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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by Min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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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김기태의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입소문을 타고 여러 매체에서 다뤄진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나는 뒤늦게 오늘에서야 완독을 했다.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온 작가가 지난 몇 년간 포착해 온 우리시대의 초상화 같은 느낌이었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이 써서 그런지 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맞지맞지'하며 고개를 주억이다가, 완독 후에는 이 모든 이야기가 내 얘기 같아서 쉬이 덮지 못한 책이었다. 아이돌 팬, 리얼리티 프로그램 신청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찍는 다큐를 보는 느낌도 든다. 문체가 건조하고 담담해서 그렇게 느껴지는듯 싶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인물들의 내면을 극진하게 관찰하는 독특한 통찰력과 문장 하나하나에 강력한 흡인력이 담겨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나에게는 이 말이 유별나게 머리에 박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中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문학동네. 133-134p.


성실하게 일하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지금의 사회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이 책 전반에 깔려 있는 가장 큰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 페이지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中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문학동네. 134p.


이 소설집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해 작가의 대답이 '아니다, 나는 흔들리는 당신들을 응원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 「보편 교양」에서는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추천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을 다루며, '보편적 교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개인의 지적 자유'가 입시와 이념적 편견이라는 현실 앞에서 얼마나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는 고아출신 진주와 불법체류자의 아들 니콜라이의 이야기를 다루며, 사회적 시스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사회적 위협이 보인다.

* 「롤링 선더 러브」에서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진을 통해 개인적인 사랑이 사회적 규격과 자격으로 평가 받는 세태를 유쾌하지만 날카롭게 풍자한다.


지금 이 세 편은 내가 특히나 이 책에서 아끼는 단편들인데, 이 작편들 외에도 모든 작품에서 우리가 '현재, 한국에서' 살면서 '현실적으로 한 번쯤은' 마주칠 '흔들림의 순간'들을 보여주면서도,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작은 연대와 응원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다. 이러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당신이 단지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나 일하는 데에 지쳤다면, 더 많은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데에 쓰고 싶다면,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인지 의심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우리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中 「로나, 우리의 별」, 문학동네. 205p.


혼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둘이서 행복할 수 없다는 전언에 맹희도 동의했다. 혼자를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 것. (...) 연애는 옵션이거나 그조차도 못 되므로 질척이지 말고 단독자로서 산뜻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中 「롤링 선더 러브」, 문학동네. 47p.


고독한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끊임없이 질문하는 당신에게, 우리 시대 동기들에게 이 책에서 내가 받은 응원은 따뜻했고, 그러니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고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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