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 다시보기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Her>는 인간과 인공 지능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대필 작가로 일하며 아름다운 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만, 정작 자신은 사랑의 상처와 관계의 결핍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도시의 허무를 닮은 듯한 그의 멍한 눈동자처럼 공허한 일상을 이어가던 날, 테오도르는 사만다라는 운영체제와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신체가 없는, 닿을 수 없는, 두 팔을 와락 벌려 끌어안을 수 없는 상대와 사랑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꿈같은 나날을 이어가던 중 둘 사이에 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불쑥 내뱉은 한마디에 떠밀려 혼돈의 구렁텅이로 쳐박히고 만다. "I'm yours and I'm not yours." 나는 당신의 것이지만 나는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네트워크에 동시에 접속한 8,000여 명의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 중 641명과는 가상의 연인으로 지내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당시 그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며 같이 본 친구와 같이 얘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영화의 영상미, 색채감 얘기,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같은 영화에서 바로 보이는 외적인 얘기를 나눴고, 시간이 지난 후 주로 말했던 주제는 '정말로 저 영화처럼, 인간이 인공 지능과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였다. 그때 당시 나는 아주 확신에 찬 어조로 "에이, 아무리 그래도 진짜 사람이랑 하는 사랑하고 저게 같을 수 있겠냐? 영화도 마지막에 결국 테오도르도 다른 사람인 여자를 만나긴 하잖아, 열린 결말이긴 해도."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런 인공지능이 우리 죽기 전에 나오긴 하겠냐?"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처음엔 일본에서 개의 움직임만 따라하는 로봇 강아지가 발명되면서 쓸쓸한 노년층을 위로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사만다처럼 네트워크에만 존재하면서 인간의 인지능력을 약간이나마 흉내내는 아주 약한 인공 지능 AI가 나왔을 뿐인데도 이미 우리의 삶은 많이 변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의 고민을 Chat GPT에게 묻고 있을 것이다. 이 길의 종착지가 인간의 인지능력을 흉내만 내는게 아니라, 인간처럼 사유하고 판단하는 강한 인공 지능의 개발, 여기에 더해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외형을 지닌 인공 지능 로봇의 출연이라고하면 "인간과 인공 지능의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던 발언을 나는 그때도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러한 미래가 실제로 도래해 인공 지능의 몸과 마음에 온기가 흐르고 마침내 인성까지 지니게 된다면, 그리하여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가 흐려진다면 우린 사랑을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만약 "사랑은 오직 인간의 일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면, 대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