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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Dec 16. 2024

24. 시티뷰

*스포가 거의 없는 리뷰입니다. 내용이 부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느낌만 적은 리뷰라서요.*


볼만한 소설을 찾으려고 서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이 책을 만났다. 처음에는 작가가 나와 같은 성이라 눈에 띄었고, 모교인 인천대학교에서 수업을 하셨다는 약력에 한번 더 흥미가 갔고, 마지막으로 소설 속 배경이 인천, 송도와 남동공단 등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어서 홀린듯이 바로 집에 들어와 책을 검색했다.


내 기억 속에 인천은 정말 극명하게 두 얼굴을 가진 곳이었다. 한국의 어느 도시든 이제는 양극화가 극에 달해서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가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특히 더 그렇다. 공간 자체가 이미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흥미로울수 밖에 없는 인천, 그 중에서 갯벌을 억지로 메꿔서 만들어놓은 송도라는 신도시는 그 상징성이 강하다.


읽다가 놀랐고 좋았던 부분은 송도라는 공간적 배경에 딱 맞는 인물과 사건들, 그리고 그것을 끌고 나가는 작가님의 필력이었다. 어느 순간 소설을 안 읽고 못 읽게 되는 이유가 너무 흥미위주의 휘발성 강한 주제가 많아서였는데 간만에 책을 덮고 수첩을 꺼내 이것저것 끄적거린 소설이었다.


'시티뷰'는 어떤 소설이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왜곡된 욕망과 그 욕망을 구현한 사람들, 그 과정에서 뒤틀린 자기 내면의 상처와 대면하는 과정을 송도라는 인공 도시를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준 소설' 이라고 한 줄로 요약하겠다.



*이 책을 볼 때 유의하며 보면 좋은 point*


1.각 인물들 하나하나가 우리 동시대인들의 어떤 부분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인물/사건/배경 모두 소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세 가지 요소이기에 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이 책에서 하나만 골라 집중해야 한다면 난 단연코 '인물' 이라고 말할 것이다. 간단하게 한 사람만 정리를 해보자.


- 수미: 필라테스 원장, 아버지는 로펌의 대표고 어머니는 무용수 출신으로, 태어날 때부터 돈은 많지만 속물근성 그 자체인 사람. 직업적인 면에서, 그리고 어렸을 적 무용을 전공하다보니 보이는 것에 - 특히, 몸 관리와 체중, 외모, sns에 - 강박적인 집착을 보이며, 그 강박으로 인하여 골다공증 및 식이장애 등을 겪는다.  


2. 현대적인 욕망의 세계에서 삶은 과연 과시를 위한 수단일 뿐일까?


3. 의외로 읽다가 모르는, 혹은 잘 안 쓰는 단어가 나와서 턱턱 막히는 순간이 생긴다. 정리를 하면서 가면서 보면 좋을것 같다. 말맛이 있게 글을 쓴다는 것은 이렇게 적절한 단어를 찾는데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ex) 심상하다, 침습적 + 기타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나와 사전을 좀 뒤적거렸다.


4.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이다. 석진의 상처를 보며 나에게 있는 온기가 닿으면 미친듯이 간지러운, 아물지 않은 흉터가 무엇인가? (=나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책 속의 문장들*


1. 인간은 인간이라는 점 외에는 평등하지 않다


2. 사람들은 그 카드 광고에 열광했다. 돈에 대한 언급이 사갈시되던 시절은 그 말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친구가 소개해준 수미를 만난 이곳에서, 직원이 거대한 나이프 세트를 들이밀며 칼을 고르라고 했을 때 속으로 냉소가 비어져 나왔다. 유치하고 우스운 배역을 맡은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해맑은 얼굴로 가장 화려한 칼을 집어 드는 수미를 보자 자신과 닮은 데라곤 없는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때와 달라진 것이라고는 더 완벽해진 수미의 이목구비뿐


4. 자궁의 암세포를 발견한 날 마세라티를 뽑았다는 장모처럼 수미도 생의 박동을 소비로 유지해가는 유형이었다.


5. "의사선생님은 죽고 싶을 때가 없어요? 난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 안 해요. 깨어 있을 때 가끔 졸린 것처럼 살아있을 때 가끔 죽고 싶은 것도 정상 아닌가요?"


6. 유화의 얼굴이 벼락 맞은 나무처럼 거칠게 갈라졌다. 벌어진 껍질 사이로 낯선 표정이 내장처럼 비죽 드러났다.


7. 수미를 보면 강박과 향유는 종이 한 장 차이란 말이 실감났다.


8. 전교생이래야 몇십 명 되지 않는 아이들을 인솔해서 교사들은 육지의 대학교로 견학을 갔다. 서울 사람들은 다른 밥을 먹고 다른 물을 마시는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지겨운 갯시린내 대신 향긋한 공기가 가득할 줄 알았지만 거리는 지저분했고 사람들은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기어이 육지로 나왔다.


9. 사람들이 불륜을 왜 하는데. 자기 배우자보다 불륜 상대가 멋지고 섹시해서? 절대 아냐. 그냥 누군가랑 비밀을 공유하고 싶어서야. 시들어가는 일상에 자극이 필요해서. 근데 우리 신랑은 비밀이 없어. 폰에 잠금번호도 없다니까. 펼쳐진 참고사 같은 남자야. 문제집은 푸는 재미라도 있고, 소설은 속는 재미라도 있지.


10. 부부란 서로에게 얼마나 무지한 관계인가, 사람은 얼마나 만용을 부리는 존재인가. 주니는 어쩐지 철학적인 사색에 빠져 병원 문을 나섰다


11. 석진은 자신이 꿈꾸었던 궁전에 대해 생각했다. 최고급 대리석이 깔린 미진 내과, 먼지 한 톨 없이 반짝이는 우아미 필라테스.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뭘까. 수미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뭘까? 진지해진 석진을 방에 버려두고 수미는 또다시 헬스장으로 갔다. 칵테일과 함께 나온 프레츨을 집어 먹었기 때문이라나. 하루에 두세 번씩 운동을 하는 자신을 짐 래트라 부르면서도 멈추질 못했다. 구토가 운동으로 바뀌었을 뿐 강박적 제거 행위라는 점은 같았다. 칼을 먹는 유화가 섭식장애일까 남의 시선을 먹는 수미가 섭식장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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