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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칠레 Oct 11. 2016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알티플라노 (Altiplano)

라구나 세하, 라구나 미니께

열등한 빈민층


역사책에는 두 번의 태평양 전쟁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태평양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미국. 일본 간 전쟁이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은, 진주만 공격보다 반세기도 이전에 남동쪽 태평양에서 벌어졌던 칠레 대 페루,볼리비아 연합국간 전쟁에 처음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에서는,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중세사회에서 자본주의로 격변하는 사회현상을 탐구하고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하는 "경제철학자"들이 등장한다. 국부론의 아담스미스를 시초로 데이비드 리카르도, 토마스 멜서스,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자본론의 칼 마르크스까지 지금의 경제학이라 불리는 학문의 틀이 정립된다.

 

이들 중 토마스 맬서스는 인구론을 발표한다. ‘인구는 기하급수적 (1,2,4,8,16…) 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 (1,2,3,4,5…) 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결국 사람들은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서로서로 죽이는 전쟁이 발발' 할 수 밖에 없기에, 유일한 해결책은 '열등한 빈민층'은 결혼을 하지 말거나, 가능한 늦추고, 성생활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해결책도 제시한다. 깊은 성찰과 고민을 통해 저술한 이론이지만, 격열한 논쟁에 휘말릴 것을 걱정한 맬서스는 익명으로 초판을 발행한다.


21세기 한국, '민중은 개돼지'란 발언 이상으로 큰 사회적 분노와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장이다. 하지만, 맬서스는 악의에 찬 심술궂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적어도 진지하게 선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공리를 추구하려한 주장이었다. 맬서스는 가난한 하층민에게 자녀를 많이 낳지 말라고 강하게 충고했다. 마르크스는 빈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예언했지만, 맬서스는 가난을 탈출하는 유일한 수단은 인구억제라는 주장을 펼친것이다. 맬서스는 한국의 그 교육공무원에 못지않는 온갖 사회적 비난을 받았지만, 가장 심한 욕설은 당시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산업세력, 자본가들로 부터 쏟아진다. 신흥 산업가, 자본가 세력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그들에게 더 많은 부를 가져다줄수 있는, 많은 공장에서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해야할 노동자 였기 때문이다.


1815년, 영국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을 대파한다. 오랜 라이벌을 제압한 영국은 거침없이 식민지를 확장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한다. 식민지는 자원의 공급처이기도 하거니와, 생산된 최종 제품의 판매시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국에서 생산된 면직물은 세계 식민시장으로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고, 런던과 맨체스터의 공장에는 끊임없이 노동력 수요가 증가할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노동력 창출을 위해서는 인구증가가 이루어져야 하고, 인구증가를 위해서는 충분한 먹거리 확보가 선행되어야 했다.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위시로 전유럽에는 산업혁명에 이어 농업혁명이 일어난다. 역사책에는 '인클로저운동'이라고도 하는, 지주와 자영농의 주도하에 대토지 소유제와 대농장 경영제가 도입된다. 몰락한 중소농민은 도시산업인력으로 이전된다. '식량 증산'과 '도시 노동력 증대'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농업경영에 자본이 투입되고 산업화 방식이 도입되면서 농업 생산성은 급속히 증가한다. 이 시기 유럽 농업 생산성을 급격히 증가시킨 가장 큰 요인중 하나는 새로운 비료, 초석 (질산나트륨) 도입이다.


