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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영 Oct 12. 2016

어쩌다, 뉴욕

8월 11일 비행기 표를 예약하지 않았더라면

무심코 내린 작은 결정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붙어 다녔던 다혜와 혜선이는 중간고사가 끝난 그날 별로 친하지도 않던 나에게 장난을 걸었다. 한참을 장난치다가 어쩌다 명동으로 놀러 간 우리는 그때를 계기로 둘도 없는 사이의 셋이 되었다.


초, 중, 고등학교 방송반 생활을 하면서 대학교에 와서는 절대 방송국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음에 계속 걸렸는지 결국 서류까지는 냈는데 면접에 가지 않았다. 면접 시작 시간이 넘었고 애써 "잘됐어, 어차피 너무 힘들 거야"라는 말로 위로했다. 면접 대신 다른 동아리 모임에 가고 있었는데 5분을 그렇게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방송국에 연락했다. 늦게라도 면접에 가겠다고 말했고 3차까지의 긴 면접을 끝으로 방송국에 들어갔다. 어떤 활동보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방송국 없는 대학생활을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낯설었던 뉴욕의 표지판과 신호등
2016년 8월, 뉴욕으로 간다고?


사실 이번 뉴욕 여행은, 어쩌다 가게 된 정말 뜬금없는 여행이었다.


9월부터 워싱턴 디씨에서 교환학생으로 American University에서 공부할 예정이었다. 8월 22일부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기 때문에 적어도 2,3일에서 일주일 전쯤 도착하는 게 좋다는 메일을 받았다. 현재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비행기 티켓을 결제한 4월만 해도 집을 구해서 살 생각이었다. 집도 청소하고 짐도 정리하고 하려면 적어도 10일은 일찍 가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8월 중간에 언젠가는 출국해야 하고 딱히 한국에서 꼭 해야 할 8월 계획도 없었기에 일찍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며칠을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다가, 출국시간 도착시간 모두 적절한 워싱턴행 비행기를 샀다.

뉴욕 여행기인데 웬 워싱턴 티켓이냐고?

여기서부터 이 여행의 재밌는 이야기가 시작한다.


뉴요커들은 절-대 안간다는 타임스퀘어. 사람이 정말 많다.
8월 11일 비행기표가 만든 8월의 뉴욕

집을 구해서 살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한국에서 워싱턴 디씨에 있는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함께 교환학생으로 가는 친구들도 전부 기숙사를 신청했고, 부모님마저 안전하게 기숙사에 사는 것을 권하셨다. 결국 학교 기숙사를 신청했고 7월이 다돼서야 기숙사 확정과 함께 8월 20일부터 입사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엔 비행기 표를 바꾸려고 인터파크 항공에 전화했다. 취소 수수료 18만 원, 인터파크 수수료 3만 원에 새로운 비행기 값을 더하면 본래 예약했던 티켓보다 40만 원이나 비쌌다. 과연 40만 원을 내고 취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글에 표까지 만들어가며 엄청나게 고민했다. 선택지는 1 먼저 가서 여행을 한다 와 2 취소하고 날짜에 맞춰서 디씨에 간다 두 가지였다. 마음으로는 1번이 끌렸지만 앞으로 교환학생 생활을 할 생각을 하니 현실적인 자금 문제와 부딪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생각을 하다가, 그래 여행을 하고 가자!라고 마음을 굳혔다. 아주 급작스레 결정된 여행이었다.


여행을 간다는 선택지를 만들었을 때부터 목적지는 뉴욕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 가장 화려하고 다양한 도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잠들지 않는 그 도시, 뉴욕.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뉴욕, 그곳에 가고 싶었다.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그 도시를 여행하고 싶었다. 한 추진력 하는 나는 그다음 날 바로 숙소를 예약했고, 워싱턴에 내려서 메가버스를 타고 뉴욕을 가기로 결정했다. 메가버스 티켓까지 모두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뉴욕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진짜 여행은 8월 11일부터 시작이었지만 나는 이미 마음으로 뉴욕을 여행하고 있었다.

어쩌면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시간은 여행을 계획한 그 순간이 아닐까.

숙소와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여행 날짜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정말 설렜다.


너무, 너무, 진짜 너-무 좋아하는 브라이언트 파크
2016.8.11 - 2016.8.20 / New York City

혼자 여행은 처음이었다. 뉴욕이라니.


늘 누구와 함께 하는 여행에 익숙했기에 혼자 하는 첫 여행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 혼자 이것저것 하면서 잘 다니는 스타일이어서 '혼자'라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낯선 미국 땅에 아는 사람 없이 홀로 돌아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되었을 뿐.


평소에 사지 않는 여행 책자 2권을 구입하고 <뉴욕 여행>과 관련된 블로그 포스팅을 매일매일 읽었다. 계절학기를 들으면서, 과외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 때마다 뉴욕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고 찾아봤다.


그렇게 준비하고 기대했던 뉴욕 여행은 그 이상의 많은 것을 주었고, 나는 넘치게 받았다.


8월 11일 비행기 티켓을 덜컥 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40만 원을 지불하고서라도 기숙사 입사 날짜에 맞춰서 비행기표를 바꿨다면, 어땠을까.


어렴풋이 남아있는 뉴욕에서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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