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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사 Jun 25. 2022

안녕, 그 두 번째

코로나 시대의 고독과 자존감


나는 나 혼자만 일이 힘든 줄 알았어요. 다들 프로페셔널하게 잘 해내고 지치지 않는 줄 알았지요.


와인을 기울이며 흔한 연애 이야기, 사는 이야기, 그러다 일 이야기까지 왔을 때, 솔직해져서 좋았다. 퇴사 정도의 큰 이벤트가 있으니 신변잡기, 근황 토크를 거치지 않고 돌직구로 “사실 좀 힘들었다”를 털어놓을 수 있으니 좋았다.


어쩌면 다들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식적이라는 말로 이를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정적이지만, 나는 약간은 가식적이었다. 이 정도는 거뜬히 해내야 하고 다른 이의 일도 함께 포괄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챙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매우 괜찮은 척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기획팀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는 부로 주간보고 밖에 없고, 한 주간의 업무 요약을 하면 유달리 나는 하는 게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일이 더 대단해 보이고, 뭔지도 모르겠고 그러했다.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당당하게 힘들다,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자신감이 필요하니까.


아마도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일이 그리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로의 고충도 나누고 편하게 담소도 나누며 할 수 있었을 텐데, 어디 하나 정 붙이기도 어렵고 빼곡하게 쌓인 그 시기. 바이러스로 생계가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그 와중에 이런 고민을 어디 털어놓을 겨를도 없었다.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정말로 걸리지 않는 쪽이 생활을 유지하는 길이었으니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제 열심히 하면 되는 나이가 아니라 잘해야 되는 시기가 돼버려서, 고민을 많이 해야만 했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 걸까. 잘 하기는 하는 걸까, 결국 이 고민도 스스로를 궁지에 몰기는 했다. 그러던 차에 손뼉 치고 이동 공고가 떴다. 그리고 약간 던지는 식으로 지원을 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여기도 괜찮으니까.




기존에 하던 일이 있고, 그 일은 마무리 지어야만 했어서 발표와 발령 사이 5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무슨무슨 조정기간처럼 상당히 긴 시간이다. 내가 하던 역할이 아주 자그마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하다 보니 또 뭐가 자꾸 나온다. 그리고 그간 세월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잡힌 약속들이 있었다.


일을 보는 것과 사람을 보는 것, 어떤 곳에서 일할 것이냐 결정할 때 이 두 가지는 항상 중요한 기준이 된다. 기존의 조직에서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없어서 어디를 가든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일만 단순히 놓고 비교했을 때는 가는 곳의 일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호기롭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약속을 잡다 보니 이들과 보냈던 시간들이 참 많이도 스쳐갔다. 기억력이 좋은 편도 아닌데 5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뒤섞이더라. 함께 고생한 건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함께 일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업무용 단체방들을 하나씩 나오는데 아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과감하게 발령 나서 바로 나갔다. 솔직히 그때 안 나가면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게 다 보일 것 같았다. 어쩌면 망령처럼 근처를 떠돌지도 모른다. 걱정이 많다. 더 멋있어야 하는데 아직 자신이 없네.


정말 괜찮은 척 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첫 기획 리뷰 하던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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