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른이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숙 Apr 13. 2016

피그말리온이 되기로 했다.

류준열 베이비돌 리페인팅 후기  (사진 스압 주의)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팬미팅 티켓을 정말 힘들게 구한 어느 화창한 오후,
나는 피그말리온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주변 사람들이 웬만큼 알아주는 키덜트에다가, 작년부터 꾸준히 취미로 그림 수업을 수강해오고 있는 손재주 좋은 일반인(?)이다. 여기서 일반인이라는 의미는 나의 손재주는 직업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평소 손재주 좋기로 유명한 내가,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베이비돌로 최애 만들기'라는 포스팅을 발견하게 된다. 혹시나 최애라는 뜻을 모르는 분이 있을까 설명을 해보자면 '최고로 애정(사랑/좋아)하는 사람/캐릭터/사물'을 뜻한다. 즉 베이비돌로 최애 만들기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디즈니 베이비돌을 가지고 꾸며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로 꾸미는 것을  뜻한다.


디즈니 베이비돌 컬렉션

일반적으로 디즈니 베이비돌을 말하면 위 사진의 인형들을 말한다. 마트에서 파는 똘똘이/콩순이 사이즈의 디즈니 인형은 디즈니 돌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다른 완구업체를 끼고 출시되는 아이들이다. 쉽게 구분하자면 공식 디즈니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인형들이 디즈니 베이비 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디즈니 스토어가 없다. 그래서 해외에서 수입해온 아이들을 구매해야 한다. (그래서 비싸다 ㅠㅠ)


그래서 누굴 만들었는지 궁금하다고요? 

섬네일 보고 클릭하셨으면 다 아시면서 ㅎㅎ

네 바로 이 분입니다. 

검은 흑발의 반 곱술 머리에 쌍꺼풀 없는 눈, 그리고 선이 또렷한 입술이 매력적인 배우 류준열입니다.  


참고로 주변 지인분들이 한 번씩 눌러보고 빵 터지고 만다는, 내 카톡 프로필 사진과 프로필 배경 이미지는 류준열 배우님과 함께 있는 절묘한 합성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나의 팬심에 관한 얘기는 접어두고(길어질수록 부끄럽다)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아무튼 만들 대상을 정하고 몇 가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베이비돌을 꾸미기로 결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게 될 고민이다.

1. 어떤 베이비돌을 베이스로 만들 것인가
2. 리페인팅 vs 개안
3. 컷트 vs 가발  

바로 이 세 가지 고민이다.

먼저 리페인팅과 개안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자면 개안은 눈에 구멍을 내서 인형용 안구를 별도로 구입해 구체관절과 같은 얼굴을 만드는 것이고 리페인팅은 얼굴에 프린트되어있는 그림을 지우고 새롭게 그려 넣는 것 을 말한다. 컷트는 식모 되어 있는 머리를 직접 자르는 것이고, 가발은 말 그대로 가발을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개안 보다는 리페인팅, 가발보다는 컷트 (주문하고 언제 물건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서)을 하기로 하였고, 때문에 흑발의 인형이 필요했다.

그래서 좁혀진 인형은 포카혼타스, 뮬란, 백설공주였고 그중 나는 배우님의 홑꺼풀 눈을 표현하기 좋은 뮬란 인형을 베이스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그림 죄송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디즈니 베이비돌은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중고 마켓을 뒤지기 시작했다. 때 마침 누군가 매물로 올려놓은 뮬란 인형을 발견하고 주문을 하였다. 어차피 리페인팅할 거라 신품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었다.


 그리고  인형이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 리페인팅을 할 것인지 구상하기 시작했다.

얼굴 정면이 잘 나온 사진을 찾고 특징을 잡기 시작했다.


눈, 광대, 입술


이 세 군데에 포인트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인형을 받았다. 전 주인 분께서 인형을 꽤나 아끼신 듯하다. 머리도 한번 감겼고, 원래 인형의 눈썹을 지우고 새롭게 예쁜 눈썹을 그려놓으셨다. 하지만 리페를 위해 이 예쁜 화장을 지워야만 했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지 않게 깔끔히 묶고, 아세톤으로 얼굴을 지우면 된다. 이때 유의할 사항은 반드시 약국용 아세톤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화장품 판매점에서 파는 아세톤은 순수한 아세톤이 아니라 다른 성분들이 첨가되어 있기 때문에, 인형의 화장이 깨끗이 지워지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착색 등 다른 원치않은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화장솜에 아세톤을 묻혀 슥삭슥삭 문질러 줬다. 틈새는 면봉을 이용하였다. 아쉽게도 입술은 이미 착색이 되어 있었다.

무...무섭다



이제 화장을 지웠으니 머리 모양을 다듬을 차례. 배우님의 머리 모양이 잘 나와있는 사진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 머리 모양이 잘 나온 사진으로 열심히 찾았다. 그렇게 선택한 사진 3장.  

 


이렇게 고른 사진 세장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머리 자르기를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머리 자르는 게 어려웠다. 특히 뒤통수 머리 모양을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웠다. 남자 뒤통수를 유심히 본 적도 없고, 한 번도 숏컷으로 잘라본 적도 없는데 사진 만보고 감으로 자르려고 하니 원하는 모양대로 나오지 않았다. (헤어디자이너님들 존경합니다ㅠ)


 생각보다 인형머리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어서 잘못 잘랐다간 머리가 비어 보일 수 있는 엄청난 함정이 있기 때문에 조심하면서 머리를 잘라 나갔다. 더군다나 인형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올곧은 직모라 어지간히 짧게 자르지 않고는, 단발머리처럼 보였다.

 결국 뒤통수는 굉장히 짧게 잘라 냈다. (머리 자르기에 너무나 집중해서 뒤통수 사진이 없다 )


머리 컷트가 끝난 뒤 남은 잔털들을 씻어내기 위해 인형의 머리를 감겨 주었다.

