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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Aug 17. 2023

6.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다.

    뉴스는 늘 그래왔지만, 요즘에는 그 정도가 유달리 심해 보인다. 뭔가 이제까지는 어떻게든 미뤄왔던 사회문제라는 휴화산이 폭발하는 초입에 우리가 들어온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각종 칼부림 뉴스들, 학부모 갑질에 의한 교사의 자살같은 뉴스는 이전에도 있기야 있었겠지만,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평일 점심에 경찰특공대가 강남역을 총기무장하고 순찰하는 모습이, 갑질한 자가 우리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안 그래도 더운 여름의 날씨와 합쳐져 마음을 무겁게 한다. 과연 인간은 정말 이렇게 악하게 설계되었고, 우리 인간종은 누군가를 해하고, 짓밟고 올라가야만 하도록 설계가 된 생물인가?  


    다행히 오늘 리뷰할 책은 그렇지 않다는 실마리를 주는 책이다. 사실 TV나 각종 유튜브를 통해서 많이 보았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이다. 책의 출판시기를 생각해봤을 때, 미국의 지식인들은 트럼프 집권사건이 굉장히 큰 트라우마였던 것 같다.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도대체 왜? 왜 이런 차별과 혐오로 무장한 정치전략이 대중에게 먹히고 있지?'에 대한 저작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집필한 마이클 센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왜 트럼프가 집권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특히 얘기를 많이 했다. 이 책도 약간 그런 맥락에서 나온 책인듯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적자생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적자생존은 우리가 학생 때 배웠던 내용으로는 '가장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이론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학생 때 배우지 않았던 사실이 하나 있다. 적자생존은 사실 다윈이 고안한 표현이라기보다는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가 만든 작품이고, 다윈을 설득하여 '종의 기원' 5판에 추가된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다윈에게, 그리고 근대 생물학자들에게 '적자생존'이란 구체적으로는 '살아 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킬 뿐, 그 이상으로 확대될 개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아주 큰 충격이었다.


  또한,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며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썼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적자생존은 너무나도 작은 틀에 다윈을 가둬둔 것, 혹은 다윈 이후에 후대 생물학자들이 우생학이라는 학문과 그것을 근거로 인간이 벌인 각종 학살과 만행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한 개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실제로 우리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는 제거된다. 뒤쳐지면 도태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생각에 끄덕인 적도 꽤 많다. 근데 그게 사람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실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전략이 적자생존보다 더 유리한 방법이고, 그것이 우리가 문명을 이룩한 힘의 원천이라면?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로운 책이었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우(友)자생존

   이 책의 결론만 얘기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적자생존'은 우리 인류의 생존 전략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가축화'가 우리 인간의 생존 비결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기가축화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이것은 원래 저자의 지도교수였던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의 리처드 랭엄이 주장했던 가설이다. 대단히 여러 방향으로 이 가설을 설명하지만, 나는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하나의 종이 진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강자가 약자를 짓밟기보다는 사회화하면서 야생적인 공격성이 줄고, 친화적인 방향으로 바껴서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방식으로, 즉 스스로를 '길들여서' 가축화한다는 이론.  
(+그리고 이것은 우리 인류가 생존할 때 가장 유효했던 생존전략이었다.)



   우리 사피엔스 종의 가장 큰 무기는 이것이었다. 자기가축화를 통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누군가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이다. 유발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하던 '상상의 질서'라는 개념과 유사한듯하다. 다만 분야가 다르다보니 용어가 달라진듯하다. 유발 하라리는 이것이 국가와 종교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같은 다양한 종의 인간종들 사이에서 신체적/지능적 부족함이 없었음에도 그들은 멸종하고,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라고 설명한다.


*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이렇게 앞에 나오고, 그 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와 실험결과가 나온다. 양이 방대하여 담지는 못했지만, 읽다보면 꽤나 유의미한 실험이나 연구가 많이 있다. (여우를 대상으로 한 자기가축화실험, 가축화된 개와 야생 늑대의 차이, 적자 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침팬지 사회와 약자를 보살피는 보노보 사회의 비교 등)



자기가축화의 양날의 검, 비인간화

   이런 다정함을 바탕으로 진화한 인간이 그렇다면 왜 어떤 면에서는 어떠한 짐승보다도 잔인하고 비정해질까? 저자는 자기가축화된 종이 자기 집단 내부에는 한없이 너그럽고 다정한 데에 반해 이질적인 외부집단에는 상상 이상의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내부를 향한 다정함이 클수록 외부의 위협을 맞닥뜨렸을 때 잔인하고, 적대적인 태도로 돌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간단한 예로 어느 집단에나 있는 '텃세'가 있을 거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는 속담에도 아주 딱맞는 속담이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책에서는 이처럼 자기가축화에 내포된 배타성을 우리는 '비인간화', 혹은 '타자화'라는 말로 대신한다. 쉽게 말해서 내 편이 아니라는 인식이 드는 순간 상대방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끔찍한 사실은 내가 상대방을 비인간화 하면 상대 또한 나를 비인간화 할 수 있는 강한 동기가 생긴다. 저자는 이를 두고 '보복성 비인간화'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끝없이 꼬리를 무는 악순환을 만들고, 마침내 지하철 역에서 칼부림하는 사람들을, 남에게 거리낌없이 갑질하는 사람들을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정한 우리와 다정한 그들 사이의 또다른 차원의 적자생존 경쟁을 만드는 것.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끊임없는 접촉, 우리에게 필요한 해독제


   작년 말에 '고립의 시대'라는 책을 리뷰한 적이 있다. 이 책은 우리 시대가 SNS같은 연결망을 통해 '연결'되어있지만 '연대'하지 못하는 현상을 짚어가며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 했던 책이다. 그 책의 이야기와 이 책이 이야기하는 이 악순환을 끊는 해결책은 같다. 바로 '접촉'이다. 사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우리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능력이 퇴화된듯하다. 얼굴보고 말하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 극히 한정적이고, 오랫동안 협업을 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메일로만 혹은 클라우드로만 정보를 주고 받는 사이가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로를 비인간화 하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 아닐까. 굳이 나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느니 그를 인간 취급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옳지는 않지만 손쉬운 해결방법이다. 그런 생각이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만든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그래서 아무런 의도를 갖지 않고 지속되는 '접촉'자체가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 예시로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을 도왔던 사람들의 동기를 알아보았더니 이전에 유대인과 이웃으로 지냈던 경험이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이 같은 마을에 거주한 뒤로 서로에 대한 반감이 줄었던 점 등이 예시로 나온다. 어떻게 보면 굳이 이런 연구가 아니어도 당연한 얘기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정한' 종이고, 낯선 것을 무서워하지만 계속 그 낯선 것에 접촉하고 친근해지면 누구보다 그것을 반긴다. 이런 지속적인 '접촉'은 이제는 우리 사회 과제에 대한 가장 뻔하지만, 그만큼 정답에 근접한 해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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