초석은 거의 대부분 남미 아타카마 지역에서 생산된다. 탁월한 비료일뿐 아니라 화약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1860년대 영국에서만 매년 약 5만톤 이상 수입해가고 있었다. 아타카마 지역은 당시 볼리비아 영토였지만, 초석의 채굴과 수출은 대부분 발파라이소에서 온 칠레 사업가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물론 칠레 사업가들의 왕성한 활동에는 영국자본가란 뒷배가 버티고 있다. 1878년 볼리비아 정부가 초석 수출에 대한 세금인상을 통보하자, 칠레는 여러가지 국경조약문제등과 결부하여 1879년 전쟁을 선포한다. 볼리비아와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던 페루까지 전쟁에 참여하지만, 최강국 영국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중인 칠레 해군력에 전쟁은 일방적인 칠레의 승리로 끝이 난다. 이 태평양 전쟁의 결과로 페루는 500Km에 달하는 남부지역을 칠레에 뺏긴다. 볼리비아는 바다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안토파가스타 항구를 잃고 내륙국가로 전락한다. 칠레가 볼리비아로 부터 획득한 깔라마 츄키카마타 노천 구리 광산을 기반으로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안정된 국가로 발전했으며,, 볼리비아 조그만 산골 오아시스 마을이었던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칠레 관광산업의 핵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출처: Google. 태평양 전쟁 전후의 영토변화.

다행스럽게도, 맬서스 인구론의 두가지 핵심주장은 빗나간 화살로 판명된다. 열등빈민에 대한 강제적인 수단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자기의지에 따른 자발적 억제'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았고, 19세기 중후반 농업혁명을 통해 식량생산량의 폭발적인 증가를 이루어 낸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1세기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다시찾은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2015.1)


한번도 시청한 적은 없지만, 인터넷 기사를 통해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로 갑자기 칠레 아타카마 사막이 뜬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반갑다. 15년 전 고생한 경험때문에 가봐야 하나 생각하던 장소였는데, 저 멀리 지구 반대편 사람들도 찾아오는 장소를 이곳에 살면서 굳이 안갈 이유는 또 없다.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에 가장 가까운 공항은 깔라마 (Calama)에 있다. 깔라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노천 광산으로 유명한 광산도시지만, 별다른 관광수요는 없는 곳이다.  

깔라마 공항에서 한시간여를 달리자, 다양한 황토빛 지층만 머금고 있던 풍경속에서 멀리 조그맣게 녹색 오아시스가 눈에 들어온다. 타임머신을 타고 15년전으로 돌아온 듯, 조그만 마을은 예전 모습 꼭 그대로다. 예약한 까바냐 (cabana, 한국 펜션 형태 숙소) 주소를 구글맵에 넣아 찾아보지만, 마을 외곽 허허벌판으로 안내한다. 결국 전화로 내가 있는 위치를 설명하니, 금방 주인이 찾아온다.

중심가에서 차로 약 5분, 걷는다면 대충 15분쯤 걸릴만한 외곽에 위치한 숙소다. 산페드로 아타카마는 숙박비만 따지면, 칠레 내 어느 동네보다 비싸다. 대충 비슷한 시설수준이라면, 다른 도시보다 가격이 두배쯤 된다. 조그만 오아시스 동네에 전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중심가


라구나 세하 (Laguna Cejar)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백두산 정상높이와 별반 차이없는 2500미터에 위치한다.  지리산, 한라산 정상보다도 높은 곳이니, 공기는 청명하고 자외선은 강하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속에 위치한 오아시스 마을로 여행자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마을이다.

칠레에는 어떤 형태의 숙박시설에서도 아침식사를 준비해 준다. 문앞에 따뜻한 빵, 잼, 요구르트가 놓여있다. 해가 중천에 떳지만, 사막의 아침은 여전히 춥다. 작은녀석은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 아침을 먹는다.

출발하기전 수차례 경로를 확인하고 나섰지만, 바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안선다. 비포장길에 드문드문 서있는 이정표는 다른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걱정과는 달리 한번에 제대로 찾아 왔다. 입구에서 CONAF (칠레 농림부 산하 국유림 관리단체) 직원이 다가온다.     

“입장료 얼마인지 알고 온거죠?”

짐짓 모른척 하면서 되묻는다. “얼마인데요?”

불과 이주 전까지 인당 2천페소였던 입장료가 , 1월1일부로 인당 3만페소로 오른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적당히 흥정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듣고 왔다. 미안한 표정으로 몇명인지 묻더니, 어른 한명 가격, 3만페소(약 5만원)만 내고 넷이 들어가라고 한다.

