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매일 아침에 두시간씩 하면 되겠지?
정신차리고 보니 6과목을 듣고 있고, 나는 월화수목금을 일을 하고 월화수목금토일을 육아를 하는 사람인데 시간은 언제 낼 수 있지? 라고 두뇌를 굴리다보니, 고양이가 깨워주는 새벽시간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찍 깨는 편이니 여섯과목을 요일별로 하나씩 배치하고 일요일은 쉬는 스케줄로 정하고 2월 말부터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대학교 때처럼 3월 2일부터 시작! 하고 강의가 올라올 줄 알았는데, 2월 말부터 강의가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학사일정 상에 올라와있는 기말시험 기준으로 역산해보았을 때, 15주짜리를 모두 듣기 위해서는 3월이 아니라 2월 말부터, 한 주 일찍 듣기 시작해야 대충 시간이 맞을 상황이었다. 월요일 헌법, 화요일 형법, 이런 순서로 토요일은 근로보호법을 정해두고 듣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 방식은 녹록치 않았다. 기초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늘 들은 것을 일주일 뒤에 다시 듣고 그 사이에 다른 과목들을 끼어넣는데 이 각각이 이해가 될 리가 없다. 심지어 그 사이에 일을 할 때도 몸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직업이니 뇌 안에 넣어둘 지식들이 많은데 정리가 전혀 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특히나 논리구조가 학설이 많은 과목들을 맞이할 때는 좌뇌가 항의를 하는 기분도 들었다. API 호출구조와 채무불이행과 죄의 구성요건요소가 동시 다발적으로 들어가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는데, 아이와 이야기하고 노는 게 조금 편했다. 머리를 이래저래 많이 쓰다보니 아이와 이야기하고 노는 게 마치 휴식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하는 행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는 온전히 이 친구의 대화와 행동에 반응하며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게 힐링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두번째 직업에 만족도가 올라간 기분.
여기까지 결론을 내리고 수업듣는 방식을 바꾸었다. 과목 6개 중 2학년 과목인 상법기초, 채권총론, 근로보호법은 최종강의까지 한번에 업로드되어있는 방식이고 1학년 과목은 매주 새롭게 공개되었다. 미리 올라와있는 강의들은 전체 15강 중 한 뭉텅이로 묶을 수 있는 범위의 수업들을 몰아서 듣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보험법에 관련한 내용이 4주짜리 강의로 이루어졌으면 나흘 내내 그것만 듣고 이해하는 것으로. 초반에 시도했던 방식보다 이해가 수월해져서 조금 마음이 편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걸 줄이고 모르는 걸 이해하고 넘어가기가 용이해진 편.
본 전공이 어떻게 보면, 선수강과목의 제약이 크지 않은 편이었다. 설득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케이션 통계방법론 수업 중 굳이 무엇을 먼저 들어야하는 지에 대한 제약이 없었다. 오히려 그 시절엔 2학년때 3,4학년 수업을 들어도 크게 무리가 없었고 학년을 뒤죽박죽으로 듣는다고 해서 서로 간의 영향관계까 크지 않았다보니 1학년 2학기 과목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2학년 1학기를 듣는게 크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통은 그 나뭇가지같은 흐름이 중요했더라. 남의 전공들은 대체로 다 그랬다. 그러다보니 아, 다음학기때는 이걸 들어야 되겠구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