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에세이의 역설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한마디로 가볍고 신변잡기를 쓴 글을 좋아한다. 심지어 오늘도 도서관에서 빌려온 박여름 작가의 『좋은 날이 오려고 그러는가 보다』를 읽었다. 훌륭했다. 마음의 위로가 됐다. 근데 한편으로는, 에세이 팬으로서 이 새벽에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쓸 만큼 불안했다. 어? 왜 예전만큼의 자극이 오지 않지?
21세기 한국 사회는 급속한 디지털화, 경제적 불안정성,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개인들의 정신적 고통과 소외감이 심화되는 시대적 맥락 속에 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힐링 에세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가 등장하여 대중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20-30대 독자층에게 큰 반응을 얻었다. 모르긴 해도, 분명 이 수많은 '힐링 에세이'들이 많은 이들을 정신적으로 살렸으리라 확신도 한다. 나 역시 그 수혜자들 중 한 사람이었으므로.
내 첫 에세이 사랑은 종종 내 브런치에 등장하는 아버지/어머니의 책꽂이에서 시작된다. 없이 자라도 책과 아들이 친구들과 지내는 것에는 돈을 아끼시지 않았던 두 분 덕에 우리 집에 책만큼은 정말 집 크기에 비해 지금 생각하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던 책은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라든지, 최신혜 선생님의 『심야의 해바라기』같은 책들이었다. 지금도 나오고 있는 수필 잡지들인 '좋은 생각'과 '샘터'도 참 좋아했더랬다. 어떤 날에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든지 이해인 수녀님의 수필그림책들(『나의 밭 이야기』 외 4권)과 『친구에게』등 종교인들의 에세이는 지금도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글들이다. 누군가는 역사 교양서로 요즘은 분류하지만,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아주 오래전에는 오히려 수필 쪽 매대에 있었던 적이 있었으며, 나는 지금도 아주 훌륭한 기행'수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서점의 '수필/에세이' 매대가 변했다. 2018년부터 본격화된 한국의 '힐링 에세이' 열풍은 공감과 위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학적 경향을 형성하였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2018)를 시작으로 『모든 순간이 너였다』(2018),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2018)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장르는 대중문화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나의 좁은 식견이긴 하지만, 내가 본 이러한 힐링 에세이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의 일상적 경험과 감정을 중심으로 한 진솔한 고백,
둘째, 독자가 '이건 내 얘기야'라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의 발견,
셋째, 복잡한 삶의 문제를 단순화하고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서사 전략,
넷째, 전문 작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한 대중적 접근성
앞서 말했듯, 이런 특징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경제적 불안정성, 사회적 경쟁의 심화 등으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20-30대 여성 독자층에게 큰 인기를 끌며, 이들은 힐링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는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동시에 제공한다.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대부분 '공감된다', '위로가 된다', '쉽게 읽힌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한편으로는 '그냥 위로는 결국 현실에서는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는 날 선 반응도 몇몇 보인다. 다만...
'야, 그러면 니가 쓰든지...' 라는 반박을 많이 받겠으나, 내 작은 불만은 댓글 반응마저 똑같은 책들이 이제는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인터넷 서점 리플도, 서점의 매대의 반응도.... 홍대병은 아니지만 뭔가 다른 종류의 수필을 찾는 나에게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출판시장, 트렌드에 당연히 민감하다. 그렇다 보니 힐링 에세이의 홍수는 그럴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감성적인 표지 디자인과 감정을 건드리는 제목 선정, 현세대에 맞는 짧은 글의 길이. 오케이, 좋다. 심지어 나는 오늘도 읽었다. 다만 내가 알던 에세이는 앞서 말했듯 '신변잡기', 지극히 개인적인, 그래서 다양하고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특별한 목소리들인데 그걸 좀 찾고 싶다. 어떤 에세이는 위에서 언급한 날 선 댓글처럼 낙관적 태도만이 아니라 현실을 꼬집는 글도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이 반복되는 '힐링'에서 벗어나 또 다른 대안을 찾는 것, 이게 지금 모든 에세이 작가들이 직면한 과제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는 지금 그런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발견을 하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