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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마.

by MinChive

올해 설 명절쯤, 아주 친한 친구가 자살을 했다. 우리 나이대에는 만나기 힘든 죽음을 맞이했다. 얄궂게도 이런 종류의 죽음은, 특히나 자살은 세상 어느 누가 봐도 착하지만 속마음을 전달하는 데에는 그렇게까지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만 골라서 찾아오니 더더욱 서글프다. 아직도 기억한다. 부천 어느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급하게 차로 밟아 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봤던 웃고 있는 친구의 영정사진을. 내가 감히 그의 친구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후회하며 울던 일을. 그 이후로 난 나 역시도 혼자 살지만 혼자 사는 친구들에게는 괜히 아무 날에 아무 이유도 없이 전화하는 친절하지만 이상한 놈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늘은 당직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검찰청 당직실엔 올 추석도 '늘 그렇듯' '또' 변사 기록이 오히려 평소보다 많이 쌓여 있다. 물론 자살이 아닌 죽음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자살한 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들의 삶 마지막 기록은 가지각색이다. 취업도 안되고 일베에 빠져 살다가 자기 인생이 낭떠러지에 왔다고 생각해서 바다 옆 어느 허름한 숙소에서 생을 마감한 어느 20대 후반의 청년, 생활고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의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비 오는 바닷가에 몸을 던진 30대 여성, 한때는 매 명절마다 기사화되다가 이제는 하도 흔해서 기사로도 안 다루는가 싶은 50~60대 혼자 사는 고독사 남성들 몇 명까지. 늘 보던 현상인데도, 올해는 이 죽음 하나하나가 특히나 더 안타깝다. 누군가 한 번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그들에게 시간을 써줬다면...


멋있는 위로의 말은 참 많지만, 오늘은 그냥 다 필요 없고 한 마디만 해주고 싶다. 한 시간만, 하루만, 한 달만, 1년만 더 살아봅시다. 여러분이 묵히고 묵혀서 이제는 턱끝까지 차오른 혼잣말, 언젠가는 누군가가 꼭 들어줄 테니까, 죽지 마세요.


나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자살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사와 같은 중대한 일을, 신이 아닌 인간이 결정하는 것은 오만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행해서 죽는다고 할 경우, 거기에는 보복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게다가 자살은 두 번 다시 상대방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화해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행위이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상대로부터 몇 차례 그런 보복을 당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이겠지만 나 자신이 그러한 형태로 상대를 거부하는 일만큼은 하지 말자고, 나는 나 자신에게 타이른다.

소노 아야코.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 책읽는 고양이, 2025년, 147쪽

https://www.youtube.com/watch?v=ekKnNTpm3Cs

https://www.youtube.com/watch?v=4uwfr81eG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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