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제목에 또 회사 이야기
사옥을 이전한다. 첫 입사했던 날을 더듬어 기억해보면 꽤 오래전이다. 대충 그때부터 테크노밸리의 그 건물에서 오늘까지 일을 했었는데 사옥이 옮겨진다고 한다. 판교역에 가까이 붙는 걸 보니 입사 처음에 내심 바랬던 위치로 가게 되었는데, 정작 지하철역에 가까워진 그 시점에 나는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으니 사람일 예측할 수가 없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최근 입사자들에 비해 잘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어느 건물에서는 어떤 식당이 맛이 있고 어떤 카페가 무슨 음료로 유명한지, 이 건물과 저 건물 사이 횡단보도가 어느 방향에 있고 지하철역까지 어떻게 가는 게 편할지 이런 소소한 지식이 있다.
어디가 맛있어요?
코로나 시기에 입사한 친구들은 서로 만난 적이 드물다. 근처의 카페를 갈 일조차 많지 않다. 굳이 누군가가 회사 밖 커피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갈 일이 많지 않아 더더욱 그렇다. 사실 바이러스가 극심할 때는 회사 전체를 폐쇄했기 때문에 나올 일이 없었다. 내 경우는 어린이집 등원 때문에 회사 건물을 자주 오가긴 했는데, 자리에 가봐야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근처에 사람도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나는 이 삭막한 빌딩 숲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직전 (이라고 해도 그게 거의 10년 전)에 있던 회사는 다소 힙한 동네에 있었고, 어떤 곳은 양재천변에도 있었어서 상대적으로 테크노밸리 내 파란 유리 빌딩들은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공간에 대한 기억이 공간을 만든다는 말이 맞았다. 막상 짐을 빼는 날에 벤치에 앉아 그 길들을 보니 괜히 몽글해졌다. 여기서 알게 된 사람들 얼굴이, 기억들이 하나하나 생각이 났다.
면접보고 기분 좋아서 방방 뛰던 날, 입사했던 날 지하철역에서 뛰던 순간, 24K 해커톤에 참여해서 토요일에 나오던 날, 몸이 아파서 대낮에 나와 집으로 가던 날,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된 날,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외근을 나가게 되었는데 그러다 다시 회사 건물로 들어와 좋았던 날, 무더운 날에 유리벽에 반사되는 햇빛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건물 안을 들어왔을 때의 기분, 만들던 플랫폼 론칭을 위해 밤늦게까지도 같이 일했던 날, 마이그레이션 작업이 있어서 주말에도 왔던 날, 대형 사고를 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했던 날, 배가 많이 불러와서 출산휴가를 위해 짐을 챙기던 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네. 그러니까 아쉽구나.
발령이 났다. 내부 이동 프로세스인 손뼉 치고 이동에 손을 번쩍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팀에 이동해서 자리를 잡고 일을 하는 있는데, 내 경우는 이동할 수 있다는 발표 후 약 5주 간의 시간이 있었다. 원래 하던 일을 마무리 지을 시간, 조직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많은 문서들을 정리할 시간, 그리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말할 시간이 꽤 충분하게 주어졌다. 조금 우스운 것은 나간다고 말해 놓고 꽤 오래 그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몰랐는데 정이 많이 들었다.
오픈 시점부터 관여했던 플랫폼이 있다는 건 흔한 경험은 아니다. 대부분은 꽤 규모가 커진 다음에 합류해서 운영/개선을 위해 유지하거나,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하더라도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고 없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나를 긴 시간 동안 붙들고 했던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별일이 다 있던 시간들이 내게 영향을 준 것인지 어떨 땐 징글징글하다가도 떼어놓고 가려니 발걸음이 쉽게 떼지지 않는다.
이런 게 엄마 마음인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애정을 갖게 되는 걸 보니 직업병이 도졌다. 내 두 번째 직업 엄마의 직업병이다.
그러게, 이런 게 엄마 마음인가.
진짜 엄마가 된 다음에 사람의 성격이 바뀌어버려서, 오지랖도 생기고 측은지심도 생기고 사람 사이 관계를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된 것 같다. 복직 이후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살갑게 대하게 되고 내가 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것은 물론 새롭게 온 이들이 모두 코로나 시기 입사자라서 오프라인으로 만나 친목을 다질 시간이 거의 많지 않은 사람들이라 더 마음이 갔었다.)
물론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복직을 했던 21년 4월에는 바뀌어버린 환경에 약간 힘들었다. 다른 이들은 이미 1년 이상 재택+온라인으로 일하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내 경우는 남들보다 1년 넘게 늦게 그 환경에 들어갔다. 잘 적응하는 줄 알았는데, 집에 있는 방에서 막연한 웹문서들을 보고, 막막하거나 모르는 부분을 톡으로 물어보고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화상채팅 환경이 무던히도 외로웠나 보다. 육아휴직일 때, 다른 이들을 만나지 못했던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라인 친구들이 생긴 기분이고, 이들의 실제 얼굴은 보지도 못해서 어찌나 어색했던지. 기획 리뷰 회의를 했을 때, 모두 마이크가 꺼져있어서 내 방에서 나 혼자 말하는 적막감이 무서웠다. 회의실에서 말을 할 때는, 내가 설명을 스킵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되게 설명하지 않았는 지를 그 공간의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내 말을 수정하곤 했는데. 온라인 미팅은 그게 쉽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주절주절 말하는 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 환경은 발표자를 배려하기 위한 행동이긴 했다. 다른 노이즈가 섞이지 않게 하는 에티켓인데.)
내가 적응할 수 없다고 다른 이들에게 같이 회사에서 볼래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같이 일하는 기획 동료, 개발 담당자들이 나이 차이가 꽤 나게 어려서 오라 가라 하는 게 무례하거나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서 그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조건 상 회사 건물을 가기 쉽다 보니 남에게 제안하는 게 어려웠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기니까 어차피 만나기도 힘들고 나는 집에서 틈틈이 아이를 보기도 해야 하니. 나가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퇴사 소식을 듣게 되니 약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 친구는 내가 시니어 기획자라니, 라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친구였는데. 퇴사한다고 하니 '혹시 내가 뭘 잘 못해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난 힘들다, 머리 아프다 할 때 이 친구에게 말 한마디라도 걸어줄 걸 하는 후회부터 하게 되었다. 주말이라도 시간 괜찮냐는 말을 하고 따로 보자고 제안했을 때도 내심 보내 놓고 왜 그랬지, 하는 생각도 했다. 직장에서 자기보다 연장자가 소중한 주말 시간을 빼서 만나자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예의 없는 일 아닌가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히 그 친구는 약속을 수락해주었고, 다른 동료와 함께 셋이서 보았다. 그리고 그날, 다들 방에서 외롭게 일하느라 지쳤던 걸 알게 되었다.
(너무 길어져서 안녕 2를 써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