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Chive Apr 08. 2023

1. 자기 앞의 생

볼수록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책

   내 책장에는 그런 책들이 있다. 책이 워낙 유명해서 미리 사놓았지만, 사놓고 시기를 놓쳤거나,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책들. 이 책이 딱 그런 책이었다. 읽을 책이 많았는데 미리 사놓고, 막상 읽으려보니 뭔가 정이 안가는 책. 다 읽고 나서는 가슴 한켠이 아릿한데 따뜻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조금 더 일찍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일단, 책 얘기를 하기 전에, 나는 이 책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로웠다.(책 끝에 부록처럼 나와있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참고)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의 작가 로맹 가리가 쓴 소설로, 1975년에 출간된 이래로 한국은 물론이고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다. 이 책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옛날부터 이미 '부캐'라는 개념을 탑재하여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어쩌면 '로맹 가리'라는 이름에 이미 굳어져버린 자신의 '이미지'를 깨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자하는 작가의 결심이자 노력이었을까. 아무튼 이로 인해 그는 프랑스에서 같은 작가에게 두번은 안 준다는 공쿠르 상을 두번이나 탄 작가가 되었다. 책도 책이지만 작가도 참 매력적인 사람인거 같다. 마지막을 자살로 마감한 점은 안타깝지만.


   잠깐 옆길로 샜다. 다시 소설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소설은 파리의 이민자 거리, 그러니까 프랑스 사회의 하층 of 하층에서 살고 있는 노년의 로자 아줌마와 그녀가 돌보는 소년 모하메드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니다, 어떻게 보면 모하메드(이하 모모)가 노년의 로자 아줌마를 돌본다고도 볼 수 있으니,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사는 이야기다. 사실 영향을 준다고 말했지만 부족하다. 이 둘의 경우는 그 이상의 관계라고 봐야겠다. 어쩌면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진한 관계다. 이들이 사는 세상을 10살, 아니 14살의 시선으로 쓴 이야기, 이 책을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이렇게 얘기하겠다.


    


1. 너무나도 생(生)에 대해 솔직한 소설

   다 읽고 나서 느꼈던 것중에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정말 솔직하고, 어떻게보면 노골적이다싶을 정도로 '생'이라는 것이 어떤것인지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생은 행복하지만은 않다. 아니 사실 고통스럽다. 특히나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독일 나치 시대를 겪은 로사 할머니, 창녀의 아들이자 고아인 모모, 늙고 병든 이슬람교도인 하밀 할아버지, 여장 남자 룰라 아줌마)은 특히나 더더욱 하나같이 삶이 고되었고, 현재도 고통스럽다. 그 모습을 여과없이, 그리고 아주 강렬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 빈곤, 차별, 난민, 종교 갈등까지. 아래 문장들이 아니더라도, 소설전체의 분위기와 묘사를 보다보면 생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고, 지금 우리들에게까지도 이러한 삶의 무게는 충분히 무겁기에 공감이 많이 갔다.   


로자 아줌마는 꿈이 오래되면 악몽으로 변한다고 했다.(p.78)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p.96)


행복이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p.103)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p. 46)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p. 69)


'낫지는 않아, 낫지는 않는단다'를 심각하게 강조하는 것이 내게는 몹시 우스웠다. 마치 낫는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2. 뻔하지만, 변하지 않는 생(生)의 해답. 사랑.

   그렇다면, 수많은 제도권 밖 '타자'들이 냉혹한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정말 뻔하지만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해답,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책이 전체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모모가 처음 하밀 할아버지에게 했던 질문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핏줄이 유대인으로 키워졌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을 버린 아버지와 달리 유대인 할머니가 피 한방울 안 섞인 아랍인 아이를 키울 수 있었던 이유도 사랑이었고, 모모에게 희망이라는 아주 큰 것을 아주 작은 달걀 안에 넣어줄 수 있었던 것도 상점 여주인의 작은 사랑이었다. 로자 할머니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까지 왔다갔다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웃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이었고, 로자 할머니의 죽음 이후로 우리가 막상 모모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게 되는 이유도 주변 이웃들의 사랑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p.311)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p. 256)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쯤 서로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로자 아줌마의 두려움이 조금 가라 앉았다. (p. 155)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p. 99)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p. 178)


한 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 맛보았다. 그때의 기분을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니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나는 그날 오전 내내 그 가게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며 서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따금 그 맘씨 좋은 주인 여자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손에 달걀을 쥔 채 거기에 서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여섯 살쯤이었고, 나는 내 생이 모두 거기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달걀 하나뿐이었는데...(p. 18)


"하밀 할아버지, 제 말을 못 들으셨나봐요.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304p.)





매거진의 이전글 5. 고립의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