옷을 갈아입고, 썬크림 잔득 바른채 라구나를 향한다. 벌써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관광객이 물에 둥둥 떠있다. '오 이런~ 대박!!' 보면서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물가에 들고 있던 짐들을 놓고,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 두고 발을 물에 담가 본다. 앗 차거!! 밤새 차가워진 물이 다시 태양열에 데워지려면 오후는 되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먼저 조심스레 한발자국씩 물속으로 들어간다.

"까르르 깔깔깔…" 물속에서 웃음이 터진다.

생전처음 느껴보는 낯선기분이 신기하면서도 유쾌한갑다.


물이 너무 차가워 오래 있지는 못하고, 잠시 들어갔다가 나왔다를 반복한다. 물밖으로 나오면 바로 물기는 말라버리고 소금기만 남는다.  이래 보아도 뜨고, 저래 보아도 뜬다. 어떤 요상한 표정도 다 가능하다. 한참을 사진찍기하고 놀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난건지 플라멩고가 물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바로위 겨우 2미터 정도위를 휙하고 지나간다. 급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들과 한 프레임에 담는것은 실패하고, 바로위 날고 있는 모습 한장만 담는다.

‘아… 아까비… 인생샷 놓쳤네’  

파아란 호수와 하늘, 둥둥 떠있는 두 아들, 바로위를 날고 있는 플라멩고. 그 완벽한 조화와 구도의 사진은 마음속 카메라에만 남아있다.  


알티플라노 (Altiplano)


아시아에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벳고원이 있다면, 남미에는 티벳고원과 어깨를 겨루는 알티플라노가 있다. 볼리비아, 페루, 칠레 3개국 국경에 걸쳐 위치한다. 평균고도 3800미터위에 평평하게 펼쳐진 고원지대로, 페루 쿠스코,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 티티카카,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볼리비아 우유니도 이Altiplano 지역 안에 자리잡고 있다. 알티플라노 서쪽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이 있고, 알티플라노 동쪽으로는 지구상 가장 강우량이 풍부한 아마존이 자리하고 있다.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남동쪽으로 진행하면, 서서히 고도가 올라가면서 아타카마 지역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알티플라노 지역으로 들어선다.  아타카마 인근 지역과는 다르게 낮은 관목과 이끼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고도가 워낙 높은 이지역은 툰드라 기후다. 기후나 식생이 시베리아, 캐나다 북쪽, 남미대륙 남쪽끝 지역과 비슷하다.  


더없이 가까운 하늘은 동해바다같은 짙은 청색을 띠고 있고, 낮게 퍼져 있는 구름의 형태는 오묘하다. 목적지인 라구나 미스칸티에 도착. 부족한 산소탓에 살짝 몽롱한 느낌과 함께 꿈속을 거닐고 있다. 꿈에서나 보이는 듯한 경치가 펼쳐진다.

라구나 한쪽에는 비쿠냐가 뛰놀고 있다. 페루, 볼리비아 특산품중에 알파카털로 짠 다양한 스웨터, 가디건이 유명하다. 양모로 만든 옷들보다 몇배 비싼 제품이다. 비쿠냐털로 만든 제품은 알파카로 제품보다 최소 열배 더 비싸다. 칠레에도 매장이 있는 페루의 유명한 디자이너 옷가계 이름이 쿠냐 (KUNA)다. 비쿠냐에서 나온 이름이다.


저놈이 비쿠냐라고 알려주니, 와이프는 좋아라 웃으며 한마리 잡아가쟎다. 실없는 농담에 두 아들은 서로 먼저 잡겠다고 뛰더니 얼마 못가 죽겠다고 헉헉댄다. 뛰기는 커녕 조금 걷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고도다.

비쿠냐는 어디에?


한참 즐거운 꿈속에 빠져 있을 때, 비몽사몽간 지금 내가 꿈을꾸고 있구나 인지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그 즐거운 순간을 더 잡고 싶어, 눈을 뜨지 않으려 애쓸때가 있다.

아쉽지만...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다. 꿈보다 더 꿈같은 알티플라노 풍경과 작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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