찬다.
마을을 벗어나는 듯하더니 금새 첫 번째 목적지. '달의 계속'이 파노라마처럼 내려다보이는 장소다. 가이드는 일행을 스페인어 그룹과 영어 그룹으로 나눈다. 먼저 스페인어로 설명하고, 이어서 영어로 설명한다. 벌써 몇 달째 스페인어를 귀에 달고 다니다 보니, 느낌상으론 스페인어가 편하다. 녹색이라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온 세상이 흙빛이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흰색은 나중에 알고 보니 소금 결정체다. 가이드말로는 이곳에서 찍은 사진과 달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보여주며, 진짜 달 사진을 찾아내라고 하면, 십중팔구 정확히 집어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암스트롱 달착륙 사진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달 사진이 없다.
이번엔 달의 계곡 안쪽으로 이동한다. 죽음의계곡 (Valle de Muerte).
아타카마 지역은 학자들 간 특별한 이견없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이자, 가장 건조한 사막이다. 그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간. 수백만, 수천만 년 지구가 살아오면서 추운 지역이 따뜻한 지역이 되기도 하고, 건조한 지역이 습한 지역으로 변하기도 하고, 땅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땅이 되기도 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땅에서 수많은 기후변화의 증거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이곳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수백만년동안 변화 없이 그냥 사막이었던 곳이다. 어떤식으로도 다른 기후에 대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곳이라고 한다. 죽음의 계곡은 그곳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탐험가, 개척가들로 인해 생긴 이름은 아니다.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기에 죽음의 계곡이란 지명이 붙었으리라.
억겁의 세월 동안 오직 바람에 의한 깎임 현상으로만 만들어진 다채로운 돌상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다. 신기한 모양의 돌상이 있는 곳에, 버스는 정차하고 관광객들은 잠시내려서 기념사진 찍고 다시 올라탄다.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에서는 낮에 어슬렁거리던 개들뿐이 못 봤던 것 같은데… 다들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났는지, 버스가 잠시 정차하는 포인트마다 관광객들이 득실득실하다. 수십대 다른 미니버스들도 비슷비슷한 경로로 이동하고 있다. 폼 잡고 독사진 한 장 찍어보려 시도하지만, 수월치 않다. 알면서 또 모르면서 여기저기 다른 사람 카메라에 엑스트라로 참여한다.
마지막 코스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앞에 있는 모래 언덕을 가리키며, 저 등성이를 타고 올라가서 일몰을 보고 시간 내 돌아오라고 안내한다. 모서리를 타고 개미가 한 줄로 이동하는 모습처럼, 벌써 언덕 저 멀리까지 한 방향을 향해 점점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후내 작은 버스에 수차례 오르고 내리면서 얼굴이 마주치고 눈빛을 교환한다. 서로서로 사진 한 장 찍어주고, 찍어달라 부탁하다 보니, 이 짧은 관광을 함께하는 사람들끼리도 연대감을 느끼고 소속감이 생긴다. 가이드 없이도 다른 버스 그룹들과 적당히 섞이지 않게 붙어서 이동하며 모레 언덕을 오른다. 디딤발이 제법 푹푹 빠지는 그야말로 모래 언덕이다.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언덕 위에서 멀어져 가는 해를 따라 걷는다. 주위는 점점 불타오른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전부 빨갛게 변해간다. 마지막 지평선에 걸려있는 해를 보고, 뒤로 고개를 돌려 석양빛에 물든 대지를 바라본다. 일분일초가 다른 모습이다.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모습은 참 경이롭다.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잠시 사이 주위는 어두워진다. 좀 전까지 태양이 차지했던 하늘에 하나둘씩 점점이 별들이 채워진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만큼, 또 별을 제일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별그대” 도민준이 자기 고향별을 관찰하기 위한 장소로 점찍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를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칭하지 않았을까?
드라마가 중국에서 대히트를 하면서, 2015년에는 산페드로 아타카마에 중국인들 관광객이 밀려들었다 한다. 새삼 방송의 거대한 힘을 확인한다.
버스는 출발지로 다시 돌아와 우리를 내려주고 떠난다. ‘저 기사와 가이드는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겠구나’ 살짝 무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멋진 광경을 매일매일 바라보면서, 날마다 전 세계에서 이 멀리까지 찾아온 다양한 여행자들과 함께 하는 새로움이 그 단조로움을 충분히 상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모든 여행자는 개방적이다. 기꺼이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다.
4시간가량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공유한 여행자들이다. 투어가 끝나고 출발한 곳에서 버스를 내리니, 조그만 마을은 여기저기 음식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다. 다들 다음 계획이 없는 외로운 여행자들이다. 자연스레 스페인어 그룹과 영어 그룹으로 나뉘어 식당을 찾는다. 난 그날 가이드 설명을 들을 때부터 스페인어 그룹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내 스페인어 실력이 영어에 비해 훨 부족하다 해도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끼는 편이 소외감을 덜 받았다. 스페인어 그룹에 끼게 되면, 내 부족한 스페인어를 서로가 당연시하며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대화 참여가 가능했다. 영어권 그룹에 끼어 있을 때면 온통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영국, 미국, 호주 여행객들, 영어를 그들 모국어만큼 잘하는 독일, 북유럽 여행객들이 서로 따발총처럼 이야기하는 사이에, 일대일 대화가 아니고선 그냥 내 앞에 놓인 음식만 먹고 있는 기억이 많다.
