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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1페이지, 신입생 OT

(Feat. 민태원의 청춘예찬)

by MinChive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대학교 새 학기의 꽃은 누가 뭐래도 신입생 OT다. 새로운 부임지 강릉지청 옆에는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가 있다. 아직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나는 적당히 깔끔해 보이는 국밥집에 들어갔다. 식사를 반정도 마쳤을까, 아직은 국밥집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한 팀이 들어왔다. '9명이요!' 라며 들어오는 그들의 눈은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목소리는 맑고 또랑또랑했다.


보기에도 딱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을까 싶은 앳된 외모의 학생들은 어제 있었던 신입생 OT 때 먹은 술이 아직도 안 깨서 해장을 하러 온 듯해 보였다. "A 선배가 이거 한도 50만 원으로 걸어놨대."라고 하는 걸로 보아 선배의 카드로 자기들끼리 식사를 하나보다. 요즘도 저런 게 남아 있긴 하구나. 이제는 거의 없어진 문화라고 하더니 아직은 저런 선배와 저런 자리가 아주 사라지진 않은 모양이다. 반가운 마음도 들고 해서 잠시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라디오를 듣는 마음으로 옆 테이블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선배/교수 얘기, 전공 수업 강의 신청 요령 얘기, 취업정보, OT라면 빠질 수 없는 그날 벌어진 수많은 썸과 사고 얘기까지 참 평범하지만 그 시절엔 그게 전부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서로 남은 기간 동안 잘해보자며 으쌰으쌰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 동시에 내 안에 가장 많이 들었던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저 시절이니까 할 수 있는 새벽까지 먹었는데도 아침에 하는 해장술, 저 시절이니까 할 수 있는 대화, 저 시절이니까 할 수 있는 서툴지만 순수한 인간관계까지 뭐 하나 안 부러운 것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간혹 저 시절에 놀았던 것을 후회한다는 친구들을 꽤 많이 만나게 된다. 글쎄, 그 시절에는 어렸어서 그 시간의 중요성을 모르고 도서관에만 박혀있던 한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때 저렇게 못해서 지금도 뼈에 저리게 후회한다고.


그때도 나는 술도 약하고 몸도 약했다. 컨디션 조절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다음 날 내 몸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 환경에 나를 놓고 싶지 않았었다. OT도 딱 11시까지만 마시고 자러 들어가고, MT는 미참가에 모든 과 활동은 언제나 1차까지만. 누군가는 그것이 현명하다고 했다. 나 역시도 당시에는 과 회식 다음날 1교시에 공포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겨우겨우 몸만 힘겹게 강의실에 집어넣은 동기들을 보며 한심한 눈으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지금은 그 시절에 하지 못한 숙제들이 남아서 오늘같이 저런 순수한 청춘들을 보면 '부러움'이 울컥하고 턱밑까지 차오른다. 그 시절에 덜 놀걸하며 후회하는 그 친구들 눈에는 저게 한심함으로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다.


고등학교 때는 너무 비유가 많고 웅변조여서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던 민태원의 수필 <청춘예찬>을 돌아가는 길에 읽고 있다. 그때는 시험에 나오니까 어쩔 수 없이 읽었다만, 오늘은 조금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첫 부분부터 마음을 흔들었다. 오늘 본 그 친구들이 수능이 끝났다고 이 글을 머리에서 지울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전문을 읽어보며 오늘 만난 그들의 청춘이 더 빛나게 되기를 바라는 37살 꼰대 아저씨다운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간다. 간만에 그 시절 친구들에게 보낼 시시콜콜한 메시지를 생각하며.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은 끓는 피가 아니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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