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나와 나의 거리가 타인과의 그것보다 훨씬 멀었다. 나는 나의 고향이자 타향이었고, 모국이자 외국이였으며, 그 어딘가의 경유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삶이란 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현재는 집 밖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여행일지도 몰랐다.
나는 쓸쓸할 때마다 사람에게 돌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감옥이나 지옥 같은 인연도 더러 있었다. 누굴 만나도 영원한 낙원까진 닿지 못했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기대 마음껏 사랑하고 미워하는 동안에는 생에 대해 염세를 잠시나마 떨칠 수 있었다. 나는 엉망진창인 사건들에 슬퍼하면서도, 내가 텅 비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언제고 감사했다.
정지음.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빅피시, 2022년, 6쪽
그럴 때가 있다. 믿었던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생각했던 그 사람이, 사실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욕하고, 험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는 때가. 그 사람이 그저 처세에 능한 인간이었음을 늦게나마 깨달을 때, 누군가 심장을 움켜쥐고 쥐어짜는듯 심박 수는 올라가고 실망은 비수가 되어 목덜미를 날카롭게 겨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에게 돌진하길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인간관계에 험담은 없을 수 없고, 본인이 불리할 때 남에게 가하는 배신과 거짓 또한 어떻게 보면 인간 본성 중에 하나라고도 본다. 심지어 누군가는 뒷담화가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년, 47쪽
엉망진창인 그런 인간관계 속에서 무척이나 많이 깨지고 슬퍼하면서도, 돌진하길 주저하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 나를 채울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뒷담화가 사실이라면 나의 행동을 돌아보고 고칠 것이고, 뒷담화가 거짓이라면 그런 사람을 믿었던 내 사람 보는 눈이 좋아지고, 관계의 거리감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어쩌면 그 뒷담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다가 사람이 아닌 다른 취미와 활동에 눈을 떠 치유되는 경우도 봤다. 뒷담화와 배신은 분명 부정적인 상황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룰 지는 결국 나의 선택이다. 그렇게 나는 텅 비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