독특한 칠레 커플 한쌍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여행자 등 대충 열명 정도가 함께 식당으로 이동한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칠레 남자는 까를로스, 여자는 까딸리나였던것 같다. 까를로스는 넉넉한 체구와 그 체구에 어울리는 여유와 흥이 넘쳐나는 캐릭터였다. 까딸리나는 다소곳하며 눈에 띄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산티아고에서 두 달 머물던 아파트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단다. 동네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녁 먹는 내내 까를로스와 주로 대화를 하게 된다. 이야기 끝에 둘은 커플이 아니고, 까딸리나가 까를로스 남동생 여자 친구란다. 도저히 그런 관계가 둘만 여행을 다니는 것이 이해가 안돼서, 몇 번이고 되묻던 기억이 남는다.
또 다른 한 커플을 제하고는 모두들 홀로 여행객들이다. 조금 더 사교적이거나 내성적이란 성격 차이를 넘어 기본적으로 모든 배낭여행자들은 고독하다. 며칠씩, 몇 주씩 대화 상대가 없이 혼자만의 고독한 여행을 계속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주 자연스레 말이 술술 통하는 여행자를 만나지만 또 금방 헤어지는 게 다반사다. 우리는 달의 계곡 투어 과정 중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마주쳤던, 다른 투어그룹 소속 아주 노출이 심했던, 금발 글래머에 대한 칭송을 시작으로 자신들이 거쳐온 여행지, 칠레, 술, 영화, 음담패설 등 깊이는 없지만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웃고 떠든다. 점점 까를로스가 분위기를 주도한다. 언제부터인가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 벌칙은 피스코 원샷이다. 식당 내부는 하늘이 뚫려 있다. 일 년 내 비 한 방울 안 떨어지는 곳이기에 이런 형태의 구조가 자연스럽고, 경제적이다.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다가도 한 번씩 위로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별을 바라본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머리가 깨질 듯 하다. 어제 예약한 간헐천 투어 버스기사가 나를 찾아 호스텔 방까지 찾아 들어온 거다. 엊저녁 입은 옷 그대로 쓰러진 것이 다행이다. 그냥 그 차림 그대로 뛰쳐나가는데, 채 5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15인승 승합차 제일 뒷자리만 비어있다. 기사가 열어주는 뒷문으로 올라탄다.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해발 2500미터, 우리가 향하는 Tatio Geyser간헐천은 해발 4400미터에 위치해 있다. 털털거리는 비포장 언덕길을 근 3시간 올라간다. 몇 시간 전까지 마셨던 피스코가 올라오는 것 같다. 움직일 틈 없이 좁은 좌석에 불편한 자세로 덜컹거리는 승합차를 타고 간다. 뜨거운 히터열에 호흡이 불편하다. 점점 더 숨이 막힌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바로 내자리 뒤에 있는 뒷문을 조금 열고 손으로 붙들고 있는다. 찬 공기가 들어오니 조금 낫다. 앞에서 기사가 거친 목소리로 문을 닫으라고 한다. 단연히 안전상 뒷 문을 열고 달릴 수는 없다. 게다가 사막의 새벽은 영하의 기온이다. 어쩔 수 없이 닫았다가 죽을 것만 같으면, 몇 초 열었다 다시 닫는다. 함께 승합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참 운도 없지... 술냄새 푹푹 풍기는 웬 동양인 진상 한 명이 마지막으로 올라타서 그 추운 새벽 여행길에 계속해서 한쪽뒷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한다.
단순히 술 때문만은 아니다. 점점 고도가 올라가면서 정상적인 호흡이 안되고 있었다. 우선은 살아야 한다. 3시간 내내 뒷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도착한 간헐천. Geyser del Tatio.
드디어 차에서 내렸다. 이제 살았다. 간헐천의 멋진 경치고 모고 그 순간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무사히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서서히 여명이 걷히는 4500미터대 고원의 새벽빛은 경이롭다. 전날 석양이 지는 사막도 훌륭했지만, 어둠을 밀어내고 서서히 밝아오는 고원 (Alti plano)의 새벽 모습은 또 다른 경이감을 선사한다. 이젠 술냄새 신경 안 쓰고 있는힘껏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조금 후 도착한 다른 투어버스에서 까를로스가 내린다. 나만큼이나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나를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온다. 엊저녁 일을 떠올리며 깔깔거리고 몇 마디 나누는데, 내가 타고 온 승합차 기사가 먼발치에서 듣고 있더니 상황을 좀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까를로스와 함께 기사에게 다가간다.
“아까 나 정말 죽을 거 같아서, 그런 짓을 저질렀어. 미안해”
“그리고 칠레 피스코는 정말 최고야” 한마디 던지니 만족스럽게 웃는다. 내려갈 때는 기사 옆 앞자리로 바꿔주겠단다.
땅속에서 끓어오르는 물이 영하의 공기와 만나면서 곳곳에 김이 올라온다.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햇빛과 수증기가 만나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해가 완전히 올라온 후에는 확연하게 기온이 올라갔지만, 여전히 영하의 날씨다. 한두 명 두꺼운 잠바를 벗는다. 신발을 벗는다. 비키니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거침없이 천연 온천탕으로 들어간다. 용자들이다.
두꺼운 파카에, 털모자까지 쓰고 있어도 손발이 꽁꽁 어는데, 난 그냥 대리 만족한다.
어떤 여행지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한다. 내가 방문한 바로 그시간 그 장소의 날씨, 함께한 사람,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최고의 여행지가 되기도 하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소로 남기도 한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에겐 간헐천 투어 전날 밤 반짝반짝 빛나는 별 아래에서 처음 만난 여행자들과밤늦은 시간까지의 수다와 피스코가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로 향하는 누군가가 Geyser del Tatio를 꼭 가야 할지 물어본다면,
그새벽 고통이 제일 먼저 떠오를것이다. 긍정도 부정도 쉽게 할 수 없을것 같다. 대신,
"만약 당신이 Geyser del Tatio투어를 예약한다면, 전날 밤 피스코는 냄새도 맡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