인형 머리는 섬유유연제로 감기면 된다. 섬유유연제 이니깐 당연 거품 낼 필요는 없다.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고, 머리가 들뜨지 않게 스타킹을 씌워서 머리를 눌러줬다.

'머리 모양아 예뻐져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치면서 머리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자 이번에는 중요한 얼굴 그리기!

정면이 매우 잘 나온 사진을 찾는다. 명암이 두드러질수록 좋다. 그래서 나는 아래 사진을 참고하였다.

내가 참고 한 사진. 흑백 사진이라 명암이 확실히 구분되어 좋다.

준비물로는 무광코팅 스프레이, 색연필, 파스텔, 아크릴 물감이 필요하다.

먼저, 재료가 묻지 않도록 머리와 몸통을 비닐로 잘 감싼다. 그다음 (사진에는 없지만) 무광 코팅 스프레이를 얼굴 골고루 뿌려 준다. 혹시나 모를 착색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다음으로 파스텔을 체에 갈아 곱게 가루를 내서 붓에 묻힌 뒤 눈썹 영역을 칠해준다. 화장을 하던 솜씨가 있어서 그런지 별 어렵지 않게 눈썹 영역을 잡을 수 있었다. 그다음 색연필로 눈썹 결을 살려 슥슥 선을 그어 준다.

 이번에는 흰색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흰자위를 칠해주고 마르고 난 뒤, 역시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눈동자와 아이라인을 그려준다.

 

이어서 눈썹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파스텔 가루를 곱게 내서 콧대와 광대 쪽에 쉐딩을 해준다. 너무 진한 색으로 하면 어색해 보일 수 있으니 살살, 여러 번 덧칠하여 음영을 만들어 준다.

잊지 말고 눈꺼풀, 인중, 눈 언더 라인도 음영을 넣어준다.

음영을 넣어준 것과 안넣어 준 것의 차이는 꽤 크다.

그리고 중요한 입술! 입술을 그려준다.

배우님의 포인트를 살리기 위해 입술 윤곽선을 강조하였다.

입술 진짜 ㅈㅗㄴ똑..... !!


배우님 사진과 비교.

나도 그려놓고 너무 닮아서 놀랐다. 이 사진을 친한 동생에게 보여주자 "언니는 이런 재능 숨겨놓고 뭐해!!! 아깝다 아까워"라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일을 그만둬도 손재주 덕에 굶어 죽진 않을 것 같다. 


아 그리고,  다시 무광 코팅 스프레이로 마감을 해주었다.



이제 거의 마무리. 어떤 옷을 입힐지 고민을 한다. 사실 작업 시작 전부터 정해놓은 컨셉이 있긴 했다.

가장 류준열스러운 모습으로 만들 것

처음에 어떤 모습의 인형을 만들지 구상할 때 배우님의 SNS 사진들을 떠올려 보았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사진은 빨간색 프라이드 앞에 서있는 사진이었다. (아래 가운데 사진)

배우님 일상룩

사진을 바탕으로 의상을 제작하였다. 의상은 손재주 좋은 동생이 직접 만들어 주었다. (동생도 능력자) 사실 기성품을 구하는 게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옷은 직접 만들 수 있지만, 신발은 만들 수 없기에 구하기 시작했다. 사진과 똑같은 흰색 운동화를 구하고 싶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찾긴 찾았는데 어마하게 비쌌다. 사람 신발보다 비싸면 어떡하니 ) 그나마 비슷하게 생긴 신발을 찾아 구매했다. 참고로 베이비돌 신발은 구체관절 인형 SD사이즈 신발과 호환이 된다.


그래서 옷까지 입힌 모습은 짠!

오올

대만족. 그럴싸하다.

그나저나 머리 모양 잡아 준다고 스타킹을 씌우고, 앞머리 롤을 말아줬는데... 위치를 잘못 잡은지 모르고 그냥 뒀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젠트 머리가 되었다.

다시 급하게 앞머리를 수습해 보았지만, 이전의 머리 상태로 돌아오진 않았다.

그나마 절충한 상태로 두었다.



인형은 다 만들었다. 하지만 어디에 보관하지?  없으면 만드는 루리ㅇ.... 아 아니, 보관통!

퇴근길에 강남역 교보문고에 들러 보관통을 만들 재료를 사러 갔다. PVC필름, 우드락, 마스킹 테이프, 색상지, 각종 본드 등.. 이것저것 열심히 고르다 보니 어느덧 폐점시간.


 사실 인형과 함께 빨간색 프라이드 자동차 모형을 같이 넣고 싶었는데.. 너무 오래된 장난감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빨간색 프라이드 자동차를 대신하여 빨간 보관통을 만들었다.


자 그래서 완성작은 이렇다.

와!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것 같아서 너무나 뿌듯하다.

하지만 당분간 베이비돌 리페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이번 브런치는 끝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정성에 감동해서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어 줬듯이, 이 인형도 실제로 움직이게 되면 어떨 것 같냐고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 인형은 제 곁에 없습니다.

피그말리온이 조각상 닮은 사람에게 전해달라고 아프로디테에게 보냈데요 :)

그렇게 하는 게 더 피그말리온과 조각상 모두가 행복할 것 같다나?

하하


총 소요 기간 약 일주일


- 화장 지우는데 1일

- 머리 자르는데 2일

- 얼굴 그리는데 2일

- 케이스 만드는데 2일

- 의상 만들기 및 소품 구입하는데 2일 


류준열 배우님 인형을 만들면서 고생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남기기 위해 기록하는 이번 브런치 진짜 끝

매거진의 이전글 인사이드 아웃 새드니스 피규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