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하는 박태근입니다. 통칭 바갈라딘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어쩌다 보니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연재 제목은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출판 창업을 준비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제가 아니라도 만들고 싶고, 알리고 싶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미친 분들께서 쉬지 않고 1인 출판사를 열고 계시고, 이를 ‘1인 출판사 열풍’, ‘1인 출판사 시대’라 평하는 분들도 계실 정도이니, 출판사를 직접 차리는 게 아니라도 서점에서 MD로 일하며 편집자를 자처하는 출판인으로서 천천히, 깊게 살펴볼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큰 뜻을 품고 시작하는 분위기를 풍기며 문을 열었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 유유출판사 조성웅 대표께서 일본의 1인 출판사를 취재하여 책으로 묶은『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을 번역 출간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소식을 들려주셨는데, 조성웅 대표와 저 둘 다 한국 편을 함께 기획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글과 책에 큰 부담을 느껴 가급적 평생 책을 쓰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편을 제가 써 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물론 주위 1인 출판사들로부터 잘 자리 잡은 1인 출판사로 꼽히는 유유 출판사를 일군 조성웅 대표는 제가 실수로 흘린 미끼를 놓치지 않고 낚아채셨지요.
그런데 이 낚시는 여전히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가 없고, 어쩌면 조성웅 대표는 지금쯤 괜히 낚아 올렸나 싶어 속이 터질 지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내려던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한국 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평소 업무 메일에는 1분도 되지 않아 답장을 보내던 제가 하루이틀씩 연락이 끊기기도 하니, 이미 번역에 편집까지 마쳐 언제라도 펴낼 준비가 끝난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일본 편』을 만지작거리며 분을 삭이고 계실 겁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가을이 시작되었고, 1인 출판사에 쏠린 관심과 지금의 1인 출판사가 마주한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터, 저 역시 (이미 수차례 일정을 넘겨 남아 있을 리 없는) 마지막 양심을 걸고 이 작업을 해 내야만 하는 절체절명에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올해를 넘길 수는 없겠다는 다짐에 조성웅 대표와 그간 쌓아온 관계가 모두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넘어설 마지막 계책으로 이곳에 연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전했으니, 이제 책 이야기를 나눠야 할 텐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이 책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출판사를 차리지도 않았고 당분간 차릴 생각도 없으니 이 책은 당연히 창업기나 체험기는 아닐 겁니다. 1인 출판사를 차리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담는 책도 아닐 테지요. 그렇다고 1인 출판사 등장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한국 출판계에서 1인 출판사의 역할이나 1인 출판사가 한국 출판계에 끼치는 영향 같은 걸 분석할 수도 없을 겁니다.(이건 제 능력 바깥이니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냐 되물으실 수도 있겠는데요. 제 생각과 한계는 대략 이렇습니다. 1인 출판사가 한국 출판계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여겨지고 자리를 잡은 게 대략 최근 4, 5년 사이인데, 다행히 이 흐름 속에서 세상에 나온 1인 출판사가 제 목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았고,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1인 출판사가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1인 출판사가 출판의 오늘인지 내일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고, 1인 출판사가 기존 출판사의 대안인지 답습인지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답을 궁리할 때가 올 텐데, 그때 제대로 돌아보려면 지금 1인 출판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포기했는지를 기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기록을 넘어 1인 출판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경험담이자 조언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래서 하나의 출판사가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할 일들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합니다. 당연히 제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출판사를 만들어서 운영하며 쓸 수는 없을 터라(그럴 거면 직접 하겠지요.), 이 과정을 직접 겪은 1인 출판사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내용을 채우려 합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들려줄 열 군데 출판사를 꼽았습니다. 이 출판사의 목록은 연재 마지막 날에 공개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성공담이 아니라 경험담이라는 겁니다. 분야, 편집 공정, 인력 구성, 출간 방향 등 출판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골고루 살펴 출판사를 골랐으니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당위의 이야기보다는 이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의 이야기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각자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시도하기에도 바쁜 1인 출판사 대표들께 설문에 응해 주십사 부탁 말씀을 드리면서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아마 차례를 보시면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거라 생각합니다. 그 아련한 빛은 1인 출판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어두운 길을 비추는 밝음이 되겠고, 그간 바쁘게 달리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각자의 길을 비추는 기록의 빛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직접 출판사를 운영해 보지도 않는 제가 이 일을 맡을 적임자일까 의문이 드실 수도 있겠으나, 그간 여러 1인 출판사와 함께 일하며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던 마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용기를 냈습니다. 이 책은 여러 대표님들의 도전이 아니었다면 기획조차 되지 않았을 일이고, 그런 도전의 과정과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는 게 출간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바쁘시겠으나 아래 질문을 살펴보시고 최대한 길고 상세하게, 아주 작은 이야기도 빠짐없이 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실하게 읽고 꼼꼼하게 살펴 제대로 정리하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전하며, 아래 설문에 응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는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여기까지 읽은 조성웅 대표께서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완성한 원고량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느냐며 저를 꾸짖으셔도 뭐라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저 이제부터 열심히 일정에 맞춰 꼬박꼬박 원고를 쓰겠다고 다짐할 밖에요.)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시작할 연재의 차례는 아래와 같습니다.
0. 아직 아무 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왜 홀로 출판사를 시작해야만 했나
1. 첫 책이 출판사의 운명을 결정한다?: 내고 싶은 책과 낼 수 있는 책
2. 책을 낸다고 출판사가 되는 게 아니다: 책을 내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들
3. 이제 시작이다! 이게 시작인가?: 첫 책을 펴낸 후 벌어지는 일들
4. 편집은 내가, 디자인과 제작은 누가?: 다음 책을 만들기 위한 준비
5. 잘 만들었으니 잘 팔리는 일만 남았다: 책을 독자에게 전하는 방법
6. 계획은 바뀌기 마련이다: 전략을 바꿔야 할 시점과 이유
7. 사람이 늘어도 여전히 1인 출판사: 인력 충원과 배치
8. 출판사도 엄연한 회사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성가신 일들
9. 언제까지 1인 출판사라 부를 수 있을까: 1인 출판사가 지켜야 할 덕목
10.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날 위로해 주지: 피할 수 없는 1인 출판사의 결핍
아마도 이 연재는 출판계 동료와 선후배께서 읽으실 터인데, 그때그때 읽어 주시며 부족한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연재는 올해 안에 나올 책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한국 편』의 초고입니다. 연재도 숨 가쁘게 진행될 테고, 초고에서 탈고로 가는 과정도 함께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미 서면 인터뷰에 응해 주신 열 군데 출판사 대표께서도 추가로 필요한 부분에 최대한 도움을 주기로 하셨으니, 궁금한 점과 의문 나는 점을 그때그때 전해 주시면 세심히 살펴 차곡차곡 빈틈을 메워가겠습니다. 이 기획을 제안해 주신 유유출판사 조성웅 대표(이렇게 여러 번 언급하는 까닭은 하염없이 일정을 미룬 죄송함 때문인데, 오늘까지만 기억하고 잊겠습니다. 앞으로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하면 용서해 주실 거라 믿으니까요.), 바쁘신 중에도 설문에 응해 주고 격려해 주신 열 군데 1인 출판사 대표, 연재 공간을 허락해 주신 어쩌다 1인 출판 모임(참고로 어쩌다 1인 출판을 함께 꾸리는 다섯 출판사는 제가 취재한 열 군데 출판사와 한 곳도 겹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연재를 읽어 주시고 거침없이 의견과 평가를 전해 주실 독자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전하며 연재를 알리는 글을 마치고, 서둘러 첫 꼭지 원고를 정리하러 가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