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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적은 원소

by MinChive

지구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지각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산소부터 시작해서, 알루미늄, 철, 칼슘, 질소 등 90여 종의 원소가 존재한다. 프랑슘은 원소 중 맨 나중에 발견된 원소로, 가장 불안정하여 반감기가 22분에 지나지 않는다. 또 지각 전체에 존재하는 양도 30그램이 채 되지 않는 극미량이라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프랑슘을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물질이라고 말한다. 이 내용을 읽다가 문득 부끄러움이 올라와서 머리를 긁적였다.


올해 들어 가장 고생한 한 주였다. 처음에는 그냥 가끔가다 한 번씩 오는 소화불량인 줄 알았다. 소화 관련 질환은 태생부터, 아버지를 포함해 우리 집안 고질병이었으니까. 가끔 오는 더부룩함은 곧장 두통을 동반한 체기로 바뀌고, 평소처럼 한 끼 정도 거르고 나면 다음날은 늘 그래왔듯 괜찮아지리라 생각을 했다. 큰 착각이었다. 4일 정도 더부룩함은 이어졌고, 심지어 평소에는 안 하던 설사까지. 마치 장염 걸린 사람처럼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지금도 사실 몸이 괜찮아져서 그렇지 장염 비슷한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의심도 생긴다.) 살도 쭉쭉 빠지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덕분에 이번 주는 내 질린 얼굴처럼 아주 하얀, 아무것도 기록할 것이 없는 한 주를 보냈다. 이렇게 완벽하게 한 주를 날릴 수가 있구나.


오늘쯤 정신을 차리고,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걸까 싶어 일기장과 다이어리를 번갈아 봤다. 정리해 보니 저번주 후반부가 문제였다.

3. 20. 점심식사에 날음식(천엽, 소간) 먹음 + 당직 (야식 O)
3. 21. 잠이 안 와서 뻗대다가 중간에 애매하게 잤음. 수면 패턴이 꼬이고 심지어 장시간 운전, 동생이(군인) 휴가 나와서 오래간만에 길게 얘기하느라 늦게 잠, 술도 마심.
3. 22. 동생 군대 가기 전 맛있는 거 먹인다고 기름진 음식들 다수 및 또 날음식(꼬막, 회 등) 먹음
3. 23. 마지막으로 부대에 동생 보내고(또 장기간 운전, 식사 주기가 불안정했음), 잠이 안 와서 운동 후 취침


왜 배탈이 났는지 짚이는 구석이 한둘이 아니라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그치, 나도 이제 서른일곱인데, 매일 24시간 동안 심지어 잘 때도 뇌는 돌아가는 이 신체라는 기계가 늘 같으리라는 보장이 있을 턱이 없다. 건강은 프랑슘처럼 생에 잠깐 내 안에 머물다가 사라진다. 이제 나에게도 그 사라짐이 시작된 걸지도 모르겠다. 부지런히 내 안의 우물에서 펌프질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보통 이 펌프질을 하는 방법은 보통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먹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마시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다. 매우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내 몸 밖에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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