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Chive Jun 20. 2024

오늘을 산다는 것, 그 위대함이란

매일 아침 끄적이기 - 8

https://www.youtube.com/watch?v=OLDhaqosPtA&t=32s


최근 유퀴즈에 나온 허준이 교수의 축사 풀버전을 듣다가 갑자기 떠올라서 노트북을 열었다. 사실 다른 이야기인데, 내 머리 어느 부분을 건드렸는지, 갑자기 정리가 하고 싶어졌다. 어떤 책에 대한 이야기다.



반려견도, 반려묘도 아니라 무려 늑대와 함께 11년을 산 사람이 있다. 철학자이자 대학교수였던 그는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을 썼다.


책에는 '본질보다 앞서는 것은 실존'이라는 말이 여러차례 나온다. 늑대는 우리에 갇혀서 살 수 없는 동물이고, 따라서 야생의 삶이 늑대의 본질이다. 원반던지기를 하며 늑대를 길들이려는 저자의 노력은 늑대를 바꾸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둘의 관계는 주인과 반려동물이 아니라, 마치 형제인 것처럼 살게 된다. 이 늑대는 우연찮게 인간의 삶터에 불시착한 셈이 되었다. 그러니까 늑대가 가지고 있는 야생이라는 본질과 인간과의 동거라는 실존 사이에서 늑대는 실존을 선택한다. 불편하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살아가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최선이라는 걸 늑대는 알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와 똑같은 아침을 맞는다. 새로울 것이 없는 똑같은 일상은 시들하고 권태롭다. 그런데 철학자가 관찰한 늑대는 달랐다. 어둠이 물러가고 해가 뜨면 오늘 아침에도 해를 맞이했다는 사실에 좋아서 날뛰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어찌할 줄 모르는 늑대의 모습을 보면서 철학자는 삶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과연 우리 인간은 늑대처럼 오늘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다.


우리가 유인원에게서 왔듯이 개는 회색 늑대에게서 왔다. 행복의 관점에서 보자면, 진화가 생존과 적응의 방편일 뿐 어떤 가치 개념에 대한 선택이 아니었으므로 반드시 진화 이전보다 이후가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속임수와 계략을 구사할 수 있고 지능을 통해 위대한 문명을 건설했다. 그렇지만 본능에 충실한 늑대의 삶보다 영리한 인류의 삶이 더 우월하고 더 행복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늑대랑 사람이랑 같냐며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면 인간이 뭐가 그렇게 다르냐고 물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늑대가 나를 비롯한 인간들보다 행복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의 행복을 내일로 유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그 점에서 인간은 짐승보다 그리 뛰어나지 않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왜 이 책이 갑작스레 생각이 났는지 알겠다. 그냥 두서 없이 쓰던 글의 마지막은 허준이 교수님의 축사 중 일부로 마친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쫓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지 않음으로 